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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2)
우리 집 가훈은 "가화만사흥"
교수, 박사, 석사로 이뤄진 엘리트가정
2009년 03월 31일 10:01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앞줄 오른쪽으로부터 김증손교수, 외손자와 부인, 뒤줄 오른쪽으로부터 딸, 사위, 아들, 며느리.

"언제까지나 조선족은 문화수준이 높은 민족이라는데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조선족인재는 단층현상이 엄중하며 고차원 인재는 더구나 가물에 콩나듯 적습니다. 조선족고급인재의 양성 더는 미룰수 없습니다" ―김증손교수 우리 민족 교육발전현황에 우려 표하기도

농사중에서 제일 큰 농사는 자식농사요, 자식농사 잘 지은 부모는 평생 복 받는다는 말이 있다.

장춘에는 자식농사 잘 지어 주위의 선망의 눈길을 받는 한 가정이 있다. 바로 부모로부터 시작해 아들딸, 그들의 배우자까지 석사, 박사로 명실공히 "명문가"로 불릴만한 길림대학 김증손교수가정. 먼저 그 가정 구성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남편 김증손: 퇴직전 길림대학 물리학부 교수, 박사생지도교사, 국가초경재료중점실험실 부주임, 중국 금강석박막연구의 선두주자.

부인 강옥자: 고급기사(부교수), 퇴직전 길림대학 촉매연구실에서 사업.

딸 김영: 길림대학 박사, 아일랜드에서 박사후 졸업, 현재 길림대학 계산기과학기술학원 부교수.

사위 리고: 북경대학 응용화학전업 졸업, 독일에서 박사, 박사후 마침, 현재 장춘응용화학연구소 연구원 겸 박사생지도교사.

아들 김호: 길림대학 계산기과학기술학원 본과, 석사 졸업, 현재 길림이동통신유한책임회사 기사.

며느리 김정란: 길림대학 졸업, 현재 길림대학제1병원 근무, 석사 졸업후 박사과정 수료중.

"가정이 화목해야 자식들도 바르게 자랍니다"

자식을 훌륭히 키우려는것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욕심이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게 또한 자식교양이 아닌가싶다. 그렇다면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는 비결은 무엇일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증손교수는 "가정화목"을 우선으로 꼽았다.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흥해진다(家和万事兴)'는 말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이 가정환경입니다. 화목한 가정환경에서라야 애들이 밝게 클수 있지요" 그만큼 그들 부부는 애들이 어릴적부터 그들에게 화목하고 안온하며 편안한 가정환경을 마련해주느라 무척 신경썼다.

가정화목에서 뭐니뭐니해도 부부화목이 관건이라고 말하는 김증손교수, 하기에 그들 부부는 결혼해서 지금껏 사소한 일로 티각태각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부부간의 불화로 애들까지 영향받는 일은 김교수네 가정에서는 절대 금물이였다.

이웃들도 어쩜 아이 둘 있는 집 같지 않게 그렇게 조용하냐며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니...

김교수는 애들 교양에서 지나친 설교는 때론 역효과를 불러오기 십상이라며 부모들의 무언의 행동이 애들에게 주는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내외간이 모두 대학교에서 사업하다보니 집에 와서도 짬만 있으면 책과 씨름했는데 이런 짙은 학습분위기에 애들이 저도 모르게 젖어들어 자각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키운것 같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애들을 사랑하면서도 방종하지 않고 부모의 의사를 애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대신 항상 애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단다. 그래서 딸도 그렇고 아들애도 한창 말썽 부릴 나이에도 언제 한번 싸움질하는 일없이 소학교로부터 줄곧 공부 잘하고 심성이 바르며 반듯하게 커왔다고 한다.

애들 위해 몇번의 출국기회 포기..."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우리 집사람이 정말 고생이 많았지요. 그가 내조를 잘한 덕에 저도 사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었고 애들도 모두 출세할수 있은거지요" 김교수는 모든 공로를 안해에게 돌린다.

1961년 치치할화공학교를 졸업하고 길림대학에 배치받아 퇴직할 때까지 촉매연구실에서 사업하면서 여러차례 국가교육부 과학기술진보상을 받은적 있는 부인 강옥자녀사는 가정에서는 무던하고 현숙한 안해이자 자상한 어머니이기도 하였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남편 잘 섬기고 자식 잘 키우는것이 자기가 할 몫이라는 생각으로 가정을 위해 고생을 달갑게 해온 그녀이다.

1982년 김교수는 전국 제1진으로 일본에 연수가는 모처럼의 기회가 차례져 출국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안해가 간경화복수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출국을 포기하려 했지만 안해는 자기 걱정은 말라며 기어코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출국했는데 하느님이 도왔는지 치료를 거쳐 안해의 병이 완쾌되였단다.

80년대말, 90년대초에는 흔치 않았던 출국기회, 남들은 나가지 못해 아우성인 판에 그는 여러번이나 남편을 따라 출국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차마 애들을 떼여놓고 갈수 없었던것이다. 애들 곁은 항상 부모가, 그것도 엄마가 잘 지켜줘야 한다고 굳게 믿어온터였다. 결국 그는 남편과 애들의 뒤바라지를 위해 묵묵히 자기를 희생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때 저의 희생이 애들의 출세를 바꿔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 편하고 가슴 뿌듯합니다"

현재 조선족사회에서 급물살을 타고있는 출국바람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와진 대신 가정기반이 흔들리고 애들이 기로에 들어서는 등 안타까운 일들을 심심찮게 목격하면서 그때 선택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그녀다.
"가정교양 하면 우리 어머님을 빼놓을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공부시키는 민족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바로 그런 분이였습니다"

김증손교수의 어머니는 일자무식인 일개 평범한 농촌녀성, 연변 개산툰진 애민촌에서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 4형제를 자기의 두 손으로 훌륭히 키워온 "억척녀"였다.

그 당시 남정들이 하는 일도 몸을 사리지 않고 하면서 고통과 설음도 많았겠지만 어머님은 그런 고통, 그런 설음을 묵묵히 묵새기며 "먹물"을 못먹으면 남의 업수임을 당하기 마련이니 내 꼭 너희들만은 공부 잘 시켜 "출세"시키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셨고 또 그렇게 해오셨다. 집에서 맏이였던 김교수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 안스러워 철이 들어서부터는 역에 나가 석탄도 나르고 방학이면 싸리나무를 해 팔면서 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공부해 1960년 김교수는 우수한 성적으로 길림대학 물리학부에 입학했는데 달마다 조학금으로 나오는 19원 50전에서 16원은 식비로, 나머지 3원 50전을 생활비로 쓰면서 비록 넉넉하지는 못할망정 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다는데서 큰 위안이 되기도 하더라고 감회를 터놓는다.

그런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기에 그들 4형제중 둘째만이 어쩌다 시기를 놓쳐 대학에 가지 못한외에 3형제 모두 대학공부를 마쳤다. 둘째도 농촌기층으로부터 시작해 훌륭한 업적을 쌓아 후에 공직으로 옮겼고 여러번 현, 성과 전국의 모범으로 표창까지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둘째를 대학에 못보낸것이 한뉘 가슴에 한으로 맺혀 어머니는 70고령에도 룡정에 세집을 맡고 둘째네 애들의 때시걱을 끓여주며 공부뒤바라지를 알뜰히 해주셨단다.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당신 생전에 자식 잘 키워 연길현(지금의 룡정시), 연변주의 "훌륭한 어머니"로 표창까지 받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들 형제들도 자식들을 모두 대학생으로, 석사, 박사로 훌륭히 키웠다며 김교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든다.

"항상 사회에, 내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할줄 알며 살거라"

김교수의 올해 나이 68세, 공화국의 60년의 변천사 특히 개혁개방 30년이 가져다준 천지개벽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오신 분이다.

새 중국이 없었더면 오늘의 자기의 성공은 운운할수도 없는 일이라며 그러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사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이젠 자식들도 다 커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자식들에게 사회에, 내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할줄 알아야 하고 배운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보답해야 한다고 일깨운단다.

부모들의 교양과 영향하에 자식들도 각자 일터에서 꾸준히, 열심히 일하고있다. 현재 길림대학 계산기과학기술학원의 부교수로 있는 딸 김영은 소프트웨어 연구 및 개발에서 성과가 크며 현재 국가의 주요한 과학연구쩨마인 국가863쩨마를 책임지고 연구중, 지금껏 국제적인 잡지에 수준높은 론문 20여편을 발표했다.

장춘응용화학연구소에서 사업하는 사위 리고는 33살에 벌써 연구원 겸 박사생지도교사로 발탁되였으며 세계권위성 잡지인 "JACS" 등에 30여편의 론문을 발표해 그 재능을 한껏 과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아들 김호는 현재 길림이동통신유한회사의 기사로 활약, 지난해에는 전국이동통신계통의 선진과학기술자로 당선되기도 했다. 며느리 김정란도 길림대학 제1병원 재직중이면서 박사과정중에 있다.

조선족고급인재 가물에 콩나듯..."고급인재양성 미룰수 없습니다"

1987년 금강석박막합성 성공으로 이 연구분야의 공백을 메우며 중국전역 나아가 세계를 놀래웠던 김증손교수는 40여년간 길림대학에서 과학연구와 후대양성사업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왔다.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만큼이나 지금도 우리 민족의 교육발전과 후대들의 성장에 깊은 관심과 배려의 눈길을 돌리고있는 그다.

"글로벌시대, 한개 나라, 한개 민족의 경쟁력은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여부에 의해 결정되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고차원인재에 의거해야 합니다. 이를 떠나서는 나라와 민족의 발전과 진흥을 운운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민족은 이런 고차원인재가 부족합니다"우리 민족의 교육발전현황을 두고 김증손교수는 깊은 우려이다.

김증손교수는 조선족은 보편적으로 문화수준이 높다. 그러나 근근히 여기에 만족하거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지금은 과학기술경쟁력으로 승부를 가를 때다. 다시 말하면 고급인재양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시급한 때라고 모를 박는다.

그런데 조선족의 현황은 어떤가. 비례로 따지면 대학 본과생은 그나마 많으나 우로 올라가며 석사연구생, 박사연구생 비례는 현저히 적으며 석사, 박사 공부를 마치고 여러 분야에서 "내노라 뽐내"는 고급인재, 우수인재는 더구나 적다. 바로 피라미트식의 인재구조를 형성하고있는것이다.

길림대학의 경우, 90년대초에는 박사생지도교사가 56명, 그가운데 조선족이 5명으로 적은 비례가 아니였지만 지금은 박사생지도교사 800여명가운데 조선족이 고작 10명이다. 길림성에는 장강학자 30여명, 걸출청년기금획득자가 20여명 되지만 이가운데도 조선족은 한명도 없다. 여러 학술분야의 선줄군이 매우 적은가 하면 젊은이들의 비례는 더구나 적다. 길림성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며 김증손교수는 조선족고급인재의 엄중한 단층현상에 가슴아파한다.

왜? 가장 부족한것이 끈기

"조선족들 과거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가끔 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는 김증손교수이다.

"우리 그땐 모든 여건이 여의치 않았지만 '꼭 해낼수 있다'는 오기와 의력으로 조건이 없으면 조건을 창조해가면서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서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젊은세대들한테서는 이런 끈기와 꾸준함을 보기 어렵지요. 이 또한 우리 민족의 고급인재 단층현상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길림대학에서 특히 공과분야에서 전국이나 또는 세계의 권위성잡지에 쇠소리나는 무게있는 론문이나 연구성과를 발표하면 적어서 몇만원 많아서 십몇만원의 상금이 돌아간다. 그러나 이런 물질리익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것이 아니다. 피타는 노력끝에 얻어진것이고 그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인것이다. 우리 조선족 젊은세대, 특히 대학생들에게서 결여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고생은 하기 싫고 돈은 단꺼번에 많이 벌고싶고...너무 실리적이라고 할가.

지금껏 우리는 조선족은 총명하고 문화수준이 높은 민족이라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자부심을 갖고 과거에 연연하고 답보상태에 있을수는 없다. 현재 기타 민족 특히 몽골족의 문화교육은 빠른 발전을 가져오고있다. 보편적인 문화수준이 우리보다 뒤떨어진 쫭족가운데도 원사가 여럿 되지만 조선족가운데는 단 한명뿐, 위기감과 함께 높은 사명감이 더없이 필요하다.

그래도 동북사범대학이나 길림대학병원 등 중층이상에 학술, 실무 능력이 강한 조선족인재들이 적지 않게 활약하고있다는 김교수의 말은 그나마 얼마간의 위안이 되기도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현재 전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부회장, 장춘분회 회장으로 여열을 바쳐가고있는 김증손교수는 나이 지긋한 분들은 모여앉기만 하면 우리 민족의 미래를 두고 걱정하고 고민한다며 "우리 민족 고차원인재의 엄중한 부족, 결코 말로만 스칠 일이 아니다. 고차원인재의 부족이 한 나라의 경쟁력, 민족의 경쟁력의 부족을 불러올진대 위기감을 가지고 여러 가지 조치로 우리 민족의 고급인재양성에 진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라고 말한다.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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