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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캄 그 땅에서의 시련과 감동
ㅡ지진의료구조에 다녀온  김홍영에 대한 이야기
2008년 06월 16일 09:40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길림대학 제2병원의 21명 의료소분대는 길림성에서 첫진으로 파견한 116명 사천지진 의료원조팀중의 하나로 여진과 날마다 쏟아지는 소낙비 등 렬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맡은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당지 군중들의 사랑과 신임을 받았다. 21명중에는 길림대학 제2병원의 보통외과 조선족 부교수급 의사인 김홍영도 있다.

■ 첩첩 곤난을 뚫고

14일 오후 2시 의료팀이 성도쌍류공항에 도착했을 때 절강, 하남, 호남, 북경, 광동에서 온 의무일군들이 와 있었으며 비행기가 몇분에 한대씩 리륙, 착륙하였다.

김홍영이 탄 의료팀 차량이 213국도를 따라 문천으로 가는 도중 연선의 건물들이 거의 다 무너졌고 길옆에 세워놓은 차량들도 짓뭉개져 볼품이 없었다.

군중들은 림시 세워놓은 텐트에서 생활했고 많은 해방군장병과 무장경찰들이 재해구로 향했다. 김홍영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부상자들이 우리를 부르고있다. 빨리 문천으로 가야 한다…”

그들이 탄 차량이 도강언 자평포수력발전소에 다달았을 때 산사태와 흙모래가 섞인 물사태가 발생하여 문천으로 가는 도로가 매몰됐다고 했다.

차에서 내려 얼마 되지 않아 발밑에서 부르르 땅이 떨었다. 여진이라고 했다. 처음 지진을 감지한 김홍영은 불안한 감이 들었다.

당지 정부에서는 해방군부대와 협상한 끝에 의료팀이 돌격배를 타고 상류에 이른 다음 40킬로메터를 급행군하여 문천에로 진출하도록 결정지었다.

남자들은 가벼운 차림을 하고 시시각각 출발준비를 했다.

김홍영은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제일 처음 문천에 들어간다면 여진과 산사태가 일어나고 물과 식품이 부족한 렬악한 환경이라 해도 나는 모든 곤난을 이겨내고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 리재민들을 죽음에서 구해내리라”

지휘부의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다. 물자가 도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만 갈수 없다는것이다. 의료팀은 서쪽 선로를 선택하여 문천에로 가기로 했다.

하루 빨리 문천으로 가기 위해 의료팀은 밤낮 달렸다.

5월 17일 0시 45분, 김홍영 일행은 해발 4700여메터 되는 협금산 산정에 이르렀다. 산정에는 백설이 덮였고 뼈를 에이는듯한 바람이 불었다.

페수종과 고원반응이 생길가봐 잠을 자지 말라는 명령이 내렸다. 허나 김홍영과 기타 성원들한테 정도부동하게 고원반응이 생겼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 어렵고 머리가 아팠다. 마침내 소금현에 이르렀는데 또 여진이 일어났다.

여진과 산사태에 대비해 의료팀에서는 차량 사이를 200메터 간격을 두고 달리도록 했다. 김홍영은 “미리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큰 사고를 피할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직접 목격한 아슬아슬한 장면을 얘기했다.

김홍영 일행이 탄 바로 뒤에 길림성병원의료팀의 차가 따라왔다. 갑자기 와그르르하는 소리가 나 올려다 보니 산에서 돌덩이들이 마구 떨어졌다. 약삭빠른 운전사가 잽싸게 차를 몰고 뒤걸음질 쳤다. 방금 차가 세워졌던 자리에 커다란 돌덩이들이 떨어졌고 그들의 탄 차우에도 자그마한 돌덩이 2개 떨어졌다.

“위험을 느낀 일부 성원들은 메시지로 유서까지 남겨놓았습니다.”김홍영은 험난했던 그때를 생각하며 이런 말을 한다.

■ 감동의 눈물

김홍영과 17명 동료들은 바르캄에 남아 문천으로부터 이전해오는 부상자와 환자들을 진료해주고 각 촌을 다니며 순회진료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외에도 중환자들의 수술을 협조해 주는 일도 맡았다.

바르캄은 산간지대라 기후변화가 컸다. 아침에는 쌀쌀하고 점심때는 너무 더워 낯이 익을 정도이며 저녁이면 털실 옷과 바지를 입어야 하고 자정이 지나면 깃털옷을 입어도 추웠다.

또 날마다 비가 내려 텐트안은 항상 축축했다.

5월 21일, 재해구에서 꼬마환자들이 이전해 왔다. 제일 큰 아이가 11살이고 제일 작은 아이가 4살밖에 안되였다. 얼굴이나 머리에 부상을 입은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였는데 어린 나이에 이런 큰 봉변을 당한 그들을 보는 의사들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 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재해구에 기부금을 냈다. 의료팀은 2000원의 자금과 1000여건의 물품을 모아 해당 부문에 바쳤다.

김홍영 일행은 바르캄에 설치한 체육관의료구조소와 경로원의료구조소에서 진료해주고 약을 나눠주었다.

큰 비가 내리는 날에도 의료팀의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비를 맞으면서 각 촌을 돌아다니며 순회진료를 해주었는데 어느 하루는 연인수 3000명을 순회진료하고 수백곽에 달하는 약을 나누어 주었다.

아바주 지도자와 관련 일군들이 진료소를 찾아 의무일군들을 위문하는 그날, 의료팀이 저 멀리 동북 길림성에서 왔다는 말을 들은 현장에 있던 군중들은 감동의 박수를 보내왔고 많은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 당원의 선봉역할

21명중 5명 당원이 있었다. 소분대 팀장의 제의로 그들은 림시 당지부를 설립하고 고난속에서의 당원의 선봉역할을 강조했다.

김홍영은 지금이야말로 당원들 앞에 놓인 준엄한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언제 어디서나 당원으로서의 선봉역할을 다 할것을 다짐했다.

사천대학화서병원에서 20명 의무일군들을 수요한다는 소식이 왔다. 화서병원에서의 사업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적음을 잘 아는 김홍영과 기타 4명 당원들은 다른 사람더러 화서병원에 가게 하고 자기네는 제일 곤난한 곳에 가겠다고 태도표시를 했다. 당원들의 행실이 기타 성원들에게 힘을 주었다. 그들은 너도나도 제일 위험하고 더 곤난한 지역에 가겠다고 자원했다. “전선”에서 선후로 9명의 성원들이 입당신청서를 바쳤다.

김홍영은 “이번 걸음을 통해 나는 생명의 가치를 더 깊이 알게 되였고 한 당원의 일거일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슴깊이 느꼈다”고 감수를 말했다.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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