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예는 열성이 있고 책임심이 강하며 의료수준이 높은 나젊은 의사입니다. 의료구조팀을 조직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신청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 바로 리예입니다. “
5월 29일 저녁 장춘룡가공항에서 의료팀 성원으로 사천에 간 수외과(手外科) 리예(조선족)의사를 마중나온 길림대학 중일련의병원 수외과 최수삼주임이 한 자랑에 찬 말이다.
올해 36세인 리예는 2002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딴 후 길림대학 생물의학공정 학부의 포스트 닥터(博士后)를 마친 부주임급 의사이다.
리예는 중일련의병원 22명 재해구조 의료팀 성원중의 일원으로 15일간 재해구에서 분투, 일생에서 잊을수 없는 한페지를 적어놓았다.
“나는 충동이나 열정때문에 사천에 간것이 아니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고 리재민들의 기대에 찬 눈길과 마주칠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마음을 조이는 3박4일
14일 저녁 7시 45분, 의료팀은 사천성위생청의 배치에 따라 도강언을 통해 문천에로 가는 길에 들어섰으나 길이 통하지 않아 도강언에 다시 돌아왔다.
15일 아침 6시, 116명 성원들중 20명이 화서병원에 배치받고 나머지 일군은 계속 문천에로 향발하라는 명령이다. 리예도 이중의 한사람으로 문천에로 떠나는 소형뻐스에 앉았다.
그러다 미산시에서 의료구조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은 미산시로 떠났다. 미산시에 도착한 그날 저녁 8시 30분부터 그들은 미산시병원에로 실려오는 88명 부상자들을 치료해주었다.
16일 아침, 문천에로 가겠다는 성원들의 요구에 의해 의료팀은 미산시를 떠나 세번째로 문천에로 출발했다.
여진과 산사태가 수시로 발생하고 돌덩어리가 마구 굴러떨어지는 험악한 길이지만 문천에로 향하는 리예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빨리 가서 리재민들을 구해내야 할텐데… “
도로가 위험한데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천천히 차를 몰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차를 세우고 산에서 굴러떨어진 돌덩이를 치워야 했다.
성도공항의 일이 엄청 불어난 탓에 의료팀의 일부 물자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리예와 그의 동료 20명은 4박 4일을 소형뻐스안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거기다 고원반응이 생겨 머리가 뗑해 나고 아프며 메스겁고 지어 설사까지 하는 사람이 있었다.
“련며칠 길에서 머뭇거리다간 언제 부상자들을 구하겠는가?” 성원들한테서 조급정서가 나타났다. 리예도 마찬가지였다. 리예는 이러다간 부상자들이 철수한 후에야 지진지역에 들어서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마음만 초조하였다.
17일 저녁, 모든 인원과 화물차가 바르캄에 도착했다. 리예는 중일련의병원의 17명 의무일군들과 함께 바르캄에 남아 의료구조를 하게 됐다.
바르캄에서의 의료원조
바르캄은 아바자치주의 수부로서 문천과 성도를 잇는 중요한 도로이다. 도강언을 통해 문천에로 가는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구호물자를 실은 차량과 지진원조 일군들은 대부분 바르캄― 리현― 문천에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지진피해를 제일 크게 받은 21개 현중에서 아바자치주 관할구역내에 속하는 현만 6개나 되였다. 다행히 바르캄은 큰 피해를 받지 않아 많은 부상자들을 바르캄병원에 옮겨올수 있게 되였다.
바르캄에 남은 의료팀은 체육관과 경로원에 설치한 의료구조소에서 환자들을 진료해주고 각 촌을 돌아다니며 순회진료도 해주었다. 리예와 17명 동료들은 바르캄에 있는 10일동안 2235명 부상자와 환자를 진료해주고 연인원 5858명을 순회진료해주었다.
바르캄에 있는 기간 리예의 소속 의료팀은 구조를 하다 중상을 입고 생명위기에 처한 두명의 환자를 사신에서 앗아온 일이 있었다. 이 두사람은 당지에서 영웅으로 불렸는데 그들을 구해낸 일이 퍼지면서 의료팀은 당지 지도자와 군중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13년 동안의 수외과 림상경험이 있는 리예는 숱한 외상환자를 보아왔다. 하지만 재해구에서 절단수술을 해야 하는 어린 환자를 회진할 때 그의 가슴은 터지는것만 같았다 한다.
그는 “사람의 생명은 상상보다 훨씬 나약합니다. 지체 절단, 반신불수, 식물인이라 해도 살아있다는 자체가 행운입니다. 이번 지진을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더욱 감지하게 됐고 앞으로의 삶을 보람있게 보내려고 다짐하군 합니다”고 심정을 밝혔다.
생명의 의의
수외과의사의 신분으로 사천에 간 리예는 진료임무외 의료팀의 활동상황을 상급에 보고하고 언론에 통보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리예는 낮에는 의료팀과 같이 환자진료를 하고 밤이면 당일의 의료팀 상황을 보고하고 원고를 작성하여 보냈다. 재해로 인해 통신사정이 원활하지 않았던지라 사진 한장, 원고 하나 보내는데 온밤 걸리기가 일쑤 란다.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전화 한통 걸려면 10번이상은 걸어야 간신히 통할수 있었다 한다.
리예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며 새벽 1시가 넘어 누웠다가 아침 6시에 일어나는것이 보통이였다고 말했다.
“이번 걸음을 통해 삶의 의의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였습니다”, “문천으로 가는 도중 한밤중인데도 장족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어두운 길어구에서 우리를 마중하는 정경이 지금도 훤합니다. 일부 장족촌민들은 손전지 빛이라도 도움이 될가싶어 길을 비춰주더군요. 우리의 행차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들 또한 나에게 커다란 힘을 주었습니다"(홍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