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숭주시 회원진중학교 7학년 5반의 림하학생은 지진이 일어난지 72시간이나 지나갔지만 지진발생 당시 짧디짧은 몇초동안에 일어났던 일들과 무서움을 떨쳐버릴수가 없습니다. 생사리별이 무엇인지 종래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는 오선생님에 의해 죽음의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만약 오선생님이 아니였다면 저는, 저는 언녕…" 입을 열자마자 흐느끼는 림하학생은 말을 잇지 못했다. 공포가 가시지 않은 두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아예 작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말았다. 평생 잊지 못할 화면이 그의 눈앞에 또다시 생생히 살아나는것 같아서였을것이다.
그는 이처럼 몇번이나 "선생님"을 부르며 얼굴을 싸쥐고 흐느껴 울었는지 모른다.
5월 12일 오후 2시, 첫 교수는 오충홍선생님의 영어시간이였다.
오선생님은 이날도 예전과 다름없이 일찍부터 4층에 있는 7학년 5반 교실에 왔다. 언제나 남보다 일찍 출근하여 수업준비를 하고 숙제책을 검사하군 하는 그의 습관은 여러해째 계속되여 많은 학생들은 이젠 낯설지가 않았다. 오선생님이 비록 엄하긴 하지만 학생들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해주는 오선생님을 잘 따랐다.
2시28분,몇분만 있으면 곧 하학시간이였다. 학생들에게 배운 단어들을 복습시킨후 오선생님은 흑판에 새로 배울 단어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마루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창문이 "쾅쾅쾅"하는 소리를 내면서 책상우에 있던 문방구들이 뿌리워나갔다. 위험을 아직 느낄 사이도 없이 교실이 갑작스레 세차게 흔들리자 학생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해있었다.
"학생들, 얼른 뛰여나가요! 지진이예요!" 오선생님은 소리를 지르며 학생들을 끌고 밖으로 뛰여나가게 했다.
29명 학생이 즉각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급한 나머지 뒤자리에 앉았던 백연하, 부요, 림하 학생은 오선생님이 교실 문어귀에서 마구 뒤흔들리는 문틀을 부여잡고 학생들을 대피시키는것을 보았다.
림하 등 몇명 학생은 제일 마지막으로 교실을 뛰쳐나갔다.
“얼른 뛰여요,림하학생!” 공포에 사로잡힌 림하는 오선생님에 의해 어깨를 떠밀려 복도로 나갔다. 오선생님이 학생들의 뒤를 따라 3층까지 왔을 때였다.
학생들을 안전하게 교실밖으로 대피시킨 오선생님이 갑자기 또다시 4층 교실로 뛰여가는것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아직도 2명 학생이 그때까지 공포속에 떨며 교실에서 나오지 못했던것이다.
오선생님이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듯이 뛰여들어가자마자 바로 뒤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림하와 부요 등은 2층으로 뛰였다. 하지만 1층 계단이 이미 붕괴돼있었다. 몇명 학생은 다급한 순간 좋은 꾀가 떠올라 2층 교실 밖의 발코니에서 아래로 뛰여내렸다.
다행히도 그들은 죽음과의 달리기에서 승리했다. 더욱더 다행스러운것은 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받던 700여명 사생들이 모두 안전하게 대피한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생명을 구해준 보호신 오선생님과 채 뛰여나오지 못한 다른 3명의 학생은 영원히 페허속에 묻히고말았다.
"오선생님이 또다시 교실로 뛰여갔어요."
"오선생님은 제일 먼저 교실에서 대피할수 있었는데, 제일 먼저 4층에서 내려올수 있었는데, 건강한 체질인 그가 제일 먼저 안전하게 운동장으로 대피할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회원진중학교 교장은 지진이 지나간후 학생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오선생님이 잘못됐음을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오선생님이 교실로 뛰여갔어요! 오선생님이 교실로 뛰여갔어요!" 7학년 5반의 학생들은 하지선생님을 에워싸고 이 말만을 중복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구호팀 전사들이 페허속에서 오선생님의 시신을 찾았을 때는 이미 이튿날 아침 7시께였다. 오선생님이 구하려 했던 2명 학생의 시신도 페허속에서 찾아냈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오선생의 얼굴에는 차마 눈 뜨고 볼수 없는 깊은 상처가 나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드디여 뜨거운 눈물을 쏟고말았다.
당시의 그 장면을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구조인원들이 파낸 시신 위치를 통해 오선생님이 2명 학생을 호송하여 교실을 떠나 대피하다가 희생됐음을 알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