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몇년만에 또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솔직히 말해 이번 한국행은 몇년전보다 많이 쉬웠다. 2년전부터 실시된 한국의 방문취업제 추첨에 덜컥 걸려 돈 몇푼 안쓰고 그냥 비자를 받았기때문이다.
2007년 9월에 방문취업제 첫 시험이 있은 뒤 세번의 시험과 추첨을 통해서 나와 같은 수많은 조선족들이 거의 무료로 한국나들이에 성공한것은 사실이다. 수만원을 때려넣어도 잘 안되던, 지어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밀수배에까지 올라야 했던 몇년전과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라 해야 할것이다.
물론 나는 허약한 신체때문에 막일은 엄두도 못내는지라 이번은 그냥 겸사겸사걸음이였다. 그나저나 돈을 내고도 한국 가지 못해 안달을 떨던 그때와 달리 거의 무료로 한국행을 실현할수 있는 오늘, 방문취업제로 한국땅을 밟은 수만명 조선족행운자들의 신나는 삶의 현장을 제눈으로 확인해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중에 만난 조선족들에게 일부러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또 한국에 거주하는 친척들을 통해 여러모로 알아봤는데 상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였다. 7, 8만원씩 내고 한국 가던 세월이 다 지나고 이젠 자유롭게 한국 다녀오는 멋진 세월이 왔다고 기뻐해야 하련만 혜택은 고사하고 한낱 비행기표값도 못 벌어 울상이 된 사람을 여럿이나 보았기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 바꿔진 생각, 바꿔야 할 생각
일부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생각에 문제가 생긴것 같았다. 이전에 브로커들한테 돈을 푹푹 퍼주고 한국에 갈 때는 그 돈 혹은 빚때문에 압력을 느껴 닥치는대로 일만 생기면 찾아가 했다는데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였다. 돈도 안 쓰고 왔는데 뭐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제쪽에서 이런저런 조건 만들면서 사장들을 잘라버리는 사람들이 참 적지 않은것 같았다. 힘들다는둥 월급이 낮다는둥 하면서 쩍하면 새 일자리를 찾다나니 그동안 집에서 들고온 인민페 만원어치 비상금을 훌쩍 날려버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훈춘에서 갔다는 김모 남성 역시 한국 가서 한달 반사이에 일터를 세번이나 바꿨다고 한다. 처음 간곳은 노가다판이였다. 첫 이틀간은 심부름 같은 건축현장에 익숙하여 가벼운 일을 하다나니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근데 사흘째날 건물외곽에 뼁끼칠을 하는 사람이 급한 일이 있어 못나오게 되였다나? 그래서 림시로 그 일을 할수 없겠냐는 사장의 물음에 못하겠다고 하긴 그렇고해서 훌렁 대답부터 해놨는데 정작 하려고 하니까 그 높은데서 약간 잘못하다간 떨어질것 같고 무서운 마음에 손발이 마구 떨려서 뼁끼통 들기도 어려운 형편이였단다.
내가 왜 이런 고생 해야 하냐, 에라, 모르겠다. 이것 빼곤 다른 일 없다더냐는 생각에 그 길로 슬그머니 뺑소니쳐 집으로 와버렸단다.
두번째 찾은 일은 도로를 수리하는 일, 일당에 6만원이여서 수입도 괜찮은편이였는데 날마다가 아니고 사흘 건너 하루 일하는 형편이여서 며칠 안하고 그것마저 때려치웠다. 그러다보니 겨울이 닥쳐오고 현장일도 다시는 찾을수가 없어서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가 버렸단다.
중국에서 들고간 생활비는 거의다 써버리고 번돈은 없고.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벼룩신문도 보고 로무시장에도 가보았지만 식당밖에 별로 마땅한 곳이 없더란다. 매일 그릇 가시고 주방청소 다하고 된장찌개만 해도 하루에 120개 정도 끓이고 채소 다듬고… 그렇게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아쳐도 하루일 끝나서 얻는것이라고는 느리다는둥 말 잘알아못듣는다는둥 하는 욕뿐이였다. 게다가 초보자라고 월급은 다른 사람들의 절반정도여서 집세 내고 생활비 조금만 남겨놓으면 집에 부칠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인민페로 1000원이나 될가. 그 돈으로는 아들 용돈도 모자라겠다며 김모는 한숨만 풀풀 내쉬고있었다.
왕청에서 간 박모 남성을 공항에서 만난적이 있는데 한국 온지 두달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그는 일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기다리다보니 어느사이 두달이 지나갔다며 아까운 생활비 80여만원(한화)에 비행기표값 수천원만 허망 날렸다며 한탄했다. 설상가상으로 고향의 아버지가 불시로 세상뜨는바람에 일전한푼 못 벌고 중국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왜 일자리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나의 물음에 그는 돈 얼마 안 내고 가게 된 한국행이라 이 조건 저 조건 따지다보니 그때까지도 못 찾았다며 게면쩍은 웃음을 보였다. 다시 들어와서는 아무일이나 다하겠노라 결심하듯 말을 남기고 총망히 비행기탑승구역으로 사라지는 그의 뒤모습을 보며 웬지 쓸쓸한 감이 들었다.
⊙ 준비없는 출국이 만든 비극
아직도 한국만 가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려니 생각하는 천진한 사람들이 있다는것이 참으로 한심하다. 더우기 요즘은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한국경제가 크게 파괴되여 한국인의 근 17%가 실업당했다고 하는것 같았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실업당한 한국인들 역시 생계를 위해 막벌이, 공사장으로 나서고있다는데 전보다 일자리가 줄어들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거기에 대량으로 밀려드는 외국인들까지 있겠으니 취업압력이 어느 정도 될지는 짐작할만하다고 봐야겠다. 이런차에 별로 뾰족한 재간이나 만단한 준비도 없으면서 900원짜리 비자가 떨어졌다며 맹목적으로 한국땅을 밟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국에서 좀 기다렸다가 봄이 오길 기다려 한국으로 들어가라고 권고하는 안해 말을 귀전으로 하고 기어이 한국으로 들어간 룡정의 김모 남성은 내가 한국을 떠나는 그때까지 두달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할줄 아는건 농사뿐, 게다가 한국물정까지 깜깜이라 갓 입국한 며칠 친구들과 어울려다닌걸 제외하면 거의 세집 구석을 지켜온셈이였다. 일전 한푼 못벌고 중국에서 몇년동안 농사지어 모은 돈을 한국땅에서 다 부려먹는다며 애꿎은 한숨만 내쉰다.
자기 본국에서도 쉽지 않은 돈벌이가 외국에 가면 더 쉬울거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맹목적인 한국행, 그것이 일부 조선족들한테 아주 큰 문제인것 같다. 아직도 "중국에서는 할일이 없다, 이제 한국 가서 목돈 벌어오마."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생각을 바꾸라고 권하고싶다.
게다가 너무나도 깊이 떨어진 한화환률때문에 벌어놓은 한국돈을 보내지도 쓰지도 못하고 속만 끙끙 앓는 사람들도 몇몇 봐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였다.
⊙ 단술에 배부르랴
조금조금 벌어모아 점차 잘살자는 생각 먼저 한꺼번에 뭉치돈을 벌 궁리만 하다가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또한 하루밤새에 빈털터리가 되여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은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동생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연길에서 왔다는 한모 남성은 원래 연길에서 꽤나 잘나가는 개체업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남들이 다 방문취업제시험을 본다고 하니 놀러라도 가보지 하면서 친 시험이 합격되고 추첨까지 되면서 남보다 썩 먼저 한국행을 하게 되였다고 한다. 한국에 금방 도착했을 때는 그래도 남들처럼 일도 해보고 고생도 해보고 했는데 그 돈이 아무래도 눈이 차지 않더란다. 그래서 한국 간지 반년만에 한국의 건축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는데 한 한국업주와 함께 크지 않은 빌딩을 하나 짓기로 했단다. 여덟달쯤만 고생하면 뭉치돈이 손에 들어올걸 생각하고 반년 남짓한 시간에 한화로 몇천만원 밀어넣었는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파트너가 어데론가 자취를 감추고 빌딩건축권은 생뚱 같은 사람한테 돌아갔다. 눈깜짝할새에 사기를 당한것이다. 신고해봐도 가짜신분으로 등록했기에 그놈의 행방을 찾을길 없고 그러던 끝에 아예 타락을 해버린 한모는 거의 술로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
단술에 배부를리가 없다. 가끔씩 실패를 맛보는것도 피면할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큰 돈 벌겠다고 서두르면 그만큼 큰 실패를 당할 각오도 해야 하지 않을가? 물론 그외에도 리자를 많이 주겠다는 말에 담보도 없이 아글타글 번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우고만 사람, 큰 돈 벌겠다고 별 조사도 없이 가게 같은걸 꾸려놓았다가 경기가 안 좋아서 밑진 사람…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착실하게 일해서 돈 버는게 근본이건만 너무 큰 떡을 바라보다가는 오히려 그 떡에 체할 때가 많은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