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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꾸바 [련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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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1일 15:54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1960년 8월 6일, 꾸바의 미국석유공장에서 쏘련의 석유를 가공하는것을 거절하자 페이덜 카스트로는 꾸바에 있는 미국의 석유공장, 설탕공장, 전력회사와 전화회사에 대하여 국유화를 실행하였다. 그해 4월 16일, 카스트로는 꾸바혁명을 사회주의성격이라고 선포하였다. 두번째날 미국의 중앙정보국에서 훈련하고 무장한 꾸바의 건달분자들은 “주만”에서 상륙하였지만 신속히 붕괴되였다.

카스트로의 중국어통역인 왕정은 페이덜은 자본주의를 확실히 증오하고있다고 하였다. 그는 경상적으로 “아무 사람도 자기 자신보다 자본주의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하바나의 부식과 부패를 지켜왔으니깐!”라고 실말을 털어놓았다고 하였다.

진대사는, 카스트로는 해외의 지원과 대부분 재정을 농촌건설에 사용하였기에 사회주의혁명이래 농촌의 변화가 제일 큰바 중국의 아주 많은 농촌이 꾸바농촌보다 락후하다고 말했다.

하바나에서 몇십년 혁명을 하였지만 최근 일부분 새로 건설한 호텔, 상무쎈터, 새로운 대학외 새로운 건축이 없다.

서로 다른 행정급별, 일터에 근거하여 꾸바는 19급 로임표준을 제정하였는데 제일 낮게는 225피소, 제일 높게는 525피소로 하였다. 전체 꾸바로동자들은 급별이 같으면 같은 로임을 가질수 있다.

오홍영연구원은“저수준에 평균주의"로 꾸바의 제반 사회분배제도를 개괄할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 중국에서 류학했던 꾸바인 스라토 리는 “꾸바사람들과 생활하면 술도 있고 밥도 있고 학습도 하고 병원도 다닐수 있어 아주 즐겁고 유쾌하다. 우리는 총도 없고 마약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살고있다."고 하였다.

“이 국가는 도처에 사회주의이다!”꾸바에서 17년 생활했던 왕정이 감개하면서 말하였다.

⊙정치는 엄하지만 사회분위기는 아주 느슨

“꾸바는 아주 많은 곤난을 이겨냈지만 경제는 여전히 락후하다.” 전임 꾸바주재 중국대사 진구장은 “꾸바공산당원은 아직도 민중의 지지를 받고있으며 사회는 공정하고 부패하지 않고 정직하다."라고 소개하였다.
카스트로는 자녀가 9명이 있는데 상업에 종사하거나 관직에 있는 자녀가 하나도 없다. 꾸바정부에서는 3대의 벤츠를 손님 접대차로 사용한다. 그외 관원들은 모두 에이컨이 없는 라다를 사용하며 꾸바국무위원회 부주석 라울은 아직도 루추하고 낡은 집에서 살고있으며 경비도 없거니와 와이프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꾸바에 대한 오홍영의 제일 깊은 감수는 "간부와 군중들의 관계가 아주 좋다."였다. 진구장대사는 꾸바의 다른 하나의 중요한 특색은 “정치는 엄하지만 사회분위기는 아주 느슨하다."고 말했다.

"꾸바의 집권당은 사회주의신념에 확고부동하며 력사상 그어느 운동에서도 지식인을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꾸바공산당이 정치를 집행한 몇십년간 정치상에서 빚을 지지 않았고 누구도 기분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다. 이는 꾸바집권당의 통치적기초이다”.

꾸바는“인민정권대표대회”(중국의 전국인민대표회와 동등함)가 소집될 때마다 텔레비죤방송에서 생방송을 한다. 대표들은 자유롭게 발언할수 있고 페이덜 등을 포함한 모든 령도자에게 아무 의견이나 제출할수 있다.

왕정은 한 대표가 직접 페이덜 카스트로에게 자신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데 대하여 특별히 제출하였다고 밝혔으며 카스트로도 직접 “이런 화제를 이번 회의에서 토론하기에는 부적절하니 후에 당신이 직접 나를 찾아와서 우리 함께 상의하고 해결방법을 생각합시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평균과 효률은 의연히 피할수 없는 문제이다.

하바나거리에는 외환권을 사용하는 가게가 있는데 옷은 모두 색상이 다를뿐 같은 디자인이다. 23거리는 하나바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이다. 국영커피점에서는 2가지 음료와 2가지 빵만 공급하며 복무원은 외국손님에 대하여 상대도 하지 않는다.

⊙보기 드문 “시장경제”

전세기 40~50년대에 미국에서 구입한 포드, 카디라커 등 승용차는 아직도 꾸바거리에서 볼수 있으며 60~70년대 꾸바는 쏘련과 미국의 랭전의 제일전선으로 되면서 그때 쏘련에서 지원해줄 라다승용차, 폴로내자승용차도 지금 꾸바의 거리에서 달리는 모습을 여전히 볼수 있다.
하지만 1991년 쏘련이 해체되면서 지원을 취소하였다. 국제설탕가격이 대폭 내려가면서 꾸바의 설탕제조업은 불황을 겪었고 경제는 중심을 잃어버렸다.

"가난하면 생각도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1991년, 카스트로는 꾸바에서 개혁개방을 실시,“대외개방"을 기본국책으로 정하고 “한계적이고 절차적으로”사영경제를 발전시키고 작은 규모의 시장을 꾸려가면서 농산물의 류통을 촉진하였으며 꾸바시장에서 딸라도 류통시켰고 외자업체에 부분적 업종을 개방하였다.

중국에서 제11기 3차전회의이래의 중요한 문선번역문을 공개적으로 출판발행한것을 본 카스트로는 중국개혁경제는 꾸바에 대해 아주 중요하며“특히 농업생산과 경제특구건설의 경험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였다.

사거리시장은 하바나를 비롯한 수많은 농업무역시장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곳이다. 대개 100여개 자리가 있는데 비록 자리를 모두 메우진 못했지만 판매소리로 계속 들끓고있으며 특히 외국사람이 들어오면 장사군들은 더욱 소리 높이 웨치고있다.

"시장경제"가 바로 이 거리의 준칙이다. 가게주인은 자체로 물건을 구입하고 손익을 자부담하며 가게세금을 내고 나머지는 자기 소유가 되는것이다. 걸상을 파는 소년 마얼로는 하바나에 와서 운수 좋을 때에는 하루에 200피소 좌우 벌 때가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월급과 비슷하다고 한다.

⊙사영경제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1993년 도금룡은 하바나에 가서 한 번화거리에“천단"이라는 중국료리점을 오픈하였다. 거기는 꾸바에서 유일하게 사영경제가 존재하는 곳인데 모두 6개의 중국음식점이 있다.

"지역은 정부의것이고 관리는 본인의것이며 음식점재산권도 본인의것이다”. 도금룡은 이는 꾸바정부에서 중국인에게 주는 특수권리라고 말할수 있다고 하였다.

이 중국음식점에서는 꾸바의 외교부장, 상무부장을 접대하였고 꾸바에 방문하러 오는 각급 중국관원들도 대접하였다. 꾸바정부는“천단음식점"을 두층으로 늘이고 방 하나 더 만들도록 특별히 허락하였다. 도금룡은“꾸바에서는 음식점에서 한번에 12명 이상 손님을 접대할수 없다고 규정하였지만 우리 이 식당에 대해서는 한쪽 눈을 뜨고 한쪽 눈을 감아준다"고 말하였다.

2005년 꾸바인이 꾸바외교부 문밖에서 항의를 하면서“꾸바는 사회주의국가인데 어떻게 사영경제가 존재할수 있는가? 왜 중국인에게만 이런 대우를 주는가?"고 질문하였다. 나는 항상 딸과 사위한테 “음식점이 마지막에 회수당할 준비를 가지고있어라. 누가 음식점의 사장인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라고 말하군 한다고 했다.

2004년 11월 8일부터 꾸바중앙은행에서는 경내에서 딸라류통을 정지시킨다고 선포하였다. 정책회수부분은 부패해지는 재출현이다.“사거리시장”의 입구에서 한무리 중년녀성들이 사람마다 손에 플라스틱봉지를 들고 요구하는 사람들한테 팔고있는데 경찰이 걸어오는것을 보면 그들은 인츰 피해버리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은 정면으로 마주 가서 몇개 플라스틱 주머니를 경찰의 손에 쥐여주기도 하는것을 볼수 있다.

카스트르가 제일 근심하는것은 고위급관원들의 부패였다. 1992년 10월 정책조정이 금방 전개되면서 꾸바정치국 위원들중에도 례물을 받은것으로 퇴당당한 사람이 있다. 2001년 3월 꾸바수산업 부장이 철직당했는데 이는 이 부문의 직원한테서 "비법적인 례물"을 받았기때문이다.

"이런 개혁은 리익과 손실을 같이하는것이 아닌가?”꾸바지도자는 우려를 하기 시작하였다. 진구장대사는 “꾸바에 대하여 말하자면 개혁은 두가지 전제가 있는데 하나는 정권에 위협이 없어야 하고 둘째는 민중들의 사회주의신념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오홍영은 “꾸바는 3개 기본점이 있다. 공산당의 령도, 사회주의 길과 꾸바인민의 단결"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새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27살인 마르셀라는 예술학원을 졸업한후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제작원으로 일했고 소년궁전에서 그림을 배워주었으며 현재는 “천단"에서 복무원을 하고있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해하고있다.“로임이 부총경리의 어머니보다 더 높고 택시를 타고 출근할수 있고 주말마다 친구들과 모여서 파티를 할 때도 전부 감당하는데 이러니 체면이 생긴다.”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어릴적에 “작은벼룩"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의 형님인 페이덜이 지어준것이다. 2006년 국가사무를 인계받은후 원래의 대정방침에 어긋나지 않는 기초에서 다시 개혁개방정책을 가동하였다.

재작년 7월 26일 라울은 꾸바의 전국민을 조직하여 대토론을 하였다. 꾸바의 금후의 정치경제발전의 계책에 대하여 120만건의 건의를 받았다. 대토론 결과를 보면 꾸바백성들은 가일층 사유경제를 발전시키고 주택조건을 개선하며 공중교통을 발전시키기를 바라며 로임대우를 높여주고 사유재산, 자유매매 등을 제고시킬것을 바란다는것을 보아낼수 있다.

중국과 윁남의 경험을 빌어서 국유기업개혁은 꾸바의 시험으로 되였다. “신발공장의 종업원들이 이미 주식에 참가하고 관광업도 에스빠냐와 카나다로부터 유치하였다"고 오홍영은 말하였다.

저녁무렵 하나바 등대는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램프를 돌려 멀리 바라보면 불빛은 때로는 구름을 뚫고 때로는 어둠속에 가라앉는다. 등대는 이렇게 바다로 나아가고 항구로 들어오는 선원들을 지시하면서 164년을 우뚝 서있다(끝).

  래원: 지부생활 (편집: 최엽(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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