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위 7억이라는 몸값에 대해 당사자도 어떻게 실증해야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형용하는 "중국에서 제일 총명한 농민" 조본산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다.
그렇다면 조본산은 과연 어떻게 "연기와 장사"를 성공적으로 접목할수 있었는가?
"독립왕국"
조본산의 상업적인 면을 말하려면 반드시 그의 "문화왕국"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심양에서 15킬로메터 상거한 소가툰 오동거리 66호는 "소품왕" 조본산의 대본영이다. 그가 이곳에 기거하는 시간은 도심에 있는 자신의 집에 있는 시간보다 더 길다.
부지면적이 2.5만평에 달하는 "료녕대학 본산예술학원 실습기지"는 1억원에서부터 7억원 사이로 부동하게 평가된다. 그러나 조본산은 이 땅의 완전한 소유권을 갖고있지 않다. 간판을 "실습기지"라고 한것도 우대정책을 향수하기 위해서다.
조본산은 주방과 침실이 달린 상무차를 자주 사용하는데 무릇 일상 출행은 모두 이 상무차를 전용으로 사용한다. 그의 자동차 창고에는 로스래스차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손님을 영접할 때만 이 차를 사용한다. 본인은 절대로 이 차에 앉아다니면서 위세를 떨지 않는다.
소가툰의 시계는 느리면서도 절주있게 돌아간다. 기지식당은 매일 5번 음식을 준비한다. 배우들은 10시부터 련습을 하는데 오후 4시 30분이면 도심으로 향하는 공공뻐스를 타고 하루의 사업을 시작한다. 저녁 10시면 기지로 돌아온다. 미혼종업원들은 기지의 숙소에 거주한다. 결혼한 종업원들은 조본산이 그들에게 사준 주택에서 생활한다.
마치 드라마 "류로근"의 룡천별장에서처럼 조본산은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독립왕국을 경영한다. 이는 소형 공산주의사회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일반 민영기업과 사뭇 다르다. 이 기지에는 료녕성문화청에서 파견 주재하는 당위서기가 있었는데 당전 9명의 지도부 성원을 갖고있다. 조본산을 제와한 8명은 조본산의 매부인 상무부총재 마서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가 고용한 경리인들이다.
리사장인 조본산은 여기에서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있다. 기자의 취재가 있어도 반드시의 그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가족기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공회 오주석은 "조본산은 고향에 돌아갈 때 고향사람들에게 부조금을 주는 일은 있지만 절대 고향사람들을 기업에 배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업기초
본산매체 소속단위들에는 료녕민간예술단, 본산영화 텔레비죤, 서동문화발전유한회사, 료녕대학본산예술학원이 있다. 총재 류쌍평은 "공연은 본산 매체의 주업이다"고 했다.
심양중심거리에 자리잡고있는 "류로근대무대"는 제일 큰 인기를 누리고있다. 배우진영이 강한 2인전극장인데 6개 극장가운데 소유권이 조본산에게 속하는 유일한 극장이다. 사람들은 이 극장을 "기함점"이라고 부른다. 듣기에 따라 국제브랜드감을 준다.
2005년부터 이 6개 "류로근극장"에는 재부가 굴러들기 시작했는데 위치가 좋은 자리표값은 200원에서 330원으로 올랐으며 좌석이 600개에 달하는 이 극장의 문표는 한시간내에 표가 매진됐다. 극장 문앞에는 늘 표되거리장사군들이 있는데 표되거리장사군을 타격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보안인원 40명을 배치했다. 2007년 이 6개 극장에서 5800만원의 총수입을 올렸는데 세금만 1300만원을 납부했다.
심양에 온 각급 지도자들은 모두 "류로근대무대"에 와서 공연을 감상한다. 관중들도 외지사람을 위주로 한다. 원래 심양에는 관광지가 고궁, 동릉, 북릉밖에 없었는데 지금 "류로근대무대"는 새로운 풍경선으로 되고있다.
상인으로서 도가 있다
2008년 초, 중앙TV에서는 "향촌사랑2"를 둘러싸고 연구토론회를 소집했다. 회의에서 백암송은 " 이 드라마의 평균시청률은 8.46%이고 최고 시청률은 11.62%로서 뉴스프로를 초과해서 최고의 시청률을 창신했다"고 말했다. 극장공연외에 어떤 사람이 조본산의 영화촬영에 투자하여 2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줄곧 조본산은 위기감을 가지고 생활했다. 그는 소품배우로만 있으면 "중앙TV"에 통제된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자신의 촬영작품이 있으면 중앙TV에서 방송하지 않아도 여러 성 TV에서 방송할수 있다. 그는 일전 한푼 대부금을 밭지 않고 회사를 차리고 영화, TV드라마를 촬영했다. 1998년 그는 자신이 직접 투자하여 영화 "남부녀주임"을 제작했다.
빈곤한 가정출신으로서의 조본산은 원가를 통제하는데 나름대로의 아이디어가 있다. 우선 그는 매번 촬영지를 선택할 때 한곳을 정한다. 고향 철령지구의 개원시에서 촬영할 때 정부에서는 그에거 푸른등을 켜주어 촬영지사용비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다음 배우기용에서 자신의 제자와 종업원들을 사용한다. 지난 한시기 녕정, 범위 등 스타들을 영입했다. 종업원 장소비는 "금후 스승님은 전부 자기 사람을 기용할것이다"고 했다.
자기 사람을 기용하면 출연료는 기본상 주지 않아도 된다. 한 지인은 기자에게 "TV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기지 배우들로서 낮에는 TV드라마를 촬영하고 밤에는 공연에 참가하는데 로임만 타면 된다"고 했다. 배우는 물론이고 매 종업원들은 모두 한가지 사업만 하는것이 아니다. 기숙사 복무원들도 밤에는 극장에서 검표원으로 일한다.
조본산은 투자에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그가 료녕축구에 개입한 것은 유일한 실패작인데 그는 이 단락의 과거에 대해 말하기를 매우 꺼려한다. 그는 축구는 "정말 더럽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본산기업은 축구에 일전도 투입하지 않았다. 조본산이 속임수에 들었다고 생각하는것은 그가 많은 시간, 정력을 소비한데 따른 실망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처음 캔 금통은 석탄, 강재, 운수를 통한 재부축적인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인차 문화산업만이 자신의 우세라는 점을 인식했다.
기자가 조본산에게 리사장과 배우사이에 어느것을 택하겠는가고 물으니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저는 당연히 예술을 택할것이다. 만약 예술산품이 없으면 저도 끝장날것이다"(남경라지오TV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