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생활"과 인연을 맺은지도 어언간 20여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먼 기억속에서의 "지부생활"은 당간행물이란 생각에 어쩐지 거리감을 가졌었던것 같다. 하여 당시 "지부생활"은 나의 인생에서 그때그때 급히 필요한 "약"을 내여주는 "급진의사"의 역할을 감당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급진의사"였던 "지부생활"이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기 시작하였다.
20살 꽃나이,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룡정진제1유치원에 분배받게 되였다. 제1기 유아사범졸업생들이여서 조직의 사랑과 기대 매우 컸었다. 하여 영광스럽게 진정부에서 조직한 당과에도 참석하게 되였고 3일이란 집중학습이 끝나자 당지부서기인 언니의 도움으로 당조직에 입당신청서까지 바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였다. 원장선생님이 사상회보를 써바치라고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대충 쓰고싶지 않았고 당조직에 처음으로 바치는 사상회보인만큼 멋지게 쓰고싶었다. 하여 원장선생님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터놓으면서 필요한 책을 제공하여주실것을 부탁드렸다. 그때 원장선생님이 건네주신 책이 바로 "지부생활"이였다. 그때로부터 13년이란 긴긴 "적극분자"시절을 거쳐 새싹유치원 당지부서기 겸 원장사업을 하고있는 오늘까지 "지부생활"은 언제나 어김없이 내옆을 지켜주었다.
내가 당년한이 2년, 원장경력이 일년도 채되지 않은 어느 하루, 햇내기 원장인 나에게 새싹유치원의 전직 당지부 부서기였던 김순선서기가 "7.1"을 맞으면서 "당과"를 조직하여줄것을 부탁하였다. 하여 본의 아니게 "당과"가 나의 원장의 자격을 검증하는 자리가 된것이였다. 그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것이 "지부생활"이였다. 3시간 반이란 긴 조직담화에서 진땀을 빼던 자신의 입당과정을 되새기면서 "지부생활"에서 재미나는 당사이야기를 수집했다. 당과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당과가 끝나자 참가한 교사들마다 정치가 이렇게 재미있기는 처음이라면서 나의 "박식"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였다. "자격검증시험"을 무사히 통화한 자호감이라 할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신심이라 할가, 아무튼 그때의 솔직한 심정은 너무 행복했고 "지부생활"잡지가 너무나 고마왔다.
전직 당지부부서기의 퇴직과 더불어 당지부서기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할 시기가 왔다. "어떻게 정치학습을 재미나게 서로가 기다리는 사간으로 만들것인가?" 이것은 원장사업과 더불어 당지부서기 직무를 감당하면서 내가 줄곧 생각하여온 문제였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지부생활"에 실린 한편의 문장이 나와 우리 새싹교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고 따분하던 정치를 생기와 활기로 차넘치는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주는 새로운 전환점으로 되게 하였다.
그 문장이 바로 2006년 제2기 에 실린 "비워야 채워지는 삶"이란 문장이다. 외동자녀들이 날로 늘어나는 현실생활속에서 시장경제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돈-병"에 걸려가고있을 때 이 문장은 우리 새싹청년교사들에게 많은 계시와 동력을 주었다. 그뒤를 이어 당간행물로 높이 바라보기만 하던 "지부생활"잡지에 우리 새싹교사들의 감수와 수기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와 "지부생활", "지부생활"과 새싹유치원의 끈끈한 인연은 끝어질줄 모르고 지금까지도 지속되여가고있으며 따라서 "지부생활"이 우리 교사들의 교수수기, 인생수필, 심득 등 생활의 이모저모들을 반영하여주는 인생의 활무대로도 되고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기 시작해서부터 20여년간 "지부생활"은 단순한 당지식 간행물로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순간 순간마다에서 "급진의사", 지식의 보물고로, 인생의 길동무로,등대로 결정적인 작용을 해주었던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