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바의 베일을 벗기다
바나는 이미 장마철 마무리에 있다. 검은 구름아래의 깔리브의 바다 대부분은 검푸른 색을 띤다. 때때로 태양은 구름층을 꿰뚫고 갈래갈래의 순결한 빛을 내뿜는다.
최대 자본주의국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치에서 꾸바는 서반구의 독자적인 사회주의국가로 약 50년 동안 견지해 왔다.
지난해 2월 25일, 라울 카스트로는 꾸바의 국무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으며 꾸바의 최고 지도자로 되였다. 82세인 페이덜 카스트로는 정년퇴직하였으나 미국국무장관 라이스가 기대하던 "거대한 변화"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라울 카스트로는"인민의 기본요구"를 만족시키는것은 목전 꾸바의 가장 중요한 일이며 동시에 전면적이면서 련관적인 방식으로 이 목표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전세계 모두가 꾸바의 새로운 지도자의 언행에서"개혁"의 암시를 찾으려고 시도할 때 하바나 사람들은 계속 자기의 일상생활을 중복하고있었다.
저녁무렵, 등대아래에 있는 에스빠냐식 작은 집들에서 노란불빛이 비추었고 몇명의 낚시군들이 저녁거리로 물고기를 낚고있다.
거리공연으로 유명한 한 청년은 클라리넷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곡 "Hey, Jude"을 연주하고있다.
◆ 가장 중요한 작은 노트
미리안가족은 "메리카야구장 부근에서 살고있다. 미리안 아버지는 국영기업의 부사장인데 온 가족은 아버지가 매달 벌어오는 800꾸바 피소(약 인민페 240원)로 생활을 유지하고있었다. 이는 꾸바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입에 속한다. 카스트로 월급도 인민페 3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집은 국가에서 분배해준것이고 가정용제품인 랭장고, 텔레비죤, 선풍기도 포함되여있으며 대부분 꾸바가정과 마찬가지로 재봉기에 파란색 비닐천을 텔레비죤장으로 하고 랭장고 문은 닫혀지지 않아 련결핀을 용접해놓았다.
하지만 국가에서 나누어준 가장 중요한 물건은 록색가위로 된 작은 노트였다.
노트의 첫페지는 온 가족의 인원수와 나이를 기록하고 두번째 페지에는 달마다 매개 사람들이 나누어가질수 있는 필수품들을 기록하는데 거기에는 주로 쌀 3.5kg, 까만콩 혹은 팥 0.7kg, 설탕 2.5kg, 비누 1개, 닭알 10개, 기름 0.25kg, 커피 1봉지, 닭고기 1kg 포함되여있었다.
달초마다 미리안과 어머니는 함께 작은 노트를 가지고 "국영공급지점"부근에 가서 필수품들이 도착하면 국가에서 통일로 규정한 가장 싼 가격으로 필수품들을 구입한다. 례를 들면 전에 닭알 5개를 주는데 하나에 50전이였다. 후에는 5개에 30전인데 혹시 다시 더 많이 사려면 원래 값보다 더 비싸다.
노란 일광램프, 카운터에 엎드려서 수다를 떨고 있는 몇몇 직원들, 벽구석에 몇십마대 입쌀과 기름을 넣은 기름통들, 이는 하바나의 일부분 "국영공급지점"들의 표준적 배치이다.
미리안의 어머니는 노트에 기록되여 있는 물건은 기본상 온 가족이 한주일동안 먹을수 있지만 혹시 다른 기타 물건이 수요된다면 "암시장"에 가서 구입해야 된다고 말했다.
하바나사람들은 해외 친척들이 보내주는것, 공장에서 계획이상으로 생산한것을 슬쩍 가져오는것 즉 항상 자기만의 방법으로 물건을 구입해가지고 "암시장"에 가져다 팔고 자기가 필요한 다른 물건을 살수 있다.
"암시장"의 가격은 국가에서 제정한 가격보다 훨씬 높지만 기본상 꾸바사람들의 생활요구는 만족시켜줄수 있다.
미리안 집의 랭장고에는 생일단설기 하나와 "스프라이트" 음료 한병이 있다. 미리안 집의 최신가전제품은 중국에서 생산한 전기밥솥이다. 2006년 꾸바는 중국에서 몇백만대의 전기밥솥과 랭장고를 수입하여 꾸바의 제일 빈곤한 농촌부터 전국인민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였다.
"국영공급점"문앞에는 집집마다 랭장고를 나누어준 상황표가 나붙어있다. 랭장고는 꾸바와 중국"하이얼"집단의 협의하에 수입된것인데 수십만대에 달한다고 한다. 농촌과 편벽한 시골에 우선 공급되였으며 2006년 말에 이르러서야 꾸바수도에서 발급되기 시작하였다. 중국 전 주꾸바대사 전구장은 우리에게 이는 카스트로의 "빈곤한 사람과 발전하지 못한 지역을 우선 고려하는"일관한 사로를 구현했다고 하였다.
이는 꾸바의 혁명이며 카스트로의 혁명이다.
미리안의 아버지는 금방 감기에 걸리였는데 제모의사의 진료소에서 페니실린 3개어치의 약값인 대략 인민페 3원 50전을 썼다. 꾸바의 각급 병원에서 하는 검사와 진료는 모두 무료이다. 제모는 이 구역 120호 가정, 600여 인구의 "가정의사"이다. 그는 이 구역의 질병예방, 진찰과 사회방역 등을 책임졌다. 환자는"가정의사"의 진찰을 받은 다음에야 한급 더 높은 종합진료소나 병원에서 치료받을수 있다.
그는 관리구역내의 매개 사람을 위해"건강카드"를 작성해야 하며 중병에 걸린 주민에 대해서는 정기방문과 진찰을 해야 한다. 진료소에는 기본의료설비와 약품, 진찰실, 대기실 등이 있는데 비록 작지만 구전하다.
꾸바의 독특한 특색을 가진"가정의사"제도는 전세기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있다.
미리안의 아버지는 국가의 의사제도에 대해서 "병원이 무료지만 더 좋은 의료조건과 식사대우를 받으려면 그래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병원, 의사도 좋고 나쁨이 있기에 더 좋은 병원에 가려면 역시 관계를 통하거나 례물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페이덜 카스트로는 의연히 "근 몇년래 위생부문에서 군중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가정의사만큼 사회성과와 의료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제도는 없다."고 하였다.
"많은 꾸바인과 외국인들이 우리의 가정의사와 교수들이 그들을 위하여 무료로 봉사할 때 그들은 느낄수 있을것이다, 이것이 바로 꾸바의 혁명이다." 꾸바의 한 변호사의 말이다.
18살의 미리안은 기술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고있지만 꾸바의 각급 교육은 모두 무료이기에 부모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중 꾸바대사 아이얼난더스의 소개에 따르면 경제가 제일 어려웠던 전세기 90년대에도 수업을 중단한 학교가 없으며 한칸의 숙소도 다른 용도에 쓰지 않았다고 한다.
카디즈교수는 하바나대학 에스빠냐어과의 교무장이다. 그는 하바나대학의 임무는 "질 있는 학생을 양성하여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것이다"고 하였다.
꾸바에도 전국통일대학입시가 있는데 그중 모든 전업에서 력사는 필수과목이다. 카디즈교수는"꾸바의 력사와 현재를 명확히 아는것은 대학생의 의식형태와 사상양성에 모두 중요하다"고 했다.
미리안도 기술학교를 졸업한후 대학입시에 참가할수 있다. 그러나 시험에 못붙는다 해도 "사회대학과정"을 선택할수 있다. "사회대학과정"은 대학입시가 필요 없으며 고등교육을 보편화하기 위한것이라고 교수는 말했다.
하바나대학은 페이덜 카스트로를 양성했으며 지금은 꾸바의 최고 청년들이 모여있는데 그중의 최고는 "사회일군", "카스트로의 아들딸"의 영예를 지닌다. 그들은 학교와 다른 나라의 기구중에서도 중요한 과업을 담임하고있어 꾸바 미래의 간부축적이다.
그러나 하바나대학의 각급 당위는 행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주요한 사업은 상급을 대신해 학교의 행정교수기구를 감독하는것이다.
젊은이들은 항상 자신만의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하바나대학 본과 3학년의 중국류학생 조위얼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한차례 학급회의가 있었다고 하였다. 한차례 반미시위때 학급에서 4명의 꾸바학생이 참가하지 않았다. 이에 그들 전체 반급학생들은 "반미시위에 참가할것인가?"를 토론하였다. 4명의 꾸바학생은 반미시위참가여부는 기본적인 인권문제 속한다면서 가방을 메고 나가버리자 교실에서는 약간의 박수소리까지 울렸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은 사회일군들한테 불려가서 각자 개별담화를 가지게 되였다."
◆ "도처가 모두 사회주의이다!"
하바나의 "외교택시"에는 언제나 간단한 표격식과 볼펜이 있고 기사는 매번 비즈니스 고객의 인원수 및 출발지점과 목적지 등등을 기록하여 아무때든 필요한 검사준비를 하고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택시회사가 국가에서 운영하기때문이다.
외환권CUC를 사용할수 있는 가게, 외국인만 접대하는 호텔, 외국인만 식사하는 레스토랑, 이런것들은 꾸바사람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도록 분할하였을뿐만아니라 거리의 택시마저도 명확히 구분되여있다. 심청산은 에어콘 표시가 있는 승용차는 CUC로 결제하는바 꾸바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반개월 월급으로 택시를 타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대다수 꾸바사람들의 택시는 보통 검은 연기가 나는 구쏘련의 큰 승용차인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는 승용차모양으로 된 공중뻐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석유가 모자라는 원인과 카스트로의 한마디 호소에 꾸바의 모든 공중뻐스와 개인뻐스는 손만 흔들면 세워줘서 누구나 다 탈수가 있게 하였다.
매일 오후 1시, 저녁 8시면 4개 텔레비죤방송국에서 통일로 국가뉴스를 방송한다. 꾸바의 유일한 중문으로 된 신문인 "광화신문"의 편집 강조강은 기자한테 그들의 신문에 싣는 꾸바의 뉴스는 직접 "그라마신문", "로동신문", "꾸바청년신문"등 정부신문에서 번역한것이고 "자기절로 인터뷰해서 쓴 기사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오랜 시간이 걸려야 어쩌다 한번씩 차가 오니 공중뻐스정거장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있다. 외환권 CUC 바꾸어주는 곳에서도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것은 외환권가게에서만이 세척제와 가전기구 그리고 품질이 좋은 휴지를 살수 있기때문이다.
하바나대학 광학전업 박사생 후리오는 꾸바를 "줄을 서는 나라"라고 말했다.
꾸바의 력사를 돌이켜 보면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오홍영은 이렇게 말했다. "모종 정도에서 미국이 카스트로를 핍박하여 사회주의로선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하여 꾸바는 자기절로 통일적으로 제한된 자원으로 협조하면서 쏘련측에 기울수밖에 없었다."
(다음기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