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9년 1월호
련재
카스트로와 꾸바
"내가 없어도 꾸바의 력사는 여전히 계속될것이다"
2009년 01월 16일 13:43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나는 국무위원회 주석 혹은 총사령의 직무를 찾으려는 생각도 없거니와 접수도 하지 않을것이다. 나의 기본책임은 직무를 보존하는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경험을 기여하려는것이다. 행운스럽게도 특별한 년대에 생활했으니 나의 생각과 경험은 일정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2월 19일, 꾸바공산당 중앙기관지는 카스트로가 국가와 군대의 최고지도직무의 사직을 민중에게 선포하는 공개신을 발표하였다.

2006년 7월 31일, 카스트로는 위장출혈로 수술을 받게 되였다. 수술전 그는 꾸바공산당 제1서기, 꾸바혁명무장력량 총사령관, 그리고 국무위원회 주석 겸 부장회의 주석직을 망라한 모든 직무를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한테 넘겨주었다.

그러나 많은 꾸바민중들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가 다시 한번 일어날것이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들은 병석에 있는 카스트로를 위해 성대한 생일축제를 열었으며 하바나의 많은 상점앞에는 카스트로의 사진이 나붙어있었다.

재작년 4월 29일 꾸바국무위원회 부주석은 “그는 이미 자기의 생명과의 전역에서 이겼으며 한창 승리를 공고히 하는중이다.”고 말했다. 차베스도 “그는 이미 다시 대권을 틀어쥐기 시작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적수는 별의별 궁리를 다 해가며 꾸바의 지배자를 바꾸려는 미국이 아니라 시간이였다. 때문에 카스트로는“나의 체력을 초과하는 책임을 접수하는것은 량심에 어긋나는것이다”고 말하였다. 지금 그는“다른 무기”로 “관념전장”에서 전투를 하고있다.

카스트로가 퇴직을 선포한 5일후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꾸바국무위원회 주석 겸 부장회의 주석에 당선되였다. 취임식에서 그는 “카스트로는 누구도 대체할수 없으며 그의 사상은 영원히 존재할것이다. 꾸바혁명에는 오직 한명의 총사령관밖에 없는데 그가 바로 카스트로이다”고 말하였다.

▲ 카스트로가 “없는” 나날

꾸바사람들은 모두 카스트로의 이름을 친절하게 부르고있다. 비록 잠시적인 권력인계였으나 꾸바의 미래는 신속하게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심하는 중점으로 되였다. 허나 꾸바 국내는 조용하였다.

카스트로가 지도적책임을 리행하지 못하는 나날에도 기관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매일 1면에 혁명어록을 실었으며 카스트로의 어록이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카스트로가 꾸바 기타 지도자거나 혹은 민중들한테 쓴 편지가 바로 신문에서 제일 중대한 뉴스였으며 “카스트로의 건강이 호전되고있다는 뉴스도 텔레비죤에서 거의 매일 방송되고있었다.

그러나 례사롭지 못한 일들도 약간 있었다. 하바나의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더욱 많게 라울 카스트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것인가 하는 등등의 화제를 토론하였다. 12월 7일, 꾸바에서는 카스트로의 혁명력사를 총화한 기록편을 방송하였다. 꾸바에서 2년 동안 류학한 한 사람은 “카스트로는 개인숭배를 반대하며 이런 프로는 처음 본다”고 하였다.

확실히 꾸바의 길거리에서는 거와라의 초상화는 심심찮게 볼수 있지만 카스트로의 초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카스트로가 입원한 병원대문앞에는 자신들의 수령이 하루빨리 건강이 회복하기를 비는 사람들을 찾아볼수 있다. 꾸바의 일부분 사람들을 보면 카스트로가 바로 기둥으로서 그의 령도가 없는 나날을 접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퇴직하고 집에서 가정려관을 하고있는 카로스는“물론 우리도 그의 건강을 근심하며 하루빨리 나아졌으면 한다. 그러나 근심해서 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고 말하였다.

필경 카스트로는 수백차의 암살, 음모에서 벗어났지만 여든 고개에 올라선 그로 말하면 쇠약해지는 신체를 어찌는수가 없었다. 혁명성공 48년이래 꾸바사람들은 이미 카스트로의 죽음을 포함한 각종 위험에 부딪치는것에 아마도 습관됐을것이다. 더구나 꾸바인들의 생활에서 카스트로는 떨어질수 없게 되였으니 말이다.

사거리에서 아릿다운 처녀들이 지나가는 차를 살피고있다. 공중뻐스의 부족과 에너지긴장으로 하여 카스트로는 민중에게 공가차를 포함한 모든 차들이 한길이면 태울것을 호소하였다.

카스트로의 중문번역을 맡았던 왕정은 이렇게 말했다. "제일 곤난한 시기에 카스트로는 지어 혼자 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대오에 들어갔으며 개인매력과 언변으로 군중들의 불만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가 불시에 쓰러지고 지어 권력을 내놓아 세계가 꾸바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것이라고 여기고있을 때 오히려 꾸바는 조용하였다.”

▲“할아버지의 1원”

하바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도금영은 꾸바의 열성적인 방관자이다. 카스트로와 꾸바민중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그는 "할아버지(카스트로를 가리킴)는 자기의 자식들한테 인당 1원씩 줄수 있기를 바랐으며 그것을 위해 진력하였다."고 비유하였다. 식품, 가정용전기제품 등 정부에서 배급하는 물자가 바로 카스트로가 인민들에게 주는 "1원"이다. 이 "1원"은 사실상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무료교육과 죽을 때까지의 무료의료까지 망라된다.

혁명이 성공한후 카스트로는 우선먼저 자기의 장원과 농장을 국가소유로 만들었으며 그도 보통 민중과 마찬가지로 미약한 월급으로 생활하였을뿐만아니라 자신의 어느 자식도 상업에 종사하거나 관리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때문에 비록 공급물자가 보통가정의 생활을 유지하는데는 모자랐지만 이 "1원"으로 하여 카스트로는 민중들의 제일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되였으며 30년래 “순수하고 리상적이고 완벽한 사회주의”를 실천하는데 힘을 기울이게 되였다. 브라질의 한 사람은 혁명전의 꾸바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이곳은 빈곤, 매음, 밀수와 마약이 살판치며 도박장과 돈세탁의 락원이다." 물론 이것과 비해본다면 카스트로가 령도하는 꾸바는 천당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살수 있는 곳이였다. 카스트로는 "미국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자격을 가질 나라는 꾸바를 내놓고는 없다"고 말하였다. 대다수의 꾸바사람들은 아마도 원래보다 더 좋아진 생활로 해서 그런지 카스트로를 열애한다.

구쏘련의 지원은 꾸바가 "완벽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리념에 확실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991년 쏘련이 해체되면서 국가에서 배급주던 입쌀, 콩 등 식품이 엄중히 모자랐으며 고기나 닭알같은것은 몇달에도 한번 보기 바빴다.

꾸바주재 중국대사관의 진구장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자기가 몸소 겪었던 일을 이렇게 말했다. 그때 꾸바는 보통 상점은 물론, 외국인상점에도 상품이 매우 제한되였다."

거지나 버린 아이를 볼수 없던 꾸바에서 외국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아이들과 손님을 잡아끄는 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밀입국현상이 엄중히 늘어나면서 인심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농민자유시장식"의 상점과 매대를 회복하겠는가 하는 문제에서 카스트로는 10년동안이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나중에 “잠시 순수하고 리상적이고 완벽한 사회주의를 포기한다.”고 개혁을 선포하였다.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당과 정부가 혁명붕괴의 선택에서 자아멸망하기보다 모험적으로 개혁을 하는것이 낫다."고 해석하였다.

▲ 카스트로의 우려

인구당 매달에 10개씩 주던 닭알도 현재는 경상적으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였다. 미리안이라고 하는 한 사람은 틈만 나면 공급점에 들려보면서 물건만 있으면 사오군 한다. 그러나 그는 “10년전에 비하면 정전도 적어졌고 외화도 쓰게 하며 살수 있는 물건이 아주 많아졌다"고 하였다.

이 모든것은 카스트로가 14년전에 한 개혁과 갈라놓을수 없다. 카스트로는 예전에도“시장경제"를 잠시나마 시험해보려고 하였으나 탐오부패, 투기모리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피할수 없는것이다. 꾸바에 차례진 선택의 길은 기실 그리 많지 않았다. 카로스의 가정려관은 두개의 객방밖에 없는데 하루의 방값은 보통 꾸바인들의 두달 월급에 해당된 36딸라에 달한다. 동시에 공가의 리익을 점하는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국영택시도 고의적으로 료금미터기를 켜지 않고 돈을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는 등등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꾸바의 변화에 대하여 일반서민들의 평가는 "아주 좋다"이다. 카스트로는 만년에 거대한 기대의 파멸을 경력하였으나 자신의 자제로 사회주의꾸바에 다시금 시간을 얻게 하였다. 부리야띠가 카스트로를 위해 쓴 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는 또 한번의 혁명을 사고할뿐만아니라 더욱 높은 정치각오의 단계에서 길을 찾을것이다"

1992년 우간다의 기자가 카스트로에게 "만약 꾸바에 카스트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고 물었다. 카스트로는 "내가 없어도 꾸바의 력사는 여전히 계속될것이다. 나는 력사발전과정에서의 하나의 탐색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미국인들은 꾸바가 카스트로이고 카스트로가 꾸바라고 본다. 그러나 꾸바에는 카스트로의 조각상이거나 이름으로 명명된 길거리거나 건축물을 하나도 찾아볼수 없으며 지어 돈에 찍힌 화상도 그가 아니다. 좀 특별한 점이 있다면 300년의 력사가 있는 로마식건축물의 하바나대학 법학원앞 잔디밭에 놓여진 땅크가 눈에 훤히 뜨인다.

하바나대학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하바나대학은 원래 귀족의 특권이였는데 바로 카스트로가 이 땅크로 대학의 문을 열어놓았다. 이것이 바로 혁명의 상징이다"

(다음기 계속)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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