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경제기술개발구-연변사람 치고 모르는 이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그 인지도와 기대치가 대단하다. 그만큼 개발구란 바로 외자, 대상 인입의 "단지"로서 수준급 외자기업들이 운집했다는데 태반 인식이 치유되고있다. 현재 개발구는 그 지역의 고신기술과 지역특색을 함유한 브랜드제품생산을 리드하는 주력산업군체의 틀을 형성하고있다는데 새로운 인식이 자리한다.
연길경제기술개발구가 바로 이를 대변해주고있다. 특히 연룡도일체화건설과 길림성동북부 중심도시확립에서 연길시경제개발구의 작용이 더욱 기대가 된다.
사실 지난 60, 70년대 연길시에는 기계, 자동차공업 등 계획경제의 맥을 이었던 공업틀이 이루어졌었으나 대체로 "야장간"식 생산을 이어오다 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시장경제마당에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개 제품의 시장성과 기술함량미달에 기인된 시장배척으로 풀이된다.
● 연길경제기술개발구 공업생산 새로운 판도 구성
1995년 4월, 연길시는 "두만강하류개발"에서의 "황금의 3각" 중심지라는 절호의 지역으로 평가받으면서 시구역 동북부 부르하통하변에 총부지면적 5.33평방킬로메터에다 연길시경제개발구를 앉혔다.
애초 연길경제기술개발구의 발전구상을 세개단계로 획분했다. 즉 1995- 2005년 초보발전단계인데 3억원 생산액을 기반으로 1997년에는 6억원 추가, 2000년에는 두배인 12억원으로 끌어올린다는것이였고 두번째 단계는 2001년`-2005년 성장단계이고 2006년-2010년은 고속발전단계로 확정했다.
연길시경제기술개발구 리룡주임은 " 개발구발전에 있어서 단계를 나누어 실시하고 소구역 발전템포를 다그치며 굴림식발전을 이룩하고 내외가 결합되며 호상 보완하고 한 구역을 개발하면 한 구역에서 효익을 보며 투자환경을 극력 개발하여 외자인입에 가동을 걸고 선진형 생산기술산업과 외화창조형수출산업을 적극 육성하여 다기능, 종합성, 현대화 경제개발구로 발전시키는것이 목표"라고 간추려 피력했다.
● "개발구발전에 필요한 여건이 마련되고있다" - 연길경제개발구 주임 리녕
"올해 10월말까지 루계로 기초시설건설에 17억여원을 투입하여 하남구역의 "7통1평"을 실현했고 중소기업공업원, 민영공업원, 전민창업원, 고신기술산업과학기술원, IT산업원 등 특색원구도 건설했다. 지금 한창 야금공업단지, 건재공업단지, 에너지공업단지와 창업빌딩을 건설하고있다 "
리녕주임은 최근 건설상황을 소개하면서 "개발구의 량호한 투자환경으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향항 등 나라와 지구의 181개 기업이 입주를 했고 그중 국내기업 97개, 외자기업이 84개로서 종사인원은 9000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현재 공업분포를 보면 담배공장을 룡두로 "수애" 등을 주체로 하는 식품가공업과 "세라점", "가희안" 등 고신과학기술의료기계산업, 이앙기공장, "아이스" 등 기계제조업, 오동약업, "선생당" 등 의약업, "가나도" 등 IT산업들이 주축을 이루고있다.
지난해 개발구 GDP는 31.6억원으로서 1.06억원의 재정수입을 실현했다. 대상유치하여 락착된 자금은 5억원, 21.6억원의 고장자산투자를 완성했고 새로 건설한 항목과 계속적인 건설항목은 55개로서 총투자는 40억원에 달해 전 성 43개 성급개발구 년도사업업무험수에서 련속 5년 10등안에 들었으며 련속 5년 전 성 "선진개발구"로 평의됐다.
리녕주임은 "올해 개발구의 공업총생산액은 70억원에 달할것으로 예산하는데 19.3억원의 재정수입을 실현하고 고정자산투자 24억원을 완수할 전망"이라고 피력했다.
● "첫 템포는 이렇게 뗐다"
- 개발구 최초 건설 참여자 연길경제개발구 부주임 수전여
"지난 90년대초에 전국적으로 개발구 성립붐이 일었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이러저런한 원인으로 개발구설립을 주저하였다. 시 당위와 정부에서는 새로운 경제장성점으로 개발구를 성립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일부 지도자들은 이러저런한 의견을 내놓았으나 최종 합의점을 찾고 1992년 성정부로부터 수락을 받았고 1995년 4월에 정식으로 연길경제개발구가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다" 수전여부주임은 감명깊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성정부에서는 개발구설립자금으로 50만원을 내놓았는데 엄청 부족했다. 하여 제1임 개발구지도부에서는 "자기로 자금을 쟁취하고 자금을 굴려 자기로 발전을 도모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개발구는 두개 구역으로 나뉘였는데 총부지면적이 5.33평방킬로메터에 달했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제반 기초시설건설, 대상유치 등 사업을 진행하여 조양천으로부터 605공장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여 적지 않은 자금난을 해결했다. 그리고 또 은행대부금을 쟁취하여 도로를 건설하고 사무실도 짓게 되여 개발구도 모양새를 어느 정도 갖추었다.
당시의 대상유치전략에 대해 수전여부주임은 여러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래도 상인이 상인을 유치하는 방식이 제일 효과적이였다고 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개발구에는 일본간장공장, 한국레민콘회사, 한국 한신그룹 등 국내외 기업들이 연길시 개발구에 둥지를 틀게 되였다.
당시 연길개발구에 정착한 국내외기업들은 의료, 식품 등 가공업이 위주였다고 한다.
앞으로 개발구사업에 대해 수전여부주임은 신용으로 대상유치사업을 전개하며 상인을 안착시키고 상인들을 부유하게 하는것만이 경제개발구가 가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외상들의 반응은...
●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절호의 지역으로 짚어진다"
-연길젬트과학발전유한회사 리사장 김학진
"인젠 연길에 발 붙인지도 어언 7년이 됐다. 마치 두번째 고향인것 같다. 우리 기업은 2004년 5월에 생산을 가동하여 의료기계와 전자원자재개발에 주력하는 업체인데 여기 개발구에서 직류온렬중저주파치료기계와 나미수정약석, 직류전자열판 등 10여개 국가전매특허를 신청한 상태이다. 이미 ISO 2003년 품질관리체계인정을 받았고 2006년과 2007년에는 연길시경제기술개발구 선진기업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개발구 한국공업단지에 입주한 연길젬트과학기술유한회사 김학진리사장이 기자와 무릎을 마주하자 기업홍보부터 여념없었다.
"사실 연길시는 현재까지도 지역미숙에 있는것만 사실이다. 생산에 필요한 대환경도 아직 미숙하다, 교통 등 불편도 겪고있다. 더구나 한국과 중국 남방 등지에서 원자재를 인입해야 하는 현실에는 더욱 그렇다. 허나 이 지역은 앞날 두만강하류개발의 전초지역이라는것과 중국어, 영어, 일어에 능숙한 조선족임직원들이 있어 한국독자기업으로서는 충분한 투자리유가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임직원들이 있기에 한국 본사와 중국내 업체들사이에 사무처리가 원활하게 추진되여 시간을 훨씬 단축하고있다."
김학진리사장은 기업투자의 중,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업발전을 그리고있었다. 더욱 조선족이 집거한 지역이기에 호흡을 척척 맞출수 있는 훌륭한 인력이 보장돼있다는데 력점을 두기도 했다.
국내 원자재가격상승과 로임인상, 그리고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기업이 휘청이기는 하지만 태반의 제품을 중국내에 판매하고있는 실정이여서 용케도 어려움을 극복하고있으며 매년 리윤의 20%를 제품의 연구에 쏟아붓고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고속발전으로 외자기업들에 대한 여러가지 우대정책들이 차차 페지되고있는 현실에서 지역적으로 일관된 정책을 폈으면 하는 바람도 제기했다
그는 연길경제개발구를 "신심과 욕망, 기회와 도전"이 동반한 희망의 지역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우수한 인력이 보장되는 지역이다"
-일본독자 신풍정보기술유한회사 총경리 나가미조
"회사의 투자전략상 최종 연길을 택한것은 일본 본사의 인력부족과 인건비인상 그리고 연길지역에는 우수한 인력들이 보장되여있다는데 충분한 리유가 된다 "
나가미조총경리도 인력조건을 많이 강조했다.
"최초 본사에서는 북경, 상해, 대련 등 대도시 진출도 꿈꿨으나 인프라는 구비됐으나 인건비가 높고 또한 각종 경쟁력도 치렬하기에 핸들을 아직 미발달지역이나 장래성이 뛰여난 연길로 돌렸다. 우수한 인력보장으로 판단했기때문이다. 현재 일본류학을 다녀왔거나 로무를 갔다 온 이들이 일어가 능숙하여 개발에 한몫을 하고있다. 또한 본사가 있는 혹가이도는 연길과 기후조건도 비슷하고 조선족들이 많이 집거한 곳이라 환경과 문화 조건도 비슷하다는 점도 진출하게 된 연유로 되였다"
나가미조총경리는 일본의 인력과 출생상황을 그린 그라프를 보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일본의 출생률은 1971년에 2.16% 로부터 2004년에는 1.29% 로 급하강하고있는 수준이여서 업체들이 점차 인력난과 인건비난을 겪고있다. 중국은 다른 양상을 띠고있다. 20대 30대 인력이 충족하다. 회사에서 진출전 연길에 대한 인력조사를 해봤더니 교육수준이 높은것으로 나왔다. 매 1만명당 대학생이 594명에 달했다. 이건 중국 평균치의 1.7배에 해당된 수자이다. 이것이 기업으로 말하는 큰 자본이고 진출을 확정하게 된 중요한 여견이였다. 본사에서는 앞으로 기업 직원수를 현재의 35명에서 앞으로 5년안으로 200명으로 증가할 방침을 세우고있다. 그만큼 연길개발구진출에 대한 기대와 신심이 커지고있다"
이 회사는 중국도요다자동차 소프트웨어설계제조와 일본신풍회사에서 위임한 개발항목을 대리하고있는 고신기술업체, 앞으로 지역IT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할것으로 기대가 된다.
● "지역 소프트웨어개발에 한몫 하고싶다"
-연길디터 소프트웨어개발유회사 총경리 최용석
"우리 회사는 홈페지, 소핑몰개발과, 교육을 위주로 하는 IT회사이다. 연길진출의 리유는 현재 한국IT인력인건비와 부가적인 가격인상이였고 또한 연길지역에는 풍부한 인력자원이 있다는것, 그리고 중국이 IT강국으로 급속도로 성장하고있다는데 력점을 두게 됐다. 중장기전략으로는 이곳이 동북아경제를 이끌 두만강개발의 전초에 위치해있다는것도 리유 중 하나이다"
현재 이 회사에는 몇몇 한국관리인원을 제외하고 전부 현지 인력들이다. 40여명에 달하는 이들은 태반 6개월간의 교육을 거치고 1선 개발에 전념하는 소프트웨어개발 기술일군들,개발상품의 전체가 한국으로 역수출되고있다.
"사실 IT산업의 대폭 성장을 꾀할때 인프라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것이 문제로 나서고있고 우수한 인재들이 내지거나 해외로 빠지는것도 불리한 요소로 나서고있다. 허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주변 여건이 개선되면 미개척지로 알려진 '3각주'가 대거 성장시대를 맞을수 있다는데 기대가 된다"
최용석총경리는 지역발전으로 기인된 경제성장이 IT산업의 흥기도 불러온다는데 무척 기대하고있었다.
2005년 9월에 개발구 한국공업단지에 입주한 이 기업은 지금까지 42만 165딸라의 수출액을 달성했으며 금년에는 25만딸라를 완수할 전망이다.
"이제 차츰 한국의 선진적인 IT기술을 연길, 나아가서 연변지역에 접목시켜 IT산업기지로 발전하는데 적극 일조할것"이라고 최용석총경리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2006년 이 회사는 성정보산업부로부터 "소프트웨어기업인정증서"와 성과학기술청으로부터 "길림성과학기술기업"으로, 국가전매특허국으로부터 "인터넷소프트웨어지적재산권등록증서"를 획득했다...
이처럼 연길경제개발구는 튼튼한 산업구조의 틀을 다지면서 지역경제활성화에 한몫을 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