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8년 12월호
장군의 발자취
출격
김인섭
2008년 12월 24일 11:05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편집자의 말: 성도군구 원 부사령원 김인섭동지가 병환으로 치료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10월 2일 69세를 일기로 북경에서 타계하였다.

략력: 1940년 12월, 연길현 장안진(지금의 도문시 장안진)에서 출생, 대학졸업, 중공당원, 1958년 3월에 입대, 선후하여 병사, 패장, 참모, 부퇀장 겸 참모장, 사단참모장,사단장 직무를 력임, 1986년 10월, 모 집단군 부군단장. 1990년 2월 무장경찰총부 참모장, 1994년 4월, 천진경비구 사령원. 1998년 3월부터 성도군구 참모장, 부사령원. 1998년 7월, 중장군사계급으로 승진.

9기 전국인대 대표, 10기 전국정협 위원.

"출격"은 김인섭장군이 쓴 회고록 "성스러운 변방방어작전에서"발췌한것이다. 당시 그는 사단장이였다. 편폭의 제한으로 일부를 삭제하였다.

19XX년 가을, 출격작전준비가 전면적으로 시작되였다. 정찰분대를 수차 파견하여 출격목표주위에 매복시켜 지형, 참호, 자연동굴, 병력포치, 화력점, 지뢰장, 통신 등을 샅샅이 정찰하였다. 목표구역에 한해서는 항공촬영정찰을 하였다. 한편 전자정찰부대를 전연에 보내여 적들의 전자복사신호를 정찰하고 앞으로 있을수 있는 전자교란에 믿음직한 자료를 축적토록 하였다. 정면과 측면에 설치된 관찰소들에서는 적들의 매일 활동정황, 인원수와 우리 진지에 떨어지는 포탄의 수량 등을 상세히 통계하였다. 출격부대는 구체 임무, 공격목표, 공격로선 등을 똑똑히 하였다.

전연앞쪽과 량쪽 측면 지형은 비교적 넓었는데 적들은 이곳에다 많은 지뢰를 매설하여놓았다. 평소의 포격법칙에 좇아 이 지역에 날마다 152카논류탄포를 쏘아 깊이 2~3메터, 직경이 10메터 되는 근 1000여개의 구뎅이가 생기게 했다. 하여 지뢰장에서의 보병들의 전진통로와 은페장소가 있게 되였다. 무선통화를 리용하여 일부 가짜정보를 산발함으로써 적들로 하여금 정황판단을 오산하게 하였다.

작전에서 전면적승리를 가져오자면 적들의 지휘계통을 마비시켜야 한다. 여러가지 수단으로 적퇀지휘소의 위치를 알아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80고지에 있다고도 하고 -81고지에 있다고도 했다. 연구끝에 포병화력정찰을 쓰기로 했다. 포병은 기술정찰분대, 전자정찰분대와의 협동행동을 미리 조직하였다. 정찰행동이 시작되자 지연, 순발, 공중폭파신관을 각각 리용하여 -81고지에 10분간 급진사격을 들이댔다. 동시에 기술정찰분대와 전자정찰분대는 온종일 음파를 접수하도록 하였다. 아군포병의 맹렬한 습격에 적들의 통신망이 엄중히 파괴되자 즉시 무선전계주통신을 작동시켰다. 아군기술정찰분대는 적들의 통화과정을 전부 접수, 장악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적들의 퇀지휘소가 -81고지에 자리잡고있음을 확신하게 되였다. 이에 기초하여 우리는 포병화력과 전자교란으로 적지휘계통을 마비시킬 방안을 짰다.

적정을 확인한후 우리는 불의습격을 하기로 했다.

출격작전구역에는 무려 20여개의 석회동굴이 있다. 우리는 석회동굴을 뚫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석회동굴에서의 폭파약효력을 검증하기 위하여 수십마리의 개를 사다가 석회동굴에서 같지 않은 거리와 위치에 매여놓고 실험을 하여 믿음직한 폭파의거를 장악하였다.

모든 출격작전준비가 끝났다. 전투구역 기상부문으로부터 9월 17일 오후부터 비내리는 날씨가 계속될것이라는 보고가 왔다. 이런 기상상태는 작전요구에 유리하였다.

우리는 진군명령을 내렸다. 16일밤 출전부대는 비밀리에 대기지역으로 들어갔고 적군접근시간을 이튿날 저녁으로 정했다.그런데 이튿날 오후 하느님은 배합해주지 않았다. 날씨는 점차 개이기 시작하였다. 기상부문의 통보에 의하면 앞으로 며칠동안 전투구역은 개인날이 지속될것이라고 했다. 할수없이 부대에 제자리에서 휴식할것을 명령하였다.

출전부대는 진지에서 나흘이나 기다렸다. 그날 오전 전화가 수차 걸려왔다. 사연인즉 우리의 작전시도가 이미 폭로되였으니 부대를 철수하고 이번 작전을 취소하자는것이였다. 500여명이 전연진지에서 나흘이나 머물러있었으니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을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반복적인 적정분석을 거쳐 나는 적정에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으며 우리의 작전은 폭로되지 않았고 적들의 활동도 정상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확고부동하게 결심을 내리고 추호의 해이함도 없이 준비를 다그쳐 작전승리를 거두기로 하였다.

9월 22일 정오 기상부문에서 오늘 초저녁부터 적은 비가 내리다가 좀 많이 내릴것이라는 전화가 왔다.

오늘밤 21시전으로 모든 전투준비를 마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20시 50분, 사단전선지휘부에서 출전부대가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보고해왔다.

정각 22시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시로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22시 15분, 출격명령을 내렸다. 전연진지에서 적목표물까지의 거리는 약 900메터였다. 우리 전사들은 잔잔한 비소리의 엄호를 받으며 살금살금 앞으로 전진하였다. 적들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하여 무선전통신시동을 꺼버렸다. 출전부대는 전진하는 족족 통신선을 늘이며 우리와의 유선통신련락을 확보하였다. 출전부대는 규정한 시간내에 도착된 위치를 보고하여왔다. 포병들은 긴장된 심정으로 포사격명령을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다. 사단정찰련은 며칠전에 이미 적후에 들어가 활동하고있었다. 그날 저녁 그들은 몇명 전사들을 지정하여 적들의 전화선옆에서 (사전에 7갈래의 적전화선이 있다는것을 정찰하였음) 명령을 기다리면서 적들의 련지휘소를 먼저 쳐부실 준비를 하고있었다.

비는 밤새 내리다가 새벽무렵에 그치였다. 날은 서서히 밝아왔다. 지정된 위치에 도착한 출전부대는 적들을 사면으로 포위하였다.사단 정찰련은 적들의 지휘갱도를 향하여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6시 15분, 그들이 방금 갱도어구에 발을 들여놓자 갱도안에서 나오는 적들과 갑자기 맞띠우게 되였다. 쌍방은 불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전투가 개시되였다. 사단지휘소에서는 포병부대에 즉시 사격명령을 내렸다.

대포들이 일제히 불빛을 번쩍이며 포성을 울렸다. 절반하늘이 붉게 물들고 적진지가 순식간에 온통 불바다로 변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전자대항영은 적들의 무선전과 계주통신을 향하여 묘준식방애를 가하였다. 이윽하여 적들의 통신이 중단되여 신호를 받지 못한다는 기술정찰분대의 보고가 들어왔다.

포사격은 25분간 지속되였다.출전부대는 적진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들이댔다. 이때에도 적들의 화포는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였다. 다만 뒤쪽과 량쪽의 묘준화포와 고사기관총이 우리 출전부대에 맹사격을 가할뿐이였다.우리 전연의 묘준화포와 고사포도 즉각 반격을 가했다. 포탄이 씽씽 날아가는 소리, 명중되여 쾅쾅 폭발되는 소리, 밀집된 고사기관총소리…실로 전쟁터에서의 교향악을 방불케 했다.

출전부대는 분할포위, 각개 섬멸하는 전술로 적진을 계속 진공하였다.9시까지 싸워 적들의 표면진지를 모조리 점령하였다. 일부분 적들은 섬멸되고 석회동굴에 들어간 적들은 독안에 든 쥐가 되였다. 출전부대는 즉시 전술을 조절하여 석회동굴의 적을 소멸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기관총화력으로 굴어구를 봉쇄, 무후좌력포로 굴어구와 량측의 시설물과 화력점을 짓부셨다. 보병, 화염방사병과 공병들은 서로 엄호하면서 들어갔다.굴속에서 폭발수단으로 먹어들어가니 일정한 범위내의 적들은 소멸되고 나머지 적들은 저향력을 잃었다. -07고지방향에서 약 1개 패의 적들이 나타나 -1고지방향으로 두차례나 반격을 해왔으나 번마다 우리 부대에 의해 격퇴당하고말았다. 제3차의 반격도 아군의 85카논포련의 화력에 의해서 실패하고말았다.

오후 3시, 석회동굴에서의 싸움이 끝나고 적 22명이 몽땅 소멸되였다. 이리하여 출격전은 전부 끝났다. 이번 전투에서 -1고지와 그 부근지역을 방어하고있는 적들을 전부 섬멸하고 적군 여러명을 생포하였으며 여러대의 무전기, 비반충포와 고사기관총, 100여자루의 총 및 부분적 문건들을 로획하였다. 우리측은 1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적은 대가로 큰 승리를 거둔것이다.

9월 24일, 중앙방송은 우리가 싸워 이긴 소식을 방송하였다.총참모부에서는 전보를 보내와 우리를 표창하였다.◆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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