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8년 9월호
변천의 연변
글로벌시대 두각을 나타내는 조선족 기업가들
2008년 11월 12일 14:43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철밥통" 사무원으로부터 기업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연변제복회사 경리 김광호씨 자초지종 조명해본다

일전 기자는 일찍 문화계통에서 사업하다 현재 연변제복회사를 경영하는 김광호경리를 만나 그의 창업담을 들었다.

★ 자신의 꿈을 한번 실현하고싶어

김광호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연길시 모 사업단위에 배치되였다. 그 당시 월급이라고 해보아야 45원인데 20원을 집세를 물고나면 한달 생활이 정말 빠듯하였다. 하다보니 출근을 하여도 사업적극성은 말이 아니였고 사람도 기를 펴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을가고 고민을 많이 하였다.

당시 개혁개방의 시초여서 사상이 비교적 개방되고 담대한 사람들은 단위에 청가서를 내고 장사에 뛰여들었다.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는 장사를 크게 제창하지 않았고 이렇게 술덤벙 물덤벙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았다.

김광호씨도 당장 직업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자고 결심하자 안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하여 그는 지연책으로 단위에 청가서를 냈다.

장사라고 시작을 하고보니 수중에 쥔 돈이 없었다. 하여 그는 친구들과 함께 동업을 하였다. 우선 친구들과 돈을 합쳐 내몽골 등지에 가서 개, 소를 들여다 연길시장에 되넘겼다. 그러나 장사에 숙맥들이고 또한 여럿이 함께 하다보니 돈이 별로 모여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단위에서도 더는 청가를 할수 없다는 통지를 내였다. 그는 인생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는 결심에 단위에 사직서를 바치고 완전히 장사에 뛰여들었다.

★ 첫 금통을 캐여

김광호씨는 당시 여러 연해지구와 광주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업고찰을 하였다. 당시 이런 도시들에서는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향항 등 지역과의 교류가 빈번하였다. 이번 고찰을 통해 그는 견식을 넓혔고 앞으로 기업가가 되려는 "야심"을 꿈꾸었다. 그는 향항의 액션영화를 접하면서 연길에서 록화청을 꾸리면 돈을 벌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연길시에는 텔레비죤이 그렇게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였다. 하여 그는 연길시 번화가에 록화청을 꾸렸다. 장사는 대번에 흥성했다. 당시 그는 연변경비구 군의 복무사청사의 사무실 두칸을 세맡아 록화청을 꾸렸다. 그는 록화청을 경영하는 가운데서 군의 복무소에서 팔리는 군복이 불티나게 팔리는것을 목격했다. 하여 그는 서시장에 또 군복 복장매대를 앉혔다. 그는 상해, 심양 등지의 군분구들의 복장을 들여다 되넘겼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첫 금통을 캐냈다.

★ 기업인으로 발돋움

수중에 일정한 자금이 있자 그는 자신도 정규적인 제복공장을 꾸리면 안되겠는가고 생각을 하였다.

당시 안도현인대에서 사업하는 누나의 소개로 그는 대담히 안도현에 연변의 첫 제복공장을 앉혔다.

몇년간 복장업을 하면서 닦고 갈아온 기량은 빛을 냈다. 그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대담한 창의와 혁신으로 기업을 밀고나갔다. 하여 교통, 보안, 기술감독, 도시집법관리 등 단위들에서 제복주문을 해왔다. 기업은 점차 장대해졌다. 그는 기업의 리윤을 설비갱신과 기술인입에 돌렸다. 지금 이 공장의 설비는 국내 일류설비이다. 그리고 해마다 50-60만원의 순리윤을 올렸다.

★ 서투른 투자로 곤경에

기업이 궤도에 들어서자 그는 다른 투자항목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주변에서 일부 사람들이 안도현에 사우나가 없으니 사우나에 투자하면 돈을 벌수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정확한 시장조사도 하지 않고 대담히 100만원을 투자하여 안도현에 사우나를 앉혔다. 그러나 이는 전략적인 실수였다. 안도현은 워낙 경제수준이 높지 않아 사람들이 2-3원씩 하는 자그마한 샤와실을 찾는데 습관된터라 장식만 봐도 호화스러운 사우나를 감히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하여 사우나운영은 처음부터 파행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끈기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근성이 있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사우나 운영에 집념했다. 그러나 필경 현실적으로 소비수준이 낮은 안도현에서 사우나를 계속 운영하는것은 불가능하였기에 6년간 경영해온 사우나를 접을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김광호씨는 "창업을 서두르지 말고 자신이 익숙한 항목을 잡고 시장조사를 면밀히 하며 남의 말만 믿고 투자하는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실패 딛고 일어서다

김광호씨는 잘못된 투자로 한동안 고민과 시련을 겪었다. 특히 잘나가던 제복공장이 된서리를 맞아 기업이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끈기와 담력으로 굳어온 그는 이러한 시련앞에서 방황하고 맥을 잃은것이 아니라 재기를 위해 더욱 분발하였다.

그는 여전히 항목이 좋으면 언젠가는 돈을 벌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재차 기업의 진로를 둘러싸고 대담한 혁신과 개혁을 진행하였다. 기업은 점차 잃었던 원기를 회복했다.

김광호씨는 기자와의 대담에서 "현재 길림성 통화, 백산 그리고 흑룡강성에 제복공장이 전무한 상태여서 이 업종의 전도는 밝다"고 했다.

기자가 앞으로의 타산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현재 기업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장을 연길에 옮겨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것이며 대외로 이러한 제복이 없는 곳에 판사처를 설립해 대외적인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그리고 기업을 주식형식으로 운영하려고 하는데 이 업종에 뜻이 있는 사람이면 같이 손을 잡고샆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부대적으로 현재 "연변의 많은 집법단위들에서 제복을 상해, 북경 등지에서 구매해오는데 일단 문제가 생기면 수선하는데 까다롭고 시간적으로 많이 걸리므로 불편하다면서 연변의 많은 집법단위들에서 당지공장을 애용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리성호기자).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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