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8년 8월호
회억의 여울목
고이 잠드시라, 화피창의 영령들이여
고점자, 전 오가자전투에 참가했던 로전사들 회억
◎남희풍
2008년 10월 30일 15:54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지난 1948년 2월 16일, 길림-장춘구간 고점자, 전 오가자에서 동북인민해방군 독립6사는 국민당 60군 잠평 21사와의 한차례 조우전에서 600여명의 희생을 내며 동북해방전쟁의 빛나는 한장을 엮었다.

회생된 용사들이 화피창에 묻힌지도 어언 60년, 그번 전역에 참가했던 156사 로전우인 리봉룡, 허청근, 마학범(전투영웅), 리종호(대공을 세움)는 60년전에 희생된 로전우를 기려 "동북인민해방군 독립6사 길장제전역렬사지묘"를 참배했다.

156사는 동북해방후 원 독립6사를 전국적으로 통일시킨 부대번호이다. 이 부대의 전신은 길동군분구경비 1.2려로서 길동지구에서 제일 처음으로 조직된 연변인민의 자제병이다.

1948년 4월 15일, 길림성정부와 길림군구에서는 화피창에 654명의 희생자를 매장하고 렬사릉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기념비를 세웠다. 화피창렬사릉원은 해방전쟁년대의 전화속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일찍 세워진 대형렬사릉원이고 력사가 긴 면에서 전국적으로도 "으뜸"이다.

고점자, 전 오가자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로전사 리봉룡(80세, 원 연변"대중과학"잡지 주필)은 당시 가렬처절했던 전투상황을 돌이켜보면 60년전의 일들이 어제일처럼 눈앞에 환히 떠오른다고 했다.

1948년은 자위반격전의 세번째해로서 우리 군은 렬세로부터 우세로 되였는바 야전주력(독립사도 망라하여)부대만 보더라도 42만명에 달하였다. 우리는 "좁쌀에 보총"이던데로부터 대포, 땅크 등 부러운것이 없었다. 전투방식도 재래의 유격전에서 벗어나 공격전, 전략적인 대반격으로 넘어갔다. 이때 국민당은 세력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기존의 실력은 여전히 보존, 길림과 장춘에만도 10만대군이 있었다. 전쟁형세도 여전히 가렬처절했다. 1948년 2월 16일, 전 오가자와 고점자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길림의 적들에게 도망갈 길을 열어주는가, 아니면 도시에서 뛰쳐나온 적을 몽땅 섬멸하는가였다. 길림 60군(3만 병력)은 독안에 든 쥐신세였지만 그들은 도망칠 길을 열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이때 독립6사는 한개 퇀도 안되는 병력으로 3~4배되는 적 3개 퇀과 1주야의 격전을 벌렸다. 허창근(82세, 원 연변대학 보위처 처장)은 이때 패장이였는데 앞에서 지휘하다보니 남먼저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흰눈이 덮인 벌판에서 날만 밝으면 적의 과녁으로 될판인데 어떻게 할것인가? 전사들은 패장을 살리려고 기민하게 전마의 꼬리에 패장의 손을 매여 말에 채찍질하였다. 이렇게 하여 패장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전사들은 반격하다가 전부 영용하게 희생되였다.

김정호(82세)는 위생반장이였는데 어둠을 타서 부상당한 전사 10여명을 업어서 사경에서 구출하였는데 한 전사가 "반장의 다리가 온통 피투성이 됐다"고 알려줄 때에야 자신도 부상당했다는것을 알았다고 한다. 한 중상자는 포위된 묘안에서 함께 결사전을 하려는 전사들을 보고 "살아남는것이 승리이다"라고 하면서 전사들의 수류탄을 몽땅 남겨두게 하고 빠져나가도록 하고는 자기는 마지막 수류탄이 남을 때까지 결사전을 벌려 숱한 적들을 쓸어눕히고 희생되였다. 비장한 이야기는 이루다 말할수 없다.

적군의 거듭되는 진공을 물리치고 도망치려는 적의 음모를 깨뜨리기는 했으나 우리의 대가 역시 너무나도 컸다. 530명 희생자가 나왔는데 그 많은 시체를 어디에다 묻겠는가? 지금의 묘자리는 그때 큰 물웅뎅이였다. 여기에다 시체를 쌓고쌓으니 산과 같았고 그우에 눈을 덮으니 묘지가 되였다. 때는 한창 엄동설한인 1948년 2월, 이것이 오늘의 화피창렬사릉원의 초기형태였다. 그러다가 따뜻한 봄이 되여 눈이 녹으니 그만 렬사들의 유체가 드러나게 되였다. 그해 4월 15일, 길림이 해방된지 한달밖에 안될 때 성정부는 길림시에 이사하였고 당시 장춘에는 아직 10만의 적이 활동하고있는 어려운 정황에서 길림군구와 손잡고 부근의 렬사무덤을 재건했는바 도합 654구의 유체, 유골이 묻힌 렬사릉원을 만들었던것이다. 그것의 정식이름이 곧 "동북인민해방군 독립 제6사 길장제전역 렬사지묘"이다. 이처럼 포연이 가시지 않은 시기에 길림벌에 전국적으로 첫번째로 되는 렬사릉원이 일떠선것이다.

화피창렬사릉원은 실제상 릉원이 아니라 한자리의 커다란 묘지이다. 땅우에 도드라진 분묘도 없는 곳에 654구의 렬사유체가 묻혀있어 "만인갱"을 방불케 한다. 이것 역시 세상에 보기 드문 중국의 "으뜸"이다. 독립6사는 해방전쟁년대에 송화강 건너 길(림)장(춘)구간에서 싸웠는바 적군 도합 25만명을 소멸한 대가로 1430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어디에서 싸우다 희생되면 바로 어디에 묻혔다. 그러니까 화피창 한자리 무덤에 독립6사의 렬사 태반이 잠들고있는것이다. 요즘 들어 한 무덤에 어떻게 그 많은 유체가 묻혔을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오가자, 고점자의 백성들이 그번 전쟁의 견증인이며 무덤의 건설자이다. 싸움이 끝나자 시체가 쌓여 발을 옮겨디디기 어려운데도 개구쟁이 아이들은 시체를 뒤번지면서 탄알깍지를 줏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금년에 88세에 달하는 왕희신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100호도 안되는 전 오가자에서 373구의 렬사유체가 발견되였는데 (이 수자는 부대에서 통계한 수자와 비슷)유체를 꼬박 하루동안 운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학교교실에 눕혔다가 나중에는 운동장에 옮겼으며 결국 이처럼 많은 시체가 한 무덤에 묻히게 된것이다. 화피창릉원을 내놓고 이처럼 큰 무덤이 있다는것을 우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한 무덤이 크기로 전국적으로 "으뜸"임이 틀림없다.

화피창렬사릉원은 또 하나의 무명렬사묘지로 한 릉원에 이처럼 무명렬사가 많은것도 전국적으로 "으뜸"일것이다.

기념비에는 다만 203명의 렬사성함이 새겨져있는데 이는 그 자리에 묻힌 렬사의 3분의 1도 안되는 수자이다. 이름이 오른 렬사는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다. 가족들이 찾아와 제사도 지낼수 있으니 말이다. 화피창렬사릉에서 이런 "우대"를 받는 렬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3분의 2 이상에 달하는 451명의 렬사들은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가족의 제사도 받지 못하고있다. 1948년 2월 16일의 고점자, 전 오가자 전투에서 몇개 련은 행운자가 없어 희생명단을 제때에 상급에 보고할수 없었던것이 그 주요한 원인이 되였고 60년 동안 페쇄되다싶이 한 화피창렬사릉원은 오늘에 이르러 주인을 잃은 무덤으로 되였다. 대문에는 패쪽 하나 없고 자물쇠는 1년 사시절 그냥 잠겨져있었다. 여름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겨울에는 쓰레기가 무더기로 쌓인다.

성인대 대표인 조춘자씨는 이런 상황을 년초에 열린 성 13기 인대회에 화피창릉원을 수리, 보호하고 개발할데 대한 건의안을 제기하였다.

로전우들은 빨리 손을 써서 화피창릉원의 옛 모습을 되찾아 선렬들의 망혼을 위로하고 선렬들을 기리는 추억과 교육의 현장으로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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