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누군가 사무실문을 노크하고있었다. "누구세요? 들어오세요." 습관적으로 대답을 하면서 그냥 교수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하고 듣지 않던 목소리의 임자가 나를 보고 서있었다. 훤칠한 키, 말쑥한 얼굴, 새하얀 와이샤츠차림의 청년이 그윽한 눈매로 나를 보고있었다. 약간 익숙한듯 알릴듯말듯한 얼굴인데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교원사업을 해서 십여년동안 접촉한 학생이 너무 많다보니 기억에 아리숭했다. 혹간 공공뻐스나 식당 같은데서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는 소리를 들으면 인사하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서라도 아리숭해도 아는척 "네, 어머, 안녕하셨어요" 하고 수다를 떨었는데 혼자 있는데서 이런 인사를 듣고보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는 나를 완전히 리해라도 한듯 청년이 천천히 나한테 다가와 경례를 굽석 하더니 "선생님, 절 잊으셨어요? 애꾸러기 박철이예요"라고 하며 수줍은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 박철이" 와락 그의 두손을 잡으며 환성을 지른 나였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의 낯익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기억의 돛배에 올랐다.
15년전, 그러니까 1993년 9월, 갓 학교를 졸업한 나는 한 향진학교에 배치받아 일본어교원사업을 시작하게 되였다. 수업 첫날, 1학년 1학급 문을 떼고 들어서니 20여쌍의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한참 있다가 "저렇게 죄꼬만것도 선생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실안은 와-하고 삽시에 란장판이 되여버리는것이였다. 너무 기가 차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있는데 "선생님 몇살이예요?" 하면서 한 학생이 일어섰다. 장난치는듯한 눈빛에 잘난듯 소매로 코를 쓱 문지르면서 말이다. 그 학생이 바로 박철이였다. 아무 일도 없는듯 박철의 얼굴을 보면서 "스물세살이예요. 학생한테는 누나쯤 될거예요."하면서 시작한 강의가 그럭저럭 별문제 없이 진행은 되였지만 박철이만은 큰 문제거리였다. 수업시간에 전혀 공부를 안하고 그냥 그림책만 들여다보고있는 말썽꾸러기, 선생님들은 이름만 들어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박철이였다…
"선생님, 그동안 잘 보내셨어요? 여기 계신줄을 모르고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박철이가 나의 생각을 깨뜨리며 말을 해왔다. 그의 두눈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럼, 잘 보냈지, 근데 철이는 그동안 어떻게 보냈어?" 나는 그의 두손을 잡아 걸상에 앉히며 대견한듯 물었다. "다 선생님 덕분이예요. 그때 선생님이 날 이끌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을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지금 일본기업에서 번역사업을 하고있으며 회사일로 일본에 출장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또 한번 코마루가 찡해오는 순간이였다.
애꾸러기 철이는 처음 사업에 참가한 나한테 큰 충격이였다.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을 돌려세울수 있을가? 교무실에 데려다가 아무리 설명을 해봤댔자 소귀에 경읽기였다. 그러는 나를 보며 한사무실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은 공연한 짓이라며 담임교원도 아닌데 잘난척하지 말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3살 소년의 시간을 그저 랑비할수는 없는거였고 선생으로서 학생의 전도에 무관심할수는 없는거였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그걸 놓치고싶지 않은 내 마음이였다. 나는 제일 아둔한 방법이라도 써보려고 작정을 했다.
그날 숙제는 과문을 암송하고 세벌 쓰는것이였는데 예상대로 철이는 또 안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다른 학생들이 다 돌아가자 나는 철이만을 교실에 앉혀놓고 숙제 안한 리유를 물었다. 또 똑같은 대답-자기는 소학교때부터 기초가 약해서 아무리 해봤자 쓸모없는짓이라고, 부모들도 포기한 상태인데 선생님도 기대를 끊으라고 그러는것이였다. 그러는 철이를 보며 그럼 이제부터 실험 반 벌칙 반 해서 그 과문을 100번 쓰라고 했다. 어이가 없다는듯 휘둥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철이에게 나는 아주 진지하게 선생님도 철이옆에서 100번 쓰는걸 마지막까지 지켜볼거니까 같이 노력해보자고 했다. 할수없는듯 천천히 연필을 드는 철이옆에 나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한벌, 두벌, 세벌… 철이는 쓰기 시작했다. 스무번을 썼을 때 밖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고 나도 약간 피곤기를 느꼈다. 그렇다고 한번 말한걸 포기할수는 없었다. "선생님, 너무 어두워서 못쓰겠어요." 원망투가 섞인 목소리로 철이가 말했다. "그래요? 그럼 우리 같이 상점에 가서 초를 사오자요." 그애의 기분을 짐짓 모르는듯 나는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철이의 손을 잡고 상점에 가 초를 세대 샀다.
교실에 돌아온후 또 계속 쓰기 시작을 했는데 흘끔흘끔 내 눈치를 살피며 책 한권을 다 쓰고있는 철이가 측은하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너무 써서 가슴이 아파요." "그래도 포기는 못해" 속으로 독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내려오는 눈까풀을 추슬려올릴 때 두번째 초가 다 타고있었다.
세번째 초에 불을 붙이며 철이를 슬쩍 춰주었다. "철이가 끈질긴 면이 있어 선생님이 아주 좋아요.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끈질기게 뭔가 한다면 꼭 잘하는게 있을거예요." 그때 철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 이 과문을 다 암송했어요. 이젠 쓰지 않고 암송해도 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씩씩한 목소리로 한글자도 틀림이 없이 줄줄 암송해갔다. 평소의 철이와는 완전히 딴 모습이였다. 너무 좋아서 더이상 칭찬의 말을 해줄수가 없었다. 미리 준비해둔 간식을 먹고있을 때 철이 눈에서 눈물이 콸콸 나오고있었다. "선생님, 저 이제부터 공부할거예요. 특히 일본어를 잘 배워서 선생님 말씀처럼 번역관이 될거예요." 그때 철이 눈이 그렇게 말하고있었다.
나는 정말 기뻤다. 그 한번의 아둔한 방법이 철이한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였고 나한테는 또 얼마나 큰 위안이고 향수인지 모르겠다.
박철이를 바라보며 또 한번 내가 지금 선택한 이 길에 긍지감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
(작자는 방주외국어양성학교 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