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배고픔과 "정치운동"의 소용돌이 ●개혁개방은 농민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로무송출 집단농업 특색관광으로 새농촌 건설
"우리는 현재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고있습니다." 이는 룡정시 동성용진 룡산촌 촌민들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우러나오는 말이다.
룡산촌은 2004년 영성촌과 합해지면서 660호로 늘어났으며 촌민수는 2400명에 달했다. 조선족인구는 총인구의 95%를 점해 전형적인 조선족촌이다. 이중 농민당원이 102명에 달한다.
이 촌은 412헥타르의 수전과 116헥타르의 한전을 갖고있는데 해마다 록색입쌀과 공예작물을 심어 1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고있으며 로무송출을 통해 500여만원을 벌어들여 인당 수입이 1만원을 넘어서고있는 부유촌이다.
일전 기자는 이 부유촌을 찾아 룡산촌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이 촌의 발전경험을 료해하였다. 룡산촌의 일부 발전경험이 우리 주 다른 촌의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 60-70년대 정치운동과 배고픔의 련속
60-70년대 룡산촌에서 서기사업을 하였던 김석구로인은 "당시 룡산촌, 영성촌, 평안촌, 해란촌은 선진대대로 소문났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농민들이 마음대로 닭을 치지 못하고 소나 돼지를 기르게 못했으며 담배도 100포기이상 심지 못하도록 제한하여 농민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고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저 룡산촌에서 철물가공공장을 건설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고 촌민들도 철물가공공장이 촌민들의 배를 불룩하게 만들어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로선을 걸으려 하는것이라고 하면서 촌민들의 창업열에 찬물을 끼얹었다. "면서 당시를 회억했다.
김석구농민은 "그래도 당시 농민들은 로동에 대한 열정은 매우 높았다"고했다. "밤 12시에 일어나서 다음날 저녁 7시까지 밭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당과 조직에서 지시한 일은 목숨을 걸고 완성하였다. 그러나 식구가 많고 농사수입은 일년에 일인당 100원 정도에 지나지 않아 살기가 정말 어려웠다"고했다.
당시 김석구서기와 함께 사업했던 김일천할아버지는 "개혁개방전에는 농촌에서 호조조생활을 했는데 1년 총수확을 국가, 집체, 개인이 각각 3분의 1씩 나누다 보니 농민들은 먹고살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했다.
○ 개혁개방으로 농민들 혜택
개혁개방후 당시 룡산촌에서 부녀사업을 해온 남영숙할머니는 개혁개방으로 농촌은 활기를 띠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당시 남영숙할머니는 촌의 부녀들을 이끌고 농사일을 하는 외에 땅꽈리농사를 지었다. 이들은 60헥타르에 달하는 한전을 개간하여 땅꽈리를 심어 한때 연길시장을 독점하다싶이 하였다. 이들은 땅꽈리를 팔아 한달에 50만원이란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촌민들을 동원하여 닭치기도 하고 돼지와 소도 사양하여 촌의 경제는 활기를 띠였으며 농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게 되였다.
○ 룡산촌의 오늘
현재 룡산촌의 서기 강송철은 오늘의 룡산촌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우세산업 발전전략을 세워 록색벼생산기지를 공고히 하고 땅꽈리, 채소 등 우세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로무송출사업을 틀어쥐였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금을 유치하여 촌의 기초시설건설에 투입하였는데 원 영성촌 150여호 농호에 유선텔레비죤을 가설해 주고 22만원을 투자하여 툰마다 포장도로를 건설했으며 룡정시문체국으로부터 5만여원에 달하는 체육기재를 지원받아 촌민들의 문화오락활동에 편리를 주었다. 그리고 동성용진 신용사와 련계하여 전 촌 250여호 농호들에 320만원의 농사대부금을 내주어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할수 있게 하였다. 또한 주잎담배공사로부터 20만원의 빈곤부축자금을 무상지원받아 려객뻐스를 사서 촌민들이 마음대로 부근 도시로 드나들수 있게 하였다."
강송철서기는 "이외에도 촌의 환경미화를 위해 쓰레기를 청산하고 도로 량켠에 꽃을 심는 등 많은 일을 했으며 빈곤가정을 도와 민정부문의 혜택을 받게 하였다"고 했다.
○ 존재하는 어려움
강송철서기는 룡산촌의 당전의 어려움도 매우 절박한 상황이라고 피력했다.
"현재 룡산촌의 정황을 보면 60세 이상 로인들이 많고 집체경제가 없기에 촌의 경비가 전무한 상태다. 국가에서 주는 전업기부금으로 촌의 일체 사업을 밀고나가려 하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나서고있다. 촌에 학교가 없다보니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부득불 교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이다. 그리고 60세 이하의 로동능력을 구비한 사람이 적다보니 농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규모화농업을 형성하려 했지만 이중 일부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로무송출을 가는 바람에 밭이 외지사람들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아졌다."면서" 상급 정부와 해당 부문들에서 촌의 경제를 위한 더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 앞으로 타산
강송철서기는 비록 이러저러한 곤난이 많지만 새농촌건설에 신심이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지지를 적극 쟁취하고 자금을 적극 유치하여 촌의 기초건설을 더욱 완벽히 하고 저수확밭개조임무를 완수하며 집단화농업을 발전시킬것이다. 그리고 공예작물재배를 적극 동원하고 촌민들의 로무송출도 적극 부축할것이다."
강송철서기는 해당 부문에 이러한 건의를 했다. "현재 연룡고속도로 수금소가 서면서 전에 흥기했던 토닭집들이 장사가 많은 영향을 받는 정황이라면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올해 수금소를 철회한다는데 이것이 현실로 되였으면 한다"고 했다.
강송철서기는 또 "앞으로 모아산등산객을 대상하는 관광산업을 발전시킬 생각이다"면서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매일 모아산을 등산하는 등산객이 2000명인데 이중 10%^만 룡산촌을 관광하도록 관광코스를 개발하면 촌의 경제는 활기를 띨것이다. 이를 위해 룡산촌에서는 현재 현유의 민속촌을 더욱 보완하고 강택민, 호금도 등 동지들이 다녀간 토닭집을 재정비 하며 전국로력모범인 김시룡선생의 생가를 복원할것이다"면서 " 언론매체를 리용하여 룡산촌의 수려한 경치를 널리 홍보하고 농촌체험관광을 조직하여 여름에는 밭에서 농민들과 일을 하고 가울에는 함께 수확하는 관광도 조직할것이다"고 했다(리성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