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동강났으나 학생들을 꼭 껴안은 녀교원
"5.12" 지진피해가운데서 십방시 룡거소학교 학교청사가 붕괴되면서 수백명 교원과 학생들이 페허에 묻혔다. 교육국 기관, 학교사생, 인민자제병, 학부모 및 사회 각계인사들이 필사적인 구조작업을 벌렸다. 페허를 청리하고 페허에 묻힌 교원과 학생들을 구조하는 과정에 한 녀교원이 무너진 콩크리트벽에 깔려 몸이 세토막이 난채로 3명의 학생을 가슴에 꼭 껴안고 보호한 현장이 발견되였다. 그는 향청이라고 부르는 교원이였다.
학교가 붕괴되기 직전 그는 학생들을 마지막까지 대피시키다 완전히 붕괴되는 찰나 위험에 직면한 세 학생을 품에 꼭 껴안았던것이다.
이 전경을 목격한 구조대원들은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현장 구조인원들은 자발적으로 향청교원에게 묵념했다.
○ 몸을 불사른 오충홍교원
오충홍교원이 영웅적으로 구조작업을 하다 희생된 장면을 목격한 당용선생은 전화를 걸어와 오충홍교원가족은 정부의 호소에 적극 호응하여 인차 시체를 화장하려 한다고 알렸다. 그러나 오충홍교원의 많은 학생들은 오선생님의 최후를 보려고 여러 지방에서 달려왔다. 그러나 현재 교통이 불편한 상황이여서 이들을 기다리자면 부득불 화장시간이 연장될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의 호소와 위배되는것으로 가족에서는 인터넷으로 애도를 표할것을 요구했다.
위험한 시각 생의 희망을 학생들에게
숭주 회원중학교 교수청사가 붕괴되기시작하였다. 이 학교 700여명 교원과 학생들이 순리롭게 위험에서 탈출하였지만 영어교원 오충홍은 영원히 자신이 사랑하는 학생들의 곁을 떠났다.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학생들이 교수청사 계단에 몰렸다. 오충홍은 학생들을 인도하여 대피시킬때 일부 학생들이 아직도 교수청사를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재차 교수청사에 뛰여들어 나머지 학생들을 찾는 와중에 교수청사가 붕괴되여 교수청사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교수청사 계단에서 학생들을 구조
지진피해로 수업이 정지되였지만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회원중학교에 달려와 세상을 떠난 오선생님과 몇몇 학생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절반이나 붕괴된 교수청사앞에서 그들은 처량함을 감출수 없었다.
부교장 리굉성은 온밤 한쉼도 쉬지 않고 많은 남성선생님들과 함께 제1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하였다. 리굉성은 "이 교수청사는 4층인데 도합 12개 반이 이곳에서 수업을 하고있다. 오후 첫과당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지면이 움직이면서 학생들의 아우성소리가 교정의 정적을 깨뜨렸다."면서 "교수청사는 1분간 움직이다 청사 가운데 금이 가면서 두동강이 났다. 그런데 금이 간 곳이 바로 계단과 련결되였다. 이는 학생들의 생명과 직결된 계단으로서 대부분 학생들은 두개 계단을 리용하여 안전하게 교수청사를 탈출했다."고 했다.
리굉성과 학교 교장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단입구에서 달려내려오는 학생들을 대피시켰다. 리굉성은 "당시 머리는 공백상태였지만 무의식간 학생들의 인수를 점검하였다."고 했다.
재차 학생구조에 뛰여든 오충홍교원
당시 오충홍교원은 4층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 반의 한 남학생은 당시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교실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학생들이 아우성을 질렀다. 이때 오충원은 학생들더러 당황해 하지 말고 자기를 따라 교실을 빠져나가자고 소리쳤다. 당시 계단이 좁아 학생들이 몰리면서 학생들은 모두 오선생님의 뒤에 있었다. 갑자기 한 학생이 교실에 아직도 2명의 학생이 있다고 소리치자 오선생님은 잠시 긴장하시더니 인차 몸을 돌렸다. 우리가 3층계단에 내려왔을 때 오선생님은 재차 4층에 뛰여 올라갔다. 우리들이 안전히 교수청사를 빠져나오자 교수청사가 붕괴되면서 오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오충홍교원은 영영 사랑하는 학생곁을 떠났다.
리교장은 "교원과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대피하였기에 절대부분 교원과 학생들은 안전하게 대피하였고 5명 사생들만 페허에 묻혔다."고 했다.
소식을 접한 숭주시 정부 주요 지도자는 무장경찰, 공안, 소방, 위생 등 해당 부문의 일군들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하여 매몰된 사람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벌렸다. 구조인원들은 하루동안 구조작업을 벌려 붕괴된 교수청사 페허에서 오충홍교원을 찾아냈지만 그는 이미 호흡을 멈추었다.
그의 안해 송대군은 남편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너무 비통하여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들 오남의 부축하에 림시 피난소에서 나와 기자를 만났다. 남편을 잃은 그녀의 모습은 초췌했고 시종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아들 오남은 "아버지는 줄곧 저더러 좋은 대학에 입학하라고 했는데...."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통곡했다.
기자가 료해한데 의하면 오충홍교원은 올해 45살로서 교육분야에서 28년간 사업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