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서란시 사합촌은 빈궁으로 인해 "홀애비 촌"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22명의 로씨야 색시를 맞아들여 화제가 되고있다.
■ 로무길에서 로씨야 "봉황" 잡았다
사합촌은 지리적으로 위치가 편벽하고 산이 많으며 빈곤하여 마을의 총각들은 장가 들 엄두를 내지 못해 이 촌은 "홀애비촌"으로 불리웠다.
2000년초 사합촌 총각은 리동평은 로씨야에 가서 일하거나 장사를 하면 돈을 벌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1만원 돈을 쥐고 로씨야로 출발했다.
로씨야는 기후가 습하기에 바퀴벌레의 번식이 아주 빨라 바퀴벌레를 소멸하는 약품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했다. 그는 이런 상업기회를 노리고 바퀴벌레약품 장사를 시작했는데 언어소통의 불편을 느끼고 짬짬이 로씨야어 공부를 함께 시작했다. 로씨야어공부를 위해 서점에 들렸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로씨야처녀 우리기아와 마음을 주고 받게 되였다. 우리기아의 도움으로 공부할 책을 선택했고 또한 따뜻하면서도 친절한 그의 서비스에 마음이 동한 리동평은 사랑의 마음을 우리기아에게 전했고 부지런하면서도 배우기를 즐기는 리동평에게 우리기아도 관심을 보여 그들의 사랑은 날로 무르익어갔다.
우리기아의 부모님이 반대하였지만 리동평의 진심을 알고 사랑의 깊음을 느낀 우리기아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푸스커프교회당에서 잊을수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후 얼마 안되여 리동평은 색시를 데리고 3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께 인사드렸다. 호수같이 맑고 아름다운 며느리를 보고 리동평의 부모님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우리기아가 사합촌에 온것은 음력설의 기분을 무상케 하는 즐거움을 사합촌에 가져다주었다. 중국의 민속풍습과 례절을 모르는 우리기아의 친절함이 사합촌 촌민들에게 즐거운 한시각을 만들어주었고 대범하고 명랑하며 솔직한 그녀를 온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랑해주었다.
■ 강도들과 박투하다가 맺은 인연
2004년 음력설이 지나 리동평은 친구 정우와 정검을 데리고 다시 로씨야로 갔다. 리동평의 도움으로 정우와 정검은 모두 원하는 일자리를 구했다.
2004년 9월 4일 정우는 위험을 무릅쓰고 겁탈당하고있는 로씨야처녀를 구해주었다. 허나 강도의 칼에 맞고 쓰러졌다. 정우가 깨여났을 때는 이미 병원에 호송되였고 리동평과 련락도 되였다. 이튿날 정우를 찾아온 중학교 교사 로씨야처녀 소비아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여 생명의 은인을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처녀의 보살핌을 받아본적이 없는 정우는 불편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였지만 소비아의 아름다운 미소가 약이 되여 빠른 시일에 건강이 회복되였고 또한 이번이 인연이 되여 정우는 소비아를 사랑하게 되였다.
정검은 정우의 치료비를 지불하기 위하여 낮에는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중 그는 식당 사장의 딸 유아사를 알게 되였다.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며 총명하고 아름다운 유아사는 정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아사가 깨여진 사랑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있다는것을 알자 마음과 힘을 합하여 유아사의 기분을 돌려주려고 노력했다.
어느날 정검은 식당에 와서 음식투정을 하는 로씨야상인들에게 독특한 중국료리를 선보이면서 화를 풀어주었다. 이에 기타 손님들도 찬사를 보내면서 그번 일촉즉발의 "격투"는 우정으로 끝났다. 정검의 이런 지혜롭고 총명한 모습을 지켜보던 유아사는 차츰 거리를 가까이 했다. 기회를 찾은 정검은 유아사에게 장미 한묶음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했지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집도 차도 저축도 없는 정검은 거절을 당했다.
그후 여러차례 사랑을 고백했으나 또 한번 사랑의 아픔을 받을가 걱정되여 정우의 건강이 회복되자 바로 떠나갔다.
소비아는 정우를 잊기 위해 일부러 몇천리 떨어진 부모님 집에 숨었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정우는 수소문하여 소비아의 부모님 집을 찾아갔다. 소비아는 수천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정우를 보고 다시는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정우의 품에 안겼다. 2005년 1월 6일 사합촌의 촌민들은 정우가 로씨야 미혼부를 데리고 온다는 희소식을 듣자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면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 마을 홀애비들의 출국바람
마을에서 두명이나 로씨야 처녀를 색시로 맞자 집에서 마작놀이, 술놀이로 시간을 보내던 홀애비들은 모두가 큰 도시로, 로씨야로, 한국, 일본으로 돈벌이를 나섰다. 이로 인해 눅눅한 분위기만 흐르던 사합촌은 삽시간에 활력으로 넘쳤고 40이 넘은 홀애비들도 기회를 찾아나섰다.
그들중 등초라는 한 청년은 리동평이 살고있는 푸커스푸로 가서 운반작업을 하는 일을 찾게 되였다. 한번은 텔레비죤을 운반하다가 발을 빗디디여 텔레비죤을 박산내는 실수를 하였다. 비록 상하기는 하였지만 뜻밖으로 녀사장의 신용을 얻게 되였다. 등초가 빵으로 점심을 에때우고있는것을 본 녀주인은 따뜻한 도시락을 그의 손에 놓아주었다. 고마움을 받은 등초는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녀사장은 그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지 않았을뿐더러 봉급을 추가해주었다.
가나라고 부르는 녀사장은 남편이 생전에 남겨놓은 채무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었다. 이를 알게 된 등초는 남자대장부의 마음으로 반년간 해온 저축을 그녀에게 주면서 빚을 갚으라고 했다. 가까운 친척마저 빌려주지 않는 돈인데 이국타향의 중국인이 피땀으로 번 돈을 빌려주자 그녀는 너무나 감동되였고 또한 그에 대한 마음을 열게 되였다.
어느날 등초가 리동평과 우리기아를 만나게 되자 색시를 찾아달라고 귀찮게 달라붙었다. 분쟁이 일어난줄로 안 가나는 우리기아에게 사연을 묻고 만약 등초만 마음이 있다면 빚을 청산한후 등초에게 시집갈 마음을 우리기아를 통해 등초에게 전했다. 가나의 맑은 두눈을 바라보면서 가나의 마음을 들은 등초는 "함께 빚을 갚아줄게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이에 우리기아는 로씨야어를 빨리 배워서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에게 직접 전달이 되기를 바랬다.
2006년 두 사람은 끝내 부모님들과 마을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처럼 출국하여 돈벌이를 한 사합촌 젊은이들이 돈을 벌고 색시를 데리고 돌아와 차도 사고 집도 지었으며 사합촌의 경제발전을 위한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빈궁하던 사합촌은 신속한 변화를 가져와 지금은 부유촌으로, 로씨야색시촌으로 탈바꿈하였다(동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