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봄이면 연변의 산기슭에 피여나는 소박한 꽃, 나의 유치한 동심을 빠금히 열어주고 끝없는 사색의 여울목으로 끌었으며 삶의 리치를 깨닫게 했다.
지난세기 50년대초 그러니까 소시적의 일이다. 나는 현시가지에서 편벽한 산촌에 자리잡은 외할머니집에 와서 몇년 잘 보냈다. 하루는 동년배들과 함께 뒤동산 돌바위에 올라갔다. 마을이며 시내물이며 전야며 렬사비 등이 시원히 한눈에 안겨왔다. 나는 마을의 인가를 세기 시작했는데 한 30가구 푼했다.
이때다.
"야, 진달래다!"
한 친구가 감격에 젖은 소리로 웨쳤다. 우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비탈에 연분홍꽃이 떨기떨기 피였는데 타오르는 화염마냥 아직은 푸름이 깃들지 않아 좀 황량한 산야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와"- 소리지르며 바위에서 미끌어져 진달래가 피여난 곳으로 달려갔다. 나로서는 처음보는 진달래꽃이였다. 얼피설피 자란 관목가지엔 잎이 돋아나자면 멀었지만 연분홍 진달래는 다투어 피면서 예쁨을 뽐냈다. 어여쁜 꽃잎사귀는 봄바람에 하느적거리는데 꽃살은 바깥세상 구경이라도 하는듯 뾰주름히 돋아있었고 금시라도 터질듯한 꽃봉오리는 마지막 꿈을 꾸는듯했다. 이 모든것은 헤아릴수 없는 붉은 나비마냥 관목가지에서 알른알른거리는 그 풍경은 한폭의 그림같았다.
우리는 저도모르게 꽃가지들을 한묶음 꺾었다.. 어느 앤가 꽃을 먹는다고 해서 꽃잎을 따서 입에 넣었더니 연한 향내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집에 돌아왔다.
"어이구, 벌써 진달래가 피였구나!"
손에 든 꽃을 본 외할머니는 환성을 올렸다.
몇몇 또래처녀애들과 고무줄을 타던 외사촌누나는 몇송이를 따서 짓이개더니 손톱에다 발랐다. 손톱은 대뜸 연분홍색으로 변했다.
"참 곱구나!"
누나의 소리에 처녀애들이 꽃을 뜯으려고 우르르 몰려왔다. 외할머니가 그러는 애들을 말렸다.
"더는 꽃을 못살게 굴지마."
그리고선 빈 통졸임병을 가져오더니 깨끗이 씼어서 물을 채운후 거기에다 소금을 살짝 넣고 진달래꽃을 꽂았다. 마침내 꽃병은 처마밑 걸상에 놓여졌다.
외할머니는 진달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모를거다. 이 진달래는 당년의 렬사들이 피흘린 곳에서 핀단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산에 핀 진달래는 수천수만 떨기인데 하다면 얼마나 많은 렬사들이 그 많은 피를 흘렸단 말인가!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외할머니말씀이 옳은듯 했다.외할머니네 집에도 3개의 렬사증서가 걸려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보지도 못한 큰외삼촌 그리고 큰외삼촌의 아들과 둘째외삼촌의 아들이였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큰외삼촌은 항일전쟁에서 희생되였고 두 외사촌형은 해방전쟁에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뒤산기슭에 모셔진 렬사비가 떠올랐다.
"외할머니, 그 렬사비밑에 말이예요, 얼마나 많은 렬사들이 묻혀있나요?"
"그 밑에 아무것도 없어."
외할머니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숱한 렬사들이 외지에서 돌아가셨단다. 더러는 시체도 찾지 못했는데 뭘 묻겠니!"
외할머니는 손꼽아 헤시더니 " 우리 촌에도 렬사가 한 10여명은 되는구나, 그들을 저 렬사비밑에 모셨으면 얼마나 좋겠니." 라고 하시면서 소매깃으로 눈굽을 닦으셨다.
이튿날 나는 외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또래들한테 알려주었다. 그애들도 나처럼 눈이 보름달이 됐다. 호기심이 동한 우리는 한참 이러쿵 저러쿵 하다가 산에 가보기로 아퀴를지었다.
렬사비는 뒤산기슭에 자리잡았다. 한 10메터쯤 높았는데 거기엔 한자로 일곱글자가 새겨져있었다. 한자를 몰랐으나 그것이 "혁명렬사기념비"라고 알아맞출수 있었다. 렬사비앞에는 흰종이로 만든 화환 두개가 놓여있었다. 청명에 마을사람들이 다녀간게 분명했다. 렬사비 받침판은 화강암으로 되였는데 거기엔 한자로 렬사들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세여보니 12명이였다. 그들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그속에는 큰외삼촌과 두 외사촌형님도 있다고 믿었다. 또래들은 어디어디에도 렬사비가 있다고 너도나도 말했다. 렬사비가 참 많기도 했다.
우린 다시 진달래가 핀 곳으로 와서 나무꼬챙이로 진달래뿌리를 파헤쳤다. 정말 피흔적이 있는지를 알고싶었던것이다. 하지만 흙과 풀뿌리뿐 피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은 선혈이 흙에 스며들고 그것을 진달래가 흡수해서 꽃이 지금처럼 붉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우리는 이 곳에서 싸웠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탄알깍지며 파편이며. 반나절 헤매였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애들은 이곳이 싸움터는 아니였다는것, 선렬들이 다른데서 부상당하고 이곳을 지나면서 피를 흘렸다는것, 그래서 진달래가 있다고 단정했다.
모든것이 합리하게 해석됐다. 렬사들이 피흘린 곳에 진달래가 핀다는것만은 굳게 믿었다. 생각해보니 진달래는 정말 평범하지 않았다. 찬란한 해빛을 머금고 봄바람에 피여난 진달래는 생명이 있고 령기가 있는것 같았고 예쁜 얼굴로 우리와 뭐라고 속삭이는것 같았다. 저도모르게 숙연해졌다. 누군가 꺾으려 하자 나는 제꺽 말렸다.
"꺾지 말아라!"
그러자 누구도 진달래에 손을 대지 않았다.
후에 커서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서 나는 외할머니가 당년에 진달래를 두고 한 말씀이 근대 우리 민족의 비장하고 아름다운 전설임을 깨달았다. 초목은 무정해도 인간은 유정하다. 만자천홍, 천자백태의 화초는 대자연을 미화하고 인간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고있다. 사람들은 화초를 감상하면서 그한테 인성화한 아름다운 품격을 부여하였다. 어여쁜 목단, 고결한 련꽃, 굿굿한 매화 등.
진달래의 전설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한몸 바친 선렬들에 대한 사람들의 숭경과 그리움을 기탁했다. "봄을 알리는 선구자"라고 일컫는 진달래의 형상으로 나라를 위하고 후세대의 행복을 위하여 험난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은 선렬들의 숭고한 품격을 찬미하였다.
당년에 외할머니가 들려준 진달래전설을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간직하고있다. 소시적과 마찬가지로 진실로 믿고싶다. 저명한 시인 하경지의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라"라는 시구를 읽을 때마다 시인은 연변에 있는 기간에 류사한 전설을 듣고 그로부터 령감이 떠올라 연변인민들의 공명을 일으킨 천고절창을 썼을것이라고 짚어진다.
"더는 꽃을 못살게 굴지마!"
당년에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일찍 나는 진달래를 유린했던것으로 하여 가슴 아프고 진달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리해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괴롭기 그지없다.
하건만 오늘에는 알것 같다. 진달래는 유린당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진달래에 기탁한 선렬들의 숭고한 리상, 우수한 품격과 위업이 우리의 손에서 경멸시 당하고 유린당해서는 안된다는것을.
사람들이여, 진달래를 아끼고 사랑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