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우수공산당원, 중국감동 10대 인물, 전국 “5.1”로동메달 획득자… 일련의 영예를 받아안고 지난날 “말에 의한 우편배달 산길”에서의 고독한 우편배달부였던 그는 사천 량산이족자치주 무리장족자치현이라는 뭇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현성에서 현당위서기보다 “이름난” 인물로 되였다. 1984년, 19살난 왕순우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무리현우정국의 우편배달부로 되여 말을 친구로 삼는 나날을 보내게 되였다. 현세기 전에 무리의 대부분 향진에는 모두 도로와 전화가 통하지 않았다. 말에 싣고 사람이 배달하는 수단을 사용하는 우편배달 길은 현지 향정부,백성들이 외부와 련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경로였다. 전현적으로 현성을 제외하고 15갈래 우편배달 길은 모두 말에 의한 우편배달의 길이였으며 게다가 절대적인 대부분이 해발 4000메터 이상의 높은 산에 있었다. 왕순우는 무리현성으로부터 바이디요향, 산줴야향, 뤄버향, 카라향의 우편배달의 길을 책임지고 한달에 28일동안 산길에서 헤매면서 584킬로메터를 왕복해야 했다. 사람 한명, 말 한필, 길 한갈래, 술 한주전자. 길은 영원히 끝이 없는듯 했다. 먼저 해발 5000메터,일년중 절반 시간이 빙설에 뒤덮인 차얼와 산등성이를 넘은 뒤 또다시 해발 1000메터, 제일 더울 때 기온이 섭씨 40도에 달하는 아롱강 하곡에 들어가 크고 작은 원시삼림과 산봉우리, 골짜기, 산등성이를 지나야 했다. 계절의 변화가 매번마다 28일간의 길에 농축되였다. 때로운 심지어 하루동안에 엄동설한으로부터 한여름의 더위를 겪을수 있었다. 겨울에는 온몸에 눈을 뒤집어쓰고 여름에는 흙투성이였으며 배고프면 참파떡을 몇입 뜯어먹고 갈증나면 샘물을 마시거나 얼음덩이를 씹었으며 저녁에는 산속의 동굴, 큰나무 밑이나 풀숲에 움츠리고 말과 함께 잠을 취했으며 비오는 날에는 비옷을 몸에 감고 비물속에서 밤을 지내야 했다. 우박, 폭설, 큰비, 산사태 등 느닷없이 맞다드는 자연재해로 동반자가 없는 이 길은 위기가 사방에 도사리고있었다. “산골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도 그들을 떠날수 없다.” 왕순우는 늘 이렇게 말했으며 그 시절에는 한개 향진에 도착할 때마다 100여명의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그는 항상 저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났다. 그는 떠들썩한것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속에서는 그가 또한 가장 고독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늘 길을 걸으면서 혼자말을 중얼거리군 했는데 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말들은 산노래로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