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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의 지도하에 공산주의 투사로 성장하다
2013년 09월 09일 10:22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양림이 중국공산당 가입,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자료들이 이같이 서술하여왔다. 어디에서, 어떻게 어느 당조직을 통해 입당했는가를 밝혀보려는 자료들은 보이지 않고있다.

이는 필자의 지대한 흥미를 자아내 주은래와 중공광동구위에 단서를 두고 힘자라는대로 추적해보았다. 먼저 추적은 주은래의 발자취이다.

1924년 여름 주은래는 당중앙의 전보지시로 7월 하순에 4년간 학습하던 프랑스를 떠나 향항을 거쳐 광주로 갔다. 때는 이미 9월이다. 10월에 주은래는 중앙의 지시로 중공광동구위를 재건(重建)하고 중공광동구위 위원장 겸 선전부장을 맡았다. (중공광동구위는 1922년에 조직되였지만 광주일대만 지도하게 되여 광동의 당의 사업은 광동지방집행위원회가 맡아보았다.) 신생한 광동구위는 사업범위가 훨씬 늘어나 광동성은 물론 하문과 향항 등지까지 지도하게 되였다.

주은래는 당시 광동과 그 일대 당의 사업을 지도하는 총지도자였다. 이에 따라 주은래가 재건한 이 중공광동구위는 황포군관학교 중공당원들을 직접 지도하는 당의 지도기관이라는데 주의를 돌려야 한다. 주은래는 또 중국공산당을 대표한 황포군관학교 정치부 주임이였다. 중공광동구위와 황포군관학교 그리고 양림 관련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하여보면 양림의 입당은 주은래와 주은래를 위원장으로 하는 광동구위와 직접 이어짐을 보아낼수 있다.

1925년 2월, 황포군관학교 학생군이 주은래의 친솔하에 진형명을 무찌르는 제1차 동정을 가질 때 양림은 황포군관학교 교련부 학생총대 교관으로부터 제3기 학원대 제4대 상위대장 책임을 맡고 주은래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용맹을 떨치였다. 양림의 안해 리추악도 동정군선전대에 참가(리추악은 이제 뒤에서 출현하게 된다.)하여 표현이 특출하였다. 주은래는 조선인 양림과 리추악의 사람됨됨이를 보아냈다. 6월에 동정군이 광주에 돌아온후 주은래와 그가 지도하는 중공광동구위는 비밀리에 양림과 리추악 등을 중공당원으로 받아들이였다. 제1차 동정 전야에 주은래는 중공광동구위 회의를 소집하고 한동안 동정 제1선에 나서게 되는데 비추어 여러 사람들의 동의를 거쳐 진연년을 광동구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기는 구위 상무위원 겸 군사부 부장(군위서기)을 맡았다.

2007년 5월 18일 필자는 광주에 이르러 광주봉기렬사릉원, 로신기념관, 광주농민운동강습소, 월수공원과 중산기념비 등을 답사하고 이튿날 5월 19일 아침 일찍 서둘러 광주시 중심에서 퍼그나 멀리 떨어진 동쪽 변두리의 황포구 장주도(长洲岛)를 찾았다.

주강을 넘어 장주도 황포군관학교 옛터로 가니 오전 9시 반이다. 황포군관학교로 들어가는 정문에는 “륙군군관학교”라고 쓴 검은 글 간판이 걸리여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황포군관학교 옛터 구내는 사진삼로(四进三路)의 2층 건물들로 이루어졌다. 사진삼로란 네줄로 배렬된 2층 건물들이 3개의 회랑(回廊)으로 이어진것을 가리킨다.

필자는 기념관내 “북벌전쟁중의 황포인” 제1전시관에서 끝내 양림의 이름을 찾아냈다. 양림의 이름은 양녕(杨宁)이라는 이름으로 “엽정독립퇀 성원중 황포군관학교에서 온 명단”(叶挺独立团成员中来自黄埔军校的名单) 세번째 사람으로 적혀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황포군관학교 출신들이 주요성원으로 나선 제4군 독립퇀에 양림이 나타나지 않을수가 있을가, 양림은 양녕, 제3영 영장, 제3기 교관, 후에 황포로 전근 등으로 밝히여졌다. 1925년 11월, 광동성 조경에서 중공광동구위가 지도하는 국민혁명군 제4군 독립퇀(즉 엽정독립퇀)이 건립되였다. 주은래는 양림을 엽정독립퇀 제3영 영장으로 파견하였다. 그때 주은래의 지시로 퇀에 중공지부가 있고 영에 소조가 있었는데 양림이 당소조장을 겸하였다.

그는 손중산선생이 령도하는 광주혁명투쟁 당시 손색없는 조선인의 우수한 대표인물이였다. 제3영에는 3개 중대에 500여명 장병이 있었다.. 독립퇀은 갓 조직된데서 부대의 기률이 산만하고 군벌작풍이 두드러짐은 회피할수가 없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양림은 소속 제3영에서 반탐오, 반군벌작풍 투쟁을 벌리고 정치사상사업을 억세게 틀어쥐여 부대의 그릇된 기풍을 근본적으로 돌려세우고 부대의 전투력을 크게 높이였다. 그 시기 고요현의 반동지주들은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하여 수천명 지주무장을 끌어모았다. 이자들은 도처에서 농민협회를 파괴하거나 농민들을 죽이고 가옥을 불살랐으며 농민의 소와 재물을 략탈하여 원성이 높았다.

양림은 퇀부의 지시에 좇아 3영을 거느리고 령촌과 오촌 등지에 가 농민들을 도와 반동지주를 진압하고 지주무장을 짓부셨다. 당지 농민들은 양림이 조선사람이란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들은 “양영장은 조선사람인데 우리를 도와 반동지주와 제국주의를 쳐부십니다. 우리는 혁명을 더욱 더 견지해야겠습니다”고 하면서 농민운동에 보다 발벗고나섰다(리함).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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