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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설립
2006년 09월 25일 09:15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중국공산당의 탄생은 중국혁명발전의 객관적수요로서 맑스주의가 중국로동운동과 결합된 산물이다. 1840년 아편전쟁이후 국제자본주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중국에 침입하여 중국의 사회구조는 봉건사회로부터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화되였다. 아편전쟁으로부터 《5.4》운동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민은 제국주의와 봉건통치를 반대하여 영용불굴의 투쟁을 진행하였다. 그중 주요한것은 태평천국농민전쟁과 자산계급령도하의 신해혁명이였는데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갔다.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중국의 농민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은 그들의 력사적국한성과 계급(階級)국한성으로 민주혁명을 령도하여 승리를 취득할수 없었다.

 

제국주의의 침입과 현대공업의 발전으로 중국에는 무산계급이 산생하였으며 그 대오가 부단히 장대해졌는바 1919년에 이르러 산업로동자수가 이미 200만명가량으로 발전되였다. 무산계급의 산생과 발전은 중국공산당의 창립을 위해 계급토대를 닦아놓았다.1917년 로씨야 10월혁명의 승리는 중국에 맑스-레닌주의를 보내왔으며 중국의 선진분자들로 하여금 구국, 구민의 진리를 터득하게 하였다. 맑스-레닌주의의 중국에서의 광범위한 전파는 중국공산당의 창립을 위해 사상적기초를 닦아놓았다. 1919년에 폭발한 《5.4》운동은 맑스주의와 중국로동운동간의 결합을 촉진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의 창립을 위해 사상적준비는 물론 많은 간부들을 양성해주었다.

 

1920년초, 리대소, 진독수 등은 창당의 탐색과 준비사업을 시작하였다. 4, 로씨야공산당 씨비리국은 보이딘스키 등 일행을 중국에 파견하여 중국정황을 료해하게 하고 상해에 공산국제 동아세아서기처를 설립할 가능성을 고찰하게 하였다. 그들은 먼저 북경에서 리대소와 회견했으며 리대소의 소개로 상해로 가서 진독수를 만나 창당문제를 공동히 토의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의 창립을 촉진하였다. 월부터 진독수는 리한준(李漢俊), 리달(李達), 유수송(兪秀松) 등을 요청하여 여러번에 걸쳐 창당문제를 토의하였다. 8, 진독수는 상해에서 중국공산당 발기조(發起組)를 설립하였다. 10, 리대소는 북경에서 공산주의소조를 설립하였다. 뒤이어 호남, 호북, 산동, 광동 등지에서 잇달아 당의 조기조직을 설립하였으며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류학생들중의 선진분자로 이루어진 당의 조기조직이 결성되였다. 당시 이런 조직들은 명칭이 각기 달랐는데 어떤 조직은 공산당이라고 했고 어떤 조직은 공산당소조 혹은 지부라고 했다. 이런 조직들은 그 성질이 같았기때문에 그후 각지 공산주의소조라고 통칭하여 불렀다.

 

각지 공산주의소조는 설립된후 여러가지 혁명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 9월 상해발기조는 《신청년》잡지(8 1호부터 시작)를 당의 공개간행물로 개변시켰다. 같은 해 11 , 또 《공산당》월간을 창간하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비밀리에 발행하였다. 이것은 중국공산당력사상의 첫 당간행물이다. 신청년출판사는 또 《공산당선언》, 《국가와 혁명》 등 맑스-레닌주의경전저작들과 맑스주의를 선전하는 여러가지 통속소책자들을 번역, 출판하였다. 각지 공산주의소조들은 또 로동자들을 독자대상으로 통속간행물을 창간하였는데 이속에는 상해의 《로동계》(勞動界), 북경의 《로동음》(勞動音)과 《로동자월간》, 제남의 《제남로동월간》, 광주의 《로동자》 등이 포함된다. 이런 간행물들은 로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의 계몽교육을 진행하였다. 이 토대우에서 각지 공산주의소조들은 로동자군중들속에 적극적으로 심입하여 로동자야학교를 꾸리고 공회조직을 건립하였다. 각지에서는 또 사회주의청년단을 건립하여 한패의 단원을 발전시켰는데 청년단은 당의 유력한 조수와 후비군으로 되였다.  

 

1921 3, 로씨야공산당 극동국과 공산국제의 건의와 지지밑에 각 공산주의소조 대표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에서 당의 종지와 원칙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고 림시적강령을 제정하였으며 당의 사업기구와 사업계획을 확립하고 당조직의 사회주의청년단, 공회, 행회(行會), 문화교육단체와 군대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였다. 이번 회의는 당의 설립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였다. 보이딘스키가 귀국한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21 6, 공산국제는 마린을 상해에 파견하였다. 그들은 당의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하고 정식으로 중국공산당을 설립할것을 건의하였다. 상해의 당발기조는 리달의 주최하에 전국대표대회의 주비사업을 진행하였으며 각지 당조직에 편지로 통지를 보내 각지에서 2명의 대표를 선발하여 대회에 참석시킬것을 요구하였다. 북경, 한구, 광주, 장사, 제남과 일본의 각지 대표들이 7 23일 전부 상해에 도착하였다.

 

192123—31상해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전국대표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중국공산당의 첫 강령과 결의를 통과하였다. 강령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당의 명칭은 《중국공산당》이고 당의 성질은 무산계급정당이며 당의 분투목표는 자산계급을 뒤집어엎고 자본소유제를 페지하며 무산계급독재를 건립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실현하는것이다. 당의 기본임무는 로동운동의 각항 활동에 종사하고 공회와 로동자운동에 대한 연구와 령도를 강화하는것이다. 대회는 당의 지도기구- 중앙국을 선거하였는데 진독수가 서기직을 맡았고 장국도가 조직을 책임지고 리달이 선전을 책임지였다. 

 

당의 제1차대표대회는 중국공산당의 설립을 정식으로 선고하였다. 이때로부터 중국에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공산주의를 목적으로 하고 맑스-레닌주의를 행동지침으로 하는 통일된 로동계급정당이 탄생하게 되였다. 중국공산당의 설립은 도탄속에서 허덕이던 중국인민들에게 광명과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모택동이 말한바와 같이 중국공산당의 설립은 천지개벽의 대사변이였다. 중국공산당이 설립된후 중국혁명의 면모는 완전히 새로와졌다.

 

당의 제1차대표대회는 7월에 열렸으나 전쟁년대에 당안자료를 찾기 어려워 구체적인 개막날자는 알아낼수 없었다. 그리하여 1941 6월 당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중공중앙은 정식으로 7 1일을 당의 탄생기념일로 규정하였다.

 

당의 제1차대표대회 개막날자는 20세기 70년대에 당사사업일군들에 의해 고증되였는데 새로 발견된 력사자료와 고증성과에 근거하여 제1차대표대회의 개막날자가 1921 7 23일임을 확정하였다.

  래원: 인민넷-중국공산당뉴스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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