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 하남가 신광 33조에는 지난 세기에 항일전쟁, 국내해방전쟁 및 항미원조전쟁까지 겪으며 많은 공을 세운 올해 91세인 최명세로인이 살고있다.
최명세옹은 1918년 조선 평안북도에서 출생해 19살 되던 해에 항일의 길에 나섰다.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이름을 명세(明世)로 고친 그는 1945년 4월 어머니의 돋보기통안에 “일본이 망하면 돌아오렵니다”란 쪽지를 남기고 태항산항일군정학교에 찾아가 조선의용군에 입대했다.
그후 항일전쟁과 동북해방전쟁 및 평진전역, 화북전역을 거치며 6년간의 전쟁포화속에서 영장으로 승급했고 1950년에는 조선인민군에 편입되면서 항미원조전쟁에도 참가했었다.
1953년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된후 당시 퇀장이였던 그는 제대됐고 1956년부터는 연변주수리국에서 사업하다가 리직했다. 재직시 길림대학 중국어문 통신학부를 졸업한 최명세옹은 전쟁의 나날에 희생된 영웅들을 기리며 회억록 “156사실전록”을 써내여 후세에 보귀한 선물을 남겼다.
한편 최명세옹은 받아안은 많은 공훈메달을 주혁명력사박물관에 기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급자유훈장과 3급국기훈장 등 몇매만 소지, 그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것은 항일전쟁승리 60돐기념해에 중화인민공화국 호금도주석으로부터 받아안은 24K짜리 금메달이다.
그는 반짝이는 금메달을 만질 때마다 가렬처절하던 전투장면을 떠올리면서 화피창렬사릉원에는 이름이 없는 렬사들이 수백명 된다며 눈굽을 찍군 한다(최두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