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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황구는 지금의 영안향 북부에 위치하고있는데 항일유격대의 근거지였고 일제와 위만경찰의 공격의 주요목표였다.
1933년 9월, 훈춘항일유격대는 중공동만특위의 지시에 따라 왕청유격대와 함께 동녕현성을 공략하는 전투에 참가하려고 동년현성을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훈춘유격대가 통지를 늦게 받아 로흑산 삼과수에 이르렀을 때 동녕현성전투를 결속하고 돌아오는 왕청현유격대와 만나게 되였다. 두 유격대는 로흑산에서 한달간 휴식정돈을 거친후 함께 왕청 라자구에 가 전투승리를 경축하는 련환활동에 참가했다. 이후 훈춘유격대일행 29명은 훈춘에로 돌아가게 되였다. 유격대는 이틀간의 행군을 거쳐 10월 7일 저녁무렵, 대황구에 도착해 저녁밥을 지어먹은후 귀틀막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날 밤, 두갈래의 적들이 깜쪽같이 대황구토벌에 나섰다. 한갈래는 훈춘 "토벌대"인데 하다문 인하동을 거쳐 비밀리에 대황구동구를 기습하고 당지 백성 18명을 학살했다. 다른 한갈래는 밀강에 주둔하고있는 일본수비대와 위만자위단 40여명이 변절자를 길잡이로 내세우고 청수동을 거쳐 대황구로 몰려오고있었다. 초병이 적들을 발견했을 때는 적들이 이미 눈앞에 다가왔을 때였다.
이날 초병은 신입대원으로서 경험이 없었다. 그는 총을 쏘아 긴박함을 알려야 했었지만 당황한김에 달려가면서 "토벌대가 왔다. 토벌대가 왔다" 하고 소리쳤다. 대원들이 깨여나 반격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적들이 유격대의 귀틀막에 수류탄을 마구 던졌다. 몇명의 유격대원들이 당장에서 숨졌다. 중대장 박진흥과 오빈이 대원들에게 포위를 돌파하라고 명령하고 자기들은 계속하여 반격하면서 대원들을 엄호했다. 박진흥은 전투가운데서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오빈은 불행하게 적탄에 복부를 맞아 창자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서 비수로 덮쳐드는 적을 쓰러뜨리면서 포위를 뚫으려 했다. 하지만 30메터도 못가 아가위나무밑에 쓰러지고말았다. 희생되기전 그는 무기가 적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방아쇠를 빼내여 멀리 던져버리고 총은 몸밑에 감추고 숨을 거두었다. 백병전을 거쳐 적지 않은 대원들이 포위를 돌파해나왔지만 박진흥, 오빈 등 13명 동지는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중 성이 랑이라는 만족대원이외에 전부가 조선족이였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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