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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만항일유격대의 발전장대와 유격근거지의 건립은 동북에서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제에 막대한 위협을 조성하였다. 동만4현유격대 및 그 근거지가 금방 건립되여 일본괴뢰군은 동만항일유격근거지에 대해 대규모의 군사토벌을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침략군이 연변항일력량에 대한 토벌은 사실상 1932년초부터 시작, 4월3일 일본군은 조선 라남 제19사단으로 구성된 “간도파견대”를 파견하여 연길, 룡정 등지에 침입, 4월17일 일본관동군 평하부대는 장춘으로부터 동만을 지원, 간도파견대와 화합한후 관동군학견부대도 녕안으로부터 동만을 침범, 이 3갈래의 일본침략군은 동만에 침입후 당지의 군대경찰과 괴뢰무장자위단을 모집하여 동만의 항일군중에 대해 제 1차 대토벌을 진행, 1932년 4월부터 년말까지 381차 토벌을 감행, 4000여명의 백성을 살해, 연길 한개 현에서만 700여명의 군중을 살해, 의란구에서 2300여가구을 불살랐다. 이리하여 광번한 농촌의 군중은 적들이 아직 닿지 않은 편벽한 산간지대로 피난했다.
1933년초 일본침략자는 3000여명의 병력을 모집하여 비행기, 대포의 엄호와 배합하에 소왕청과 연길현 의란구, 석인구, 삼도만, 훈춘현의 대황구, 연통라자 등 유격근거지에 대해 대규모의 포위토벌을 감행, 1933년 1월 20일 일본군 수비군, 괴뢰경찰과 자위단 50여명은 연길현 왕우구 항일유격근거지를 침범, 연길현 유격대와 삼림대”해룡”부는 련합하여 맞서 7시간 남직한 격전을 거쳐 적을 물리쳤다. 4월 24일 600여명의 일본괴뢰군은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을 진공하였다. 우리 군은 뾰족산, 마반산 등 유리한 지형에 매복하여 적군을 맹렬히 사격하였다. 적의 여러차례 진공을 들이대자 적군은 서, 남 두곳으로 련속 진공을 발동하다가 왕청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왕청유격대는 적군에 대해 드센 공격을 펼쳐 항일유격근거지 보위전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동만지구 여러 민족 인민의 항일투쟁을 격려하였다.
반 “토벌” 투쟁의 승리를 거둔후 기타 항일대오와의 련합작전을 통하여 유격대를 장대하고 유격구를 확대, 1933년말 동만4현유격대는 이미 700여명( 그중 중공단원이 80% 이상을 차지)에 달하고 각종 총기는 500여개를 갖추었고 또 1000여명의 적위대도 있었다. 동시에 연길현 삼도만, 왕청현 라자구, 훈춘현 하남과 판자교 및 화룡현 이도구 등 새 유격근거지와 유격구를 개척하였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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