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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유격근거지내에서 연변 여러 민족 인민과 항일유격대는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항일민족문화교육사업을 전개했다.
1932년 겨울 연변지구 각 항일유격근거지에서는 “소학의무교육법”을 반포하고 유격근거지내에서 학령아동의 의무교육을 실행할것을 요구했다. 항일전쟁시기 연변 여러 근거지에서 설립한 학교가 30여개였다. 학교에서는 자민족언어문자로 학생들에게 문화지식을 전수하고 시사정치과를 설치하고 혁명투쟁상식, 항일전쟁형세, 근거지의 각항 정책과 유격전쟁의 군사지식을 배워주고 혁명가요도 배워주었다.
근거지에서는 소년아동단도 조직했다. 소년아동단은 과외시간을 리용하여 문예선전대를 조직하고 혁명희극, 가요, 무용을 만들어 항일군민을 위문하고 항일유격대를 따라 적의 통치구에 들어가 광범한 군중들에게 항일을 선동했다.
1935년초, 적들의 대”토벌”에서 연길, 화룡 유격근거지 군민들은 원래의 근거지를 포기하고 안도 처창즈로 옮겨갔다. 극도로 악렬한 환경에서 유격근거지인민들은 자녀에 대한 교육을 견지했다. 유격대가 적의 거점을 습격하여 로획한 량식, 의복의 일부분을 군수품으로 충당하는 외 먼저 학교에 공급하여 아동들의 성장과 교육을 담보했다.
각 유격근거지 혁명정부에서도 성인사회교육을 중시하여 식자반, 야학교 등 군중교육조직을 건립하여 문맹퇴치, 식자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조직의 교학내용도 정치임무와 적에 대한 투쟁임무와 서로 결합되였다.각지의 부동한 환경, 수준 정황에 적응하기 위해 1933년부터 자체로 편찬한 “성인기초독본”을 사용했다.
문화면에서 일부 유격근거지에서는 합창대, 선전대를 세우고 항일유격근거지에서 “전투하는 밀림”, “경축대회” 등 화극과 가극을 창작, 공연했다. 이런 희극은 조선족인민의 민족예술전통을 계승했을뿐만아니라 현대화극의 일부 수법을 흡수하여 새 풍격을 창조해내 유격구 광범한 군민의 환영을 받았다. 항일유격근거지에는 항일가요와 혁명희극외에 “연통라자”, “신창동전투” 등 많은 민간이야기도 잇달아 출현했다. 선전면에서 일부 신문과 잡지를 출판했는데 주로 중공동만특위 기관보인 《투쟁》, 《량조전선》 및 유격대와 군중단체의 신문인 《전투일보》, 《반일보》, 《소년선봉》 등이 있었다. 이런 간행물은 1935년 유격근거지가 파괴될 때 잠시 휴간하고 항일련군 제2군이 남만에 진군하여 장백유격구를 개척할 때의 간고한 조건에서 다시 회복출판되였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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