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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유격전쟁의 확대와 더불어 력량을 보존하고 발전시킬수 있는 전략기지건립이 박절했다. 이리하여 1932년 여름, 가을부터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은 각급 당조직의 령도하에 항일유격근거지를 건립하는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9.18”사변후 투쟁의 세례를 겪은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항일구국투쟁을 전개했다. “추수”, “춘황” 투쟁후 군중들의 반일정서는 격앙되였다. 장백산과 중쏘, 중조 변경의 고산준령과 일정한 전투력을 갖춘 항일무장은 항일유격근거지를 창건하는데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투쟁가운데서 연변지구에는 부르하통하이북의 연길유격구, 가야하량안산악지대의 왕청유격구, 봉밀구산악지대의 화룡유격구, 황구령이북산악지대와 훈춘하이남 중쏘변경지대의 훈춘유격구가 건립되였다. 1932년 하반년부터 유격구안에 10여개 항일유격근거지가 건립되였는데 주로 연길현의 왕우구, 팔도구, 삼도만, 왕청현의 소왕청, 가야하, 요영구, 훈춘현의 대황구, 연통라자, 화룡현의 어랑촌, 우복동 등이다. 각 유격근거지의 범위는 대체로 60,70리에서 100여리 사이이고 인구는 600,700명에서 1000, 2000명 사이이며 연변항일유격근거지내 인구는 약 2만명으로 그중 조선족이 95%였다.
각 유격근거지에서는 보편적으로 항일정권을 건립했다. 중공중앙 “북방회의”의 요구에 따라 1932년 11월부터 1933년 2월까지 사이에 선후로 연길현 왕우구, 왕청현 가야하, 훈춘현 대황구와 연통라자, 왕청현 소왕청, 연길현 석인구 등지에 6개 구쏘베트정부가 설립되고 구쏘베트정부아래에 20여개 촌쏘베트정부가 설립되였다. 동시에 1932년 겨울부터 1933년 봄까지 선후로 연길현의 삼도만, 화련리, 위자구, 남양촌, 화룡현의 어랑촌, 우복동, 왕청현의 요영구, 하마탕, 라자구 등지에 쏘베트기능을 대행하는 혁명위원회가 설립되였다. 구, 촌 쏘베트정부와 혁명위원회에는 총무, 경제, 량식, 교양, 군사, 법정 등 판사기구가 설치되였다. 각 유격근거지에는 반일회, 호제회, 아동단, 부녀회 등 반일군중단체가 건립되고 소선대, 적위대, 농민반일자위대, 청년의용군 등 군중성무장단체가 건립되였다. 통계에 의하면 1933년 9월 동만지구에는 반일회원 1.9만여명, 반일자위대원과 소선대원 1600여명이 있었다. 이런 반일단체와 반일군중무장은 유격근거지의 건설, 생산, 전선지원, 정찰 등 활동을 전개했다. 각 유격근거지에서는 또 간단한 병기공장, 피복공장, 인쇄공장 등을 꾸려 운영했다.
항일유격근거지의 창건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거대한 위협을 조성했을뿐만아니라 항일유격전쟁가운데서 기지역할을 발휘하여 항일전쟁의 발전에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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