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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라즈사건과 구국군의 항일투쟁

2009년 10월 22일 09:15【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9.18사변시 연길현 옹성라즈(지금의 안도현 명월구진)에 주둔하고있던 중국군대는 동북륙군 제27려 677퇀 3영이였고 영장은 왕덕림이였다.1931년 12월 7일 오후 2시경에 일본철도측량대의 7명 일본인이 옹성라즈로 기여들었다.라즈에는 3영의 포태가 있었고 사병들이 지키고있었다.산기슭에는 3영의 병영이 있었고 포태로 통하는 한갈래 전호가 있었다.측량대의 일본인은 망원경을 들고 억지로 포태앞에 가 지세를 관찰하였다.보초를 서던 주덕재와 서대성은 당장에서 제지시켰으나 일본인은 내려가지 않으면서 무리하게 집탈했다. 격노한 보초병이 몇차례나 경고했으나 일본인은 계속 집탈을 부렸다.참을수 없는 정황에서 보초병이 총을 쏴 두 놈을 쓸어눕히자 다른 놈들은 뿔뿔이 달아났다.

이 사건이 발생한후 일본인들은 대한간이며 위길림성림시정부 주석인 희흡장을 협박하여 3영을 길림으로 옮겨가게 하였다.1931년 12월 중순에 연길 려부에서는 3영을 퇀으로 개편하고 왕덕림을 퇀장으로 승급시킨후 길림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하였다.그러나 전체 장병들은 돈화까지 간후 행군로선을 개변하여 액목현성으로 진군하였다.후에 연길현 소성자와 하마탕전,후하에 도착하였다.

1932년,1월에 중공연길현위에서 파견한 리연록의 방조하에 왕덕림은 로3영을 항일구국군으로 편성하였다.이 시기 한패의 공산당원들이 선후로 구국군에 들어가 사업을 전개하였다.중공왕청현위에서는 조선족공산당원 리광을 구국군 오의성부대에 파견하여 별동대를 설립하였다.공산당원 호택민은 오의성부대에 들어가 참모장을 담임하였다.리연록의 추천으로 공산당원 맹경청,류경안이 구국군 총정,부의장을 맡았으며 조선족공산당원 리성림이 총부 선전부장을 맡았다. 리연록은 왕덕림의 존중과 신임을 받고 구국군 전적사령부 참모장과 보충 1퇀 퇀장으로 임명되였다.리연록은 보충1퇀에 비밀지하당지부를 건립하였다.2월 15일에 항일구국군은 하마탕에서 출발하여 20일에 돈화에 이르렀다.이때로부터 구국군은 일련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항일구국군은 1932년 원소절에 현성을 들이친후 또 교하를 점령하고 액목에 진주하였으며 경박호일대를 전전하였다.3월 12일 일본군은 경박호 남호두에서 비행기의 배합하에 구국군을 포위공격하였다.한시간의 격전을 거쳐 구국군은 일본군을 격퇴하였다.3월 12일부터 23일까지 구국군은 송을구 등지에서 일본군을 호되게 타격하였다.구국군의 4전4첩은 구국군과 인민들의 사기를 크게 올려주었다.애국청년들이 무리로 찾아와 참군하였고 삼림대도 개편을 기꺼이 접수하였다. 4월 3일 ,왕덕림은 구국군 주력을 거느리고 녕안현과 동경성을 점령하였다. 대오는 3000여명으로부터 1만여명으로 늘어났다.구국군은 6개 려, 2개 독립퇀, 2개 보충퇀,1개 위대퇀으로 개편되였다.새로운 사령부를 구성하고 왕덕림이 총사령으로, 오의성이 전적총지휘로, 리연록이 총참모장으로 ,리성림이 총부 선전부장으로 되였다.

1932년 5월 ,중공만주성위 군위서기 주보중이 구국군 오의성 전적총지휘부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였다.주보중은 구국군내에 비밀당조직을 건립하고 오의성부대를 쟁취, 개조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녕안개편후 왕덕림은 부대를 나누어 동년,목릉,밀산,액목,안도 등 현을 점령하였고 중동철도동단을 통제하였다.일본제국주의를 더 힘있게 타격하고 길회철도수축을 저애하기 위해 구국군은 선후로 1932년 6월 15일과 9월 20일에 돈화에 주둔하고있는 일본군을 두차례나 들이쳤다.구국군은 3차나 돈화를 공격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항일투지를 고무하여주었다.1932년 12월 부터 일본군이 중병을 파견하여 포위토벌하자 구국군은 돈녕을 잃었다.이듬해 1월 11일에 왕덕림은 할수 없이 총부와 가족을 거느리고 쏘련경내 쐉성자(지금의 우쑤리쓰크)로 들어갔다. 나머지 부대는 주보중과 리연록의 령솔하에 동북항일련군에 참가하여 계속 항일투쟁을 견지하였다.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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