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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8월 13일, 화룡현 평강 약수동촌에서 동만 제1차 당원대표대회가 소집되였다. 대회에서는 왕경이 중공연화중심현위 서기로 당선, 중공만주성위에 예속되며 산하에 10개 구당위, 61개 지부와 470명의 당원을 두게 되였다.
1930년 9월, 중공만주성위는 동만당조직에 우경사상을 극복하고 토지혁명을 전개하여 쏘베트정권을 건립할것을 지시, 동만 각지의 당조직에서는 "추수폭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9월, 연길, 화룡과 왕청 3개 현의 혁명군중들은 당조직의 령도하에 기의를 일으키고 친일주구와 악패지주를 청산, 현금과 무기를 탈취하고 지주, 부농과 고리대업자들의 땅문서와 고리대계약서를 불살랐다. 18일, 중공화룡현위 평강구위 군사위원회 리동선은 260여명 군중을 이끌고 륙군병원을 습격하다가 실패, 10월말에는 설립된지 얼마 안되는 왕청공농유격대가 쌍하진보위대 주둔지를 습격하여 100여자루의 총과 탄약을 탈취, 악패지주 반광우를 처단하였다. 10월 한달에만 연길, 화룡, 왕청 3개 현에서는 368명의 군중이 폭동에 참가하고 489명이 유격전쟁에 가담하였으며 33명의 친일주구를 처단하고 29채의 악패지주의 집과 땅문서, 고리대계약서를 불살랐으며 빈곤한 농민들에게 량식을 나누어주었다.
1930년 10월, 중공만주성위에서는 료여원과 양림(조선족, 원명 김훈, 일명 양녕, 필사제)를 연변에 파견, 중공동만특별위원회를 조직,설립하고 료여원이 서기를, 양림이 군위서기를 맡았다. 특별위원회가 설립된후 만주성당위의 지시에 따라 각 현당위의 조직사업에 착수, 10월말에 이르러 선후로 왕청, 연화, 훈춘 현당위를 설립했으며 1931년에 이르러 공산당원 636명을 발전시켰는데 그중 조선족당원이 96.5%에 달했다. 당시 동만특별위원회소속 당원수는 전체 동북 당원수의 54.1%를 점했다.
연변지구의 "가을철농민폭동"은 조선족농민을 위주로 연변 농촌 각지에 파급되면서 토지혁명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후의 항일무장투쟁에 튼튼한 군중기초를 다져놓았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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