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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5월 투쟁”은 연변조선족인민이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펼친 첫 반제반봉건투쟁이다.
1930년 1월, 중공만주성위원회는 연변지구의 당조직을 회복하기 위해 화룡현에 중공연변특별지부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여러가지 사업을 전개, 연변지구의 당조직은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1930년 4월 5일, 중공만주위원회와 공청단성위는 "5.1"절을 계기로 성세호대한 “붉은 5월 투쟁”을 전개할데 관한 문건을 하달했다. 4월 20일, 중공만주성위의 파견을 받은 박윤서는 연변에서 왕경, 김근 등과 함께 비밀리에 “붉은5월 투쟁”행동위원회를 내왔다.
5월 1일, 룡정 등지에서는 일본침략자들의 식민지교육정책과 국민당 당화교육을 반대하는 시위행진과 집회를 조직했다.
5월 23일부터 부분적 농촌의 시위는 봉기로 넘어가고 토지개혁을 시작했다. 화룡현과 연길현의 농민들도 당의 령도하에 친일파와 토호렬신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땅문서와 고리대문서들을 불태웠다. 5월 27일, 중공연변특별지부의 파견을 받고 평강 약수동에 파견된 신춘은 성대한 집회를 조직하고 약수동쏘베트정부의 설립을 선포했다. 이는 동북의 첫 쏘베트정권이다. 회의에서는 5월 30일 방대한 규모의 투쟁을 조직할데 관한 행동계획을 내왔다.
5월 29일 저녁, 삼도구 농민들이 앞장서서 봉기를 일으키면서 "오주"폭동의 서막을 열었다. 30일 저녁, 기타지구의 군중들도 분분히 친일단체와 간도파출소, 철도교각 등을 부수고 불태웠다.
일본제국주의는 인민군중의 혁명운동에 불안을 느끼고 반동군벌과 결탁하여 미친듯이 인민군중의 혁명투쟁을 진압했다. 이어지는 "련합토벌"에 수많은 공산당원과 군중들이 포로, 피살되였다.
“붉은 5월 투쟁”은 일본침략자와 지방봉건군벌세력에 심중한 타격을 가했을뿐만아니라 연변조선족인민들의 불요불굴의 혁명정신을 보여주었다. 이 투쟁은 중국공산당이 연변지구에서의 정치적영향을 깊이하고 연변 및 동북 각 민족 인민들의 반제반봉건투쟁을 추진했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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