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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닌주의 전파가 심화되면서 연변지구의 청년운동은 아주 활약적으로 전개되였다. 1924년 7월, 룡정대성중학교의 학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유교사상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와 새로운 과학을 제창했다. 룡정동흥중학교의 진보사생들은 천도교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렸고 1924년 7월에 가서는 학교의 진보교사들로 구성된 교사단이 학교를 접수, 관리했다.
연길현 옹성랍자부근의 청년학생들은 상해에서 온 장기영, 주건 등의 지도하에 공산주의사상을 선전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연길, 화룡, 왕청, 돈화, 훈춘 등 곳에서도 청년학생들을 골간으로 한 혁명단체가 출현했다.
형세의 발전에 따라 1926년 1월 26일, 20여개 단체 대표들이 참가한 대표회의가 룡정에서 소집, 리린구를 회장으로 한 동만청년총동맹을 건립, 회원은 1000여명에 달했다.
총동맹회가 건립된후 학생과 청년들은 여러가지 형식의 투쟁을 펼쳤다. 1927년 5월 1일, 룡정과 투도구에서 수천명 학생과 군중들은 5.1국제로동절을 기념하는 성세호대한 시위를 벌렸다.
1928년 9월 2일, 청년총동맹회는 국제청년절을 기념하는 활동을 조직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전국성 반일투쟁이 조선에서 벌어졌다. 1930년 1월 23일, 룡정의 대성, 동흥 등 학교의 수천명 중소학생들은 광주학생들을 성원하는 시위를 펼쳤다. 1월 28일, 은진과 명신 등 학교의 학생들도 반일시위를 벌렸다. 2월 6일, 동흥중학교 학생들은 일본군경들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동맹휴학을 거행, 거리에서 삐라를 뿌리고 반일구호를 웨쳤다. 2월 28일과 3월 1일, 룡정과 평강, 로투구의 청년학생들과 군중들도 규모가 아주 큰 시위를 펼쳐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규탄했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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