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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연변의 반일무장부대는 화룡의 청산리 백운평, 와룡 완류구, 압계구 등 지역에서 일본군과 10여차의 전투를 벌려 1000명에 가까운 일본군을 소멸, 이를 "청산리전역" 또는 "청산리대첩"이라고 부른다.
10월 21일, 일본군 야마다련대는 청산리 백운평으로 진군했다. 일본군 선견대 90여명이 북로군정서부대의 매복권에 들어섰을 때 우리 군은 적군에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30분도 안되여 적군의 선견부대는 모조리 섬멸되였다. 야마다련대는 경황실색한 나머지 대포를 쏘고 기관총을 갈기면서 급급히 응전했다. 하지만 반일부대는 언녕 진지에서 철거하여 로령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 반일부대는 일본군의 추격을 물리치고 교모하게 방향을 바꿔 갑산촌으로 진군했다. 백운평전투는 청산리대첩의 서막을 열었다.
갑산촌에 전이한 북로군정서부대는 22일 아침 천수동에서 일본군 기병 한개 소대를 발견, 전투를 거쳐 몇명 일본군만 도망친후 나머지는 전부 소멸되였다.
22일, 홍범도가 지휘하는 련합부대는 완류구에서 일본군예비대를 호되게 족쳤다. 이날 아침, 적군의 한갈래는 남완류구를 따라 진격하고 다른 한갈래 적군은 북완류구를 따라 진격하면서 홍범도의 반일부대를 포위하려고 했다. 홍범도가 지휘한 부대는 남북으로 포위를 좁혀오는 적군에게 사격을 가한후 교묘하게 적군의 포위에서 벗어났다. 적군은 대방을 반일부대로 여기고 개싸움을 벌렸다.
천수동전투후 북로군정서부대와 홍범도의 련합부대는 련합하여 874고지전투(어농촌전투)에서 일본군 수백명을 사살,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 전투는 청산리전투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또한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련합부대가 손을 잡고 벌린 유일한 전투이다.
874고지전투가 결속된후 반일부대는 선후로 장인강상류와 고동하상류에서 맹가구, 맹가구서구, 만기구, 천보산은동재전투와 고동하전투를 통해 적을 호되게 타격했다. 훈춘, 왕청 등 지역의 반일무장부대도 주동적으로 전투를 벌려 서부지구의 주력부대의 전투에 배합했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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