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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는 1920년 6월 4일부터 7일까지 삼툰자, 후안산, 고려령, 봉오동 등지에서 치뤄진, 연변조선족 반일부대가 동북경내에서 일본 정규군과 맞붙은 한차례 비교적 큰 전투이다.
홍범도가 거느린 독립군은 간도국민회군과 련합한 뒤 1920년 5월 27일, 최명록이 령도하는 군무도독부와 함께 여러 무장부대들을 정돈하여 북로독군부를 성립했다. 최명록이 독군부장을, 안무가 부관을, 홍범도가 북로제1군 사령관을 맡고 원 도독부가 있던 봉오동(현 도문시 석현진)에 독군부 본부를 세웠다.
1920년 6월 4일, 봉오동일대에서 활동하던 신단 부분적 대오는 두만강을 건너 조선 강양동의 일본헌병초소를 습격한 뒤 신속히 삼툰자(현 도문시 월청향 간평)로 철거하여 뒤따라온 일본군과 강을 사이두고 접전했다. 조선 남양에 주재해있던 일본군이 소식을 듣고 뒤따라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반일부대는 신속히 철거했다. 일본군은 이를 계기로 연변지구의 조선족반일무장부대를 “소탕”하려고 “월강추격대대”를 조직하여 6월 6일 두만강을 건너게 하였다.
“월강추격대대”는 오호툰, 고려촌 등지에서 반일부대와 접전하며 봉오동까지 쳐들어왔다. 봉오동에 있던 홍범도와 최명록은 마을사람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킨 후 반일부대 300여명을 네개 중대로 나누어 동, 서, 남, 북의 유리한 지세에 매복시켰다. 점심쯤 되여 일본군의 주력부대가 매복권에 들어오자 총지휘를 맡은 홍범도는 공격신호를 보냈다. 3시간좌우의 치렬한 교전끝에 일본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시기를 놓칠세라 동산에 매복해있던 강상모중대가 맹공격을 퍼부어 일본군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봉오동전투에서 반일부대는 일본군 근 100여명을 소멸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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