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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반일군중운동은 일본제국주의한테 인민군중의 강대한 위력을 과시한 동시에 광범한 군중들을 단련시켰다. 반동 군경들의 피비린 진압은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거세게 했고 민족의 해방을 실현하자면 반드시 무기를 들고 반일무장투쟁을 벌려야 한다는것을 인식하게 했다. 이로부터 연변의 반일투쟁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 연변의 각 지방마다 반일무장단체가 건립되였다.
간도국민회는 1919년 3월 25일에 건립, 본부를 연길현 춘향향 하마탕(현재는 왕청현에 속함)에 두고 구춘선이 회장을 담임했다. 기독교, 천주교, 공교회, 불교 등 교도들과 일반민중들이 분분히 간도국민회에 참가했다. 국민회는 반일무장투쟁의 형세에 적응하기 위해 특별히 군무위원회를 건립, 1920년초에 국민회군을 건립하고 안무위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북로군정서의 기원은 1911년 3월 대종교신도조직의 중광단이다. 1919년 4월, 중광단은 공교회와 련합하여 정의단을 건립했다. 1919년 8월, 자신들이 갖고있던 무장을 토대로 군정회를 건립, 10월에 군정부로 개편, 12월에 북로군정서로 개칭했다. 군정서는 총재부와 사령부로 구성, 서일이 총재를 맡고 김좌진이 사령관을 맡았다.
대한독립군은 저명한 조선의병 장령 홍범도가 3.13운동후 로씨야 연해주에서 건립한 반일무장단체이며 1919년 9월초, 부대를 이끌고 연변에 들어왔다. 이외에도 최명록(최진동이라고도 불렀음)이 이끈 군무도독부, 김규면이 이끈 신민단, 김성극이 이끈 광복단, 방우룡이 이끈 의민단 등 무장단체가 있었다.
반일투쟁형세의 발전으로 연변 각지에 분산되였던 반일무장투쟁단체는 련합하여 투쟁하는 길을 걷게 되였고 일본침략자를 호되게 타격하는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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