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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계몽교육운동의 심입발전과 반일단체의 흥기와 더불어 1918년 한차례 대규모적인 반일군중운동이 온양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군중성운동은 1917년 로씨야 10월혁명의 승리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결속 및 조선 국내 ”3﹒1”운동의 폭발 등 일련의 중대한 사건의 영향을 받았으며 1919년 3월 13일 룡정에서 일어난 반일시위운동을 발단으로 연변 각지에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13일, 날도 밝기전에 룡정, 연길, 주변의 여러 향, 촌의 반일군중과 학생들이 사면팔방에서 밀물처럼 룡정에 모여들었다. 오전 11시경, 3만여명의 군중들이 집회장소에 모였다.
점심무렵, 천주교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대회가 시작되였다. 대회에서는 “전체 간도거주조선족”의 명의로 씌여진 "독립선언서포고문"과 "공약3장"을 선독함과 동시에 전단지를 배포하였다. 집회에 이어 반일시위행진을 거행하였다. 명동, 정동중학교 사생들로 무어진 300여명의 대오는 선두에 서서 “일본침략을 반대하자”, ”친일주구를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웨치면서 일본총령사관으로 밀고들어갔다. 연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오에 가세했다. 시위대오가 지방군경들의 제지를 받자 분노한 군중들은 적수공권으로 반동군경들과 박투하였다. 경황실색한 군경들은 행진대오를 향해 총을 란발하기 시작, 맨 앞장에 있던 공덕흡, 박문호 등 많은 시위군중들이 총에 맞아 피못속에 쓰러졌다. 당장에서 13명이 희생되고 48명이 부상당하였으며 94명이 붙잡혔다.
룡정의 “3.13”반일시위를 계기로 연변지구에는 반일운동이 노도같이 일어났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3월 13일부터 4월말까지 연변 각지에서는 도합 47차의 반일집회와 시위행진을 거행했는데 참가인수는 8만 6670명에 달했다. 룡정 ”3.13”반일시위운동을 시작으로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반일시위운동은 시간상 규모상 모두 연변항일투쟁사상의 한차례 장거로 기록되였다. ”3.13”항일운동은 일본침략자들의 기염을 여지없이 꺾어놓았고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항일투지를 크게 고무하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의 진일보 발전을 유력하게 추진하였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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