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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20세기초, 전국 각지에서 신학운동이 흥기할 때 연변지구에서도 북산학당 등 신식학교가 나타나기 시작, 1906년, 조선족 유지인사 리상설,리동녕, 려준 등이 룡정에서 서전서숙을 세웠다. 서숙에는 력사 ,지리, 수학, 법학, 정치학, 한문 등 과목이 개설되였으며 서숙의 교육내용에는 신문화와 신사상뿐만아니라 반일교육, 반일인재양성도 들어있었다. 서전서숙에 이어 연변 각지에서 사립학교를 세우고 근대교육을 발전시키며 반일인재를 양성하는 고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07년 3월 ,조선족반일지사 리동춘이 광제위(지금의 룡정시개산툰진 광소촌)에서 양정학당을 세우고 근대 신학교육을 전수하였다. 그해 가을, 오상근, 리병휘, 남성우 등이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지금의 연길시소영진 민흥촌)에 창동서숙을 세웠으며 1908년 4월, 김약연, 박무림 등이 화룡현 달래재 룡암동(지금의 룡정시 지신진 명동촌)에 명동서숙을 세웠다. 그해 10월, 강백규, 강희연, 유한풍 등이 화룡현 개산툰 자동(지금은 룡정시에 속함)에 정동서숙을 세웠고 1911년 3월, 리동휘, 리동춘, 김립 등이 국자가 동쪽교외 소영자에 길동학당을 세웠다.
1910년 3월, 변무독판공서 교섭과에서 번역을 맡고있던 리동춘 등이 연길에 사회교육단체 인 “간민교육회”을 설립하고 “월보”를 발간하여 신학을 선전하고 사립학교를 세우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12월의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연변지구의 연길, 화룡, 왕청, 훈춘 4개 현에서는 도합 156개의 조선족 사립학교를 세웠는데 학생수가 3836명에 달했다.
이 시기에 종교단체들도 학교를 세우는 바람을 일으켰는데 1913년, 학교는 42개에 달했으며 상기의 학교와 교회들에서는 반일사상을 선전하였다. 1926년말의 통계에 의하면 연길, 화룡, 왕청, 훈춘 4개 현의 종교단체가 세운 학교는 모두 74개, 학생수는 4718명에 달했다.
20세기초에 흥기한 연변반일계몽운동은 연변 각 민족인민들의 반일애국열정을 격앙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인민군중들의 념원을 증강시켰으며 후날의 대규모적인 군중성 반일투쟁에 든든한 사상토대를 닦아놓았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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