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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8개국 련합군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자 짜리로씨야는 기회를 타 동북침점에 나섰다. 훈춘의 동서포대 중국장병들은 짜리로씨야침략군의 진공에 맞서 반격에 나섰으며 령토수호 위해 영용한 투쟁을 벌렸다.
동서포대는 훈춘성에서 4-5킬로메터 떨어진 훈춘시 남쪽 중로린접구에 위치해있으며 중로 두 나라 통로인 장령자와 10킬로메터 상거해있다. 두 포대는 1881년 북양사대신 오대징과 훈춘 부도통 이크탕아가 훈춘에서 변경사무를 처리할 때 지은것이다.
1900년 6월, 짜리로씨야침략군이 훈춘의 권하, 흑정자로 덮쳐들자 중국수비군은 저항에 나섰지만 적군의 진공을 막아낼길 없어 물러섰다. 7월 6일, 총사령직을 맡은 짜리 니꼴라이2세는 5개 군단 17만 7000여명병력을 동원하여 6갈래 길로 나뉘어 중국 동북을 침략했다.
7월 30일 이른 아침, 로씨야군이 장령자를 넘어 훈춘에 진입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포대의 장병들은 신속히 포대에 올라 탄약을 재우고 적군을 향해 대포를 쏘았다. 경황실색한 로씨야군은 일부 주검을 내버려둔채 남쪽 연자산밑으로 꼬리빳빳이 도망쳤다. 로씨야군 중좌 보스촌니꼬브가 새롭게 력량을 무어가지고 반격에 나서려 하자 서포대의 중국장병들은 로씨야병에 숨돌릴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지속적인 맹포격을 했다. 동포대의 대포도 울부짓기 시작했다. 동서포대 량측에 진을 치고 앉은 중국보병도 전투에 가담하여 로씨야군 포병영이 관목림속에 숨어 얼굴을 내밀기 두렵게 했다. 쌍방의 교전과정에서 동포대의 포구가 벙어리가 되자 중국군대는 부득불 포대를 철수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로씨야군은 보병을 동원하여 텅빈 포대를 점령했다.
다른 한 방면으로 로씨야군은 훈춘하를 건너 훈춘성을 공략했다. 전투는 저녁 8시까지 지속되였는데 그번 전투에서 로씨야병은 200여명이나 격살당했고 “보스촌니꼬브 중좌도 진지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꾸레스트꼬브 소위도 중상을 입었다.”
| 래원: 연변일보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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