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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향수
2008년 09월 12일 08:46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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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추석은 갓 시집간 새각시가 친정을 찾아오듯 예고도 없이 부랴부랴 찾아온것만 같았다. 맹위치던 한여름 무더위에 시달려서 부얼부얼해진 몸을 추스르기도전에 추석이 왔다. 벌써 추석이 왔나.

황금전설이 파도치는 들녘은 온통 누른색으로 옷을 바꾸고 기우는 저녁 해빛속에 무수한 억새풀이 하얗게 춤춘다. 곡식을 농익게 하는 풍성한 해빛이 들녘에 다냥하게 내려앉아 재글재글 끓어번지며 이른 추정을 자아낸다. 전야 어디 가나 소슬한 바람 한자락속에는 곡식이 익는 매틀한 냄새가 후각을 진동했고 풍요를 기약하는 풋풋한 초가을의 성채가 곳곳에서 피여나고있었다.

그래서 이때쯤은 공연히 시골추억과 전원일기 한자락쯤을 주절주절 펼쳐보여 도시의 가볍도록 바싹 마른 하늘아래 인파에 부대끼고 세멘트갑속에서 시달려 후줄근해진 빈가슴을 한번쯤이라도 풍성해싶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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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이 그리웠던 어린 시기 추석풍경은 추석바심(시골에서는 추석바숨이라 했다)과 소고기장졸임이 첫페지로 나타난다. 우리 세대들은 배가허천 들려 쓰라렸던 보리고개가 뭔지를 가슴으로 알지 못했지만 그 시기 엄마의 주름잡힌 얼굴에는 그늘이 졌고 빡빡 쌀독밑굽을 긁던 바가지의 빈한한 소음만은 잊을수 없다. 무릎아래에 터울이 잦은 숱한 자식을 거느린 부모님들의 마음이야 오죽 아팠을가. 통옥수수를 가루내서 가마밑굽에 척척 붙여서 만들었던 옥수수떡(시골에서는 궈테라고 했음)은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에는 껍쩍한 기운만이 감돌면서 식겁하게 만든다. 그래서 막연하게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계절을 그렸고 추석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생산대시절 우리 마을에서는 그냥 추석바심을 했다. 바심이란 타작을 이르는 말이고 풋바심이라고도 한다. 이 추석바심은 보통 물기가 질척거리는 논판에서 가을하는데 이 시기에는 남방의 가을걷이처럼 가을하는 즉석에서 마르지도 않은 벼단을 커다랗게 묶고 등짐으로 나른다. 그리고는 대충 만든 탈곡장에서 탈곡하는데 대개는 겉곡을 나누어주거나 조건이 되면 집체로 밯아서 나누어주는데 매달 인당 몇십근이다.눈을 올롱이 뜨고 그 쌀밥을 기다리던 그 나날이 그리도 흥분이 되던지. 하기에 "싸래기"라 불리던 등외품 쌀끄트머리로 만든 송편에는 거친 추억 한편도 없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음식품록 1호에 버젓이 오르는 송편에 대한 추억이 없다는게 가장 큰 유감으로 남았다. 입안에 껄끄럽게 달라붙어서 껍쩍하기만 하던 그 송편의 맛은 통쌀로 만들었을 때에야 맛있는줄 그 시절을 지난 썩 후에야 알았다. 당시 "예베"라 불리던 한족들의 월병은 엄두도 못 냈다.

추석풍경에서 클라이막스는 단연히 강변소잡이다. 해질머리와 려명전야의 한기가 찬 이슬이거나 서리가 되여 내리는 추석전야지만 한낮의 해빛은 여름처럼 당양하다. 이때면 남대천의 강변옆에서는 생산대마다(옛날 집체화시기의 말단 생산단위) 소잡이를 하는데 축력이 생산력으로 통하던 원시적인 농경시기라 대개 호랑이가 사흘 씹어도 못다 씹을 늙다리 얼룩배기 황소거나 너무 늙어 다리를 후둘거리며 새끼낳이를 할수 없는 약체 암소가 추석제물로 되였다. 어느 시골에나 백정일에 능한 남정네들이 득실거렸으니 우리 생산대에는 살구나무집 봉숙이네 아버지와 왕청집 천규가 백정일에는 투구 쓰고 장도 비껴들고 늘 앞장섰다.

인간들의 동정심리가 발동되기에 족할만한 외마디 신음을 흘리면서 소가 숨이 넘어갈쯤에는 가죽을 쳐내고 몸뚱이를 분리한다. 한 생산대에 보통 30~40호쯤 되고 식구가 대개 100여명이 훨씬넘어 식구당 차례지는 물량은 야비하게 적었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는 한끼를 배불리 먹을수 있고 고추를 넣고 장졸임할수 있다는 기대감에 포만했다. 부모들이 모두 밭으로 나간지라 대개는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이 헌 소래짝이거나 버들광주리를 갖고 나가 소고기를 받아온다. 당시의 분배법은 아주 원시적이라 할만한 분배였는데 먼저 뼈다귀로 몫을 나누어놓는다. (이런 분배법을 시골에서는 기지를 친다고 했다)고기타러 나가기전 아침이면 어머니가 "뼈다귀에 괴기가(살점) 많이 붙은 척추뼈거나 갈비뼈만 가져오거라 다리갱이 뼈는 고기가 없을게다"하고 신신당부해서 우리 조무래기들은 벌써부터 어느 무지의 뼈다귀가 살점이 많이 붙었나 살펴보다가 사철 코물을 질척거리는 늙은 회계가 아버지의 함자를 호명하면 살점이 많은 뼈다귀부터 냉큼 가로챘다. 다음은 식구수를 부르는데 저울을 쥔 원대장은 꼭 "여덟식구라…뭔 잔밥들이 이리 많다냐" 하고 게두덜거린다. 슬하에 자식 하나 없어 동생의 자식을 부양하는 원대장은 늘 부러움인지 원망인지 알수 없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왕년에 어느 시기에 대장 1년 했다고 원대장으로 불린다. 바싹 말라서 새바람 한자락이 불면 검불같이 날려갈 약체질이지만 황소같은 봉숙이네 아버지와 함께 소 생간을 왕소금에 찍어 훌적훌적 삼켰고 똥이 꼭꼭 배긴 소처녑을 남대천 물에 둬번 휘적휘적 빨래같이 대충 헹구고는 생것 그대로 넙적넙적 잘도 먹군 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남정네들이 생식을 잘하거나 술을 잘 마시는것을 일컬어서 대개 "줴긴다. 답쌔긴다"라는 아주 투박한 표현을 썼다.

그 소고기를 헌 광주리에 담아들고 집으로 달음박질할무렵은 피빛 노을이 지는 서편 하늘밑으로 감자알 같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뻔뻔돌이산"아래로 추석의 찬바람이 후르르 떨어지면서 가난한 소년을 희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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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족적을 따라가보면 온통 극빈의 루적이고 가슴이 아프도록 저린 빈한만이 켜켜이 붙은 추억만이 질펀하다. 그 빈한이 있어서 풍요를 알게 되고 자식에게 남길 멋진 가훈이 있게 되고 풋풋한 미래를 약속할줄 알게 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선의 기아를 조부에게 남겼고 조부님은 아버지에게 보리고개의 껄떡거림을, 아버지는 나에게 3년 재해시기의 졸뱅이떡, 개떡의 사연을 남겼다. 우리 민족은 대대손손 이런 옛말 같은 가훈을 남겼고 그 아픔의 가훈을 색이 누렇게 바래지고 찢어져서 너널거리는 창호지밑에서 아프게 들어야 할 운명선을 여윈 등짝에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가훈들은 아픔만이 아니였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놈에게 추석의 그 한쪼각의 풍경과 아름다운 동년의 한자락을 주절거릴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나는 배가 불렀고 그 사연을 칼라가 아닌 흑백의 드라마로 련상할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이런 생활의 루적들은 매 개인과 민족집단의 전성기를 구가할수 있는 밑거름이 될수 있고 민족집단속에 속한 인생들을 아름답게 장식할수도 있다는 사실은 늦게라도 깨달을수 있어 좋았다.

지금 보면 비릿하기만 하고 아무맛도 없는 생간 한쪼각, 먹기전에 소똥 구린 냄새만이 진동하는 소처녑, 물맛만 진동하는 쌀밥의 사연은 향수로 남았다. 이제 시골에는 사철 코물을 질척거리던 늙은 회계, 백정일에 능했던 봉숙이아버지, 왕청집 천규, 가랑잎처럼 바싹 말랐던 원대장도 없다. 하지만 주어진 자기의 인생을 진실하게 살아온 사람들만이 출현한 추석의 풍경은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으로 남아 존재를 호소한다.

정지용의 "향수"가 푸르게 배여 있던 시골과 추석의 일기는 우리 민족들의 삶의 흔적이였다는 점에서 더 여운을 남기나본다.

넓은 벌동쪽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글/사진 최국철기자)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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