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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면사진리재민들의 마음속에
<지진재해구조 일선에서의 조선족들(6)>
2008년 07월 07일 10:52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6월 13일, 연변대학의료팀은 면사진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

연변대학병원의료팀으로 하여 면사진 사람들은 연변이란 이 곳을 알았고 연변에 조선족이 살고있다는것을 알았으며 우호주인 연변주와 아바주간의 우호적관계가 더욱 두터워졌다.

문천지진이 발생한 후 연변대학병원 의료팀은 김해원장의 인솔하에 제5진 의료팀으로 28일 연길을 떠나 24일동안 문천 면사진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그들의 다함없는 봉사정신은 당지 리재민들의 크나큰 믿음을 얻었고 그들과 깊은 감정을 쌓아놓았으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재건설을 위해 분투하도록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 악렬한 환경

연변대학의료팀은 장춘에 있는 5대 병원에 이어 5번째로 장춘 제1자동차그룹종업원병원과 함께 의료원조에 나선 지방병원이자 제1원장이 직접 인솔하기로서는 유일한 의료팀이다.

면사진에 도착했을 때는 문천 8급 지진이 발생해서 20일이 다 된 날이다. 허나 그때까지도 하늘 전체가 먼지에 뒤덮인듯 뿌옇게 보였고 계속 여진이 일어났다.

면사진은 문천현 현성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동부는 도강언과 잇닿아있고 남부는 은행향과 린접하고있다. 강족, 장족이 많이 살고있는데 문천지진에서 엄중한 피해를 입었다.

도처에 텐트를 쳐놓았고 일부 리재민들은 텐트가 없어 산허리에 널빤지로 대충 바람막이나 하고 살고있었다.

하루에도 4,5차례씩 여진이 일어나고 쿵, 와그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떨어지고 산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갓 도착한 10일동안 의료팀은 물고생을 많이 했다. 강물이 줄줄 흐르지만 오염되였을가봐 사용할수가 없는 상황이다.

대원들은 일회용 젖은 수건으로 얼굴이나 닦을 정도이고 이를 닦지 못할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13명 의료팀중 11명이 조선족이라 식사때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가져간 김치가 너무 시여 먹을수 없게 되였고 된장도 없어 된장국도 제대로 끓여 먹지 못하는 신세였다.

다행히 당지 군중들이 남새를 가져오기도 하여 나중에는 김치를 담그어놓고 먹을수는 있었다.

전염과 한학길주임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환자를 보고 나면 몸이 피곤하여 잠을 자야 하는데 텐트안이 습하고 벼룩이 어찌나 많은지 밤잠을 이룰수 없었다”.

30일동안 대원들마다 체중이 내려갔는데 김해원장은 5킬로그람이 더 되게 내려갔다 한다.

사람이 많고 변소가 적어 변소가는 일이 큰 근심거리로 되였다. 당지 정부는 리재민안치소 하나에 남녀 변소를 하나 만들어놓았는데 의료팀 주둔지역의 5000여명이 변소 3개를 사용했다. 하여 아침이면 용변을 보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는데 급한 사람은 옥수수밭이나 산에 올라갈수밖에 없었다.

■ 가슴을 조이는 기다림

면사진에 있는 24일동안 연변대학의료팀은 도합 4800여명 환자를 진료해주고 연인수로 800여명을 순회진료했다.

의료팀의 구호지역에는 8000여명 되는 군중, 무장경찰부대, 특수부대 장병들이 있었는데 의료팀은 이들에 대한 의료위생을 책임졌다.

연변대학의료팀이 면사진에 주둔하기 앞서 공군총병원의 의료팀이 두번 다녀간 후로 그 곳엔 의료소가 없었다.

의료팀은 내과, 외과, 부산과, 피부과, 소아과 등 부서를 설치하고 면사진 강봉촌에 “텐트종합병원”을 앉혔다. 부서를 구전히 설치하고 성심성의껏 의료봉사를 한데서 멀리 있는 환자들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6월 중순 련이어 내린 비로 산사태 발생위험이 있어 산에서 살던 리재민들이 모여들기 시작, 의료팀 주둔지역에 리재민들만 5000여명, 거기다 도로수리 등에 나선 무장경찰, 특수부대 장병들까지 합쳐 8000여명이 있었다. 의무일군들은 하루 평균 15시간씩 일하면서 아무때든 찾아오는 환자를 반겨맞고 즉시 치료해주어 당지 군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면사진은 산간지대인데다 하루에도 몇번씩 여진이 발생하고 산사태가 늘 발생하였다. 의료봉사기간 제일 위험하고 제일 마음을 조이는 일이 순회진료였다.

리재민들중 당지 정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산허리에다 간이집을 지어놓고 사는 이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목적지에 이르면 벌써 11시가 다 되고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이 다 되는데 산사태를 만나면 더 늦어졌다.

어느날, 전염과 한학길주임의사와 전기치료과 강봉림이 산에서 살고있는 촌민을 찾아 치료하다 산사태를 만나 하마트면 큰 사고를 빚을번 했으며 리찬과 신재현이 현성에 남새 사러 갔다가 여진과 산사태를 만났는데 눈치빠른 운전기사덕에 위험에서 벗어난 일도 있었다.

한학길은 이런 말을 했다. “어느날 산허리에서 살고있는 촌민의 병을 보려 하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산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리면서 몸도 같이 부르르 떨리였습니다. 순간 나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앞으로 두발자국이 나가지 않았겠습니까”. 나중에야 안것인데 그때 그가 겪었던 지진이 5.4급이라 했다.

순회진료나 볼 일이 있어서 대원들을 타지역에 보냈을 때마다 하루 종일 불안해 하는 김해원장, 그는 대원들이 돌아와서야 한시름 놓고 자리에 눕는다고 대원들은 말한다.

■ 고향과의 련락

의료팀이 면사진에 갔을 때는 통신련락이 회복되였을 때다. 하지만 집식구들에게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도 두시간후에야 받을수 있었고 전화를 한번 걸려면 100번을 걸어야 겨우 한번쯤 통화할수 있었다 한다.

대부분 대원들이 메시지로 문안을 전하군 했는데 그것도 이동통신 휴대전화만이 보낼수 있었다.

한학길과 김찬의 휴대전화 통신망은 련통이였다. 자기네들은 집에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는 받지 못한 상황이였다. 소식을 기다리다 못해 안달아난 그들의 가족들은 다른 의무일군들을 통해서야 그들의 소식을 알수 있었다.

할수 없이 이들 둘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문천현에 가 이동통신카드를 사왔다.

“집을 떠나서 한달밖에 안되지만 13살 되는 애가 많이 성장한것 같아 기뻤고 남편 또한 의료팀에 대한 여러 매체들의 보도를 모아놓고 내 손에 쥐여주더라구요.” 보통외과 간호장 정분선은 눈시울을 적시면서 “이번 일을 통해 앞으로 어떤 곤난이든 모두 이겨낼수 있는 신심이 생겼다”고 떳떳하게 말했다(리준섭 홍옥).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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