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50세), 리향란(49세) 부부는 1988년 9월 9일, 모진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태여난지 두달밖에 안되는 아들을 업고 달랑 100원을 들고 룡정 덕신향에서 연길시 신흥가두로 들어와서 단칸방을 세맡았다. 그때 할수 있는 일이란 채소장사뿐이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길시 골목을 누비면서 싸구려를 불렀다. 끼니도 제때에 먹을수 없었고 목이 쉴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년만에 서시장에 채소가게를 차릴수 있게 되였다. 매일 아침 일찍 남편은 채소를 도매하고 안해는 아들을 매대밑에 눕혀놓고 알뜰봉사로 채소를 팔았다. 차차 단골손님이 늘자 수입도 짭짤하였으며 2년후에는 과일장사를 시작할수 있었다. 이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집 한채, 짐차 한대를 마련하였다. 후에는 또 슈퍼를 경영하였다.
그러나 사업은 순조로운것만 아니였다. 담이 커지자 약방을 꾸렸는데 약품에 대한 지식이 결핍하고 경영경험이 없었던탓으로 10여만원의 손해를 보고말았다. 아글타글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보냈다. 아들이 대학교에 진학하자 부득불 도문시 량수촌에 가 삯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으로 아들의 공부뒤바라지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였다.
1년후에 다시 연길에 들어와서 밀가루만두업을 벌렸다. 아침 일찍 수산물시장,저녁이면 북대야시장에 가서 고기소만두, 채소소만두, 영양만두 등 여러가지 밀가루만두를 팔았는데 알뜰한 솜씨와 특이한 맛으로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매일 영업액이 600원을 넘었다.
그들 부부는 이렇게 불철주야 20여년 동안 부지런히 일한 보람으로 현재 집 세채, 차 한대 등 고정재산이 20여만원에 달한다. 생활이 펴이자 술중독증 환자인 시아버지를 모셔왔고 시동생을 보살피고있으며 아들의 공부뒤바라지도 하고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객들이 즐겨사는 만두를 만들 때면 그 피곤이 깡그리 사라지며 날마다 저금액이 올라갈 때면 행복한 미소가 피여나고있다. 그들 부부는 현재 2명의 일군까지 둔 연길시에서 유일한 조선족밀가루만두업체로 나날이 커가고있다(통신원 리성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