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은 참으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고장입니다" 연길시 공원시장에서 소상품매대 12개를 경영하는 장우(한족, 26세)씨가 하는 말이다.
길림시 영길현 시골마을에서 초중1학년을 다니던 장우씨가 경제곤난으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연길로 나온것이 열여섯살나던 1999년, 4년간 음식점들에서 일하다가 한고향 사람의 소개로 공원시장 소상품매대를 구입한것이 2003년, 8천원으로 시작한 장사규모가 불과 6년만에 12배로 불어 인젠 남들이 공인하는 부자가 되였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때 공원시장의 매대업주들은 거의 전부가 조선족이여서 고객유치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영업액은 늘 남들의 꽁무니에 처졌다고 한다. 고객들이 수요하는 상품의 품종을 많이 늘이는 한편 가격조절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면서 장사를 열심히 하였다. 마침 조선족들의 출국과 연해대도시진출로 고객이 줄어들고 영업액이 하강하자 많은 조선족업주들은 매대를 세주거나 아예 팔아버리기 시작하였다. 고객이 줄어든다 해도 그만큼 혼자서 여러 매대를 경영하면 리윤도 그만큼 오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하나둘 조선족업주들의 손에서 넘겨받은 매대가 11개, 명실공히 공원시장 소상품 대업주로 되였다.
"조선족분들은 참으로 좋은 분들입니다. 시원시원하고 정을 중히 여기고 통이 크지요. 매대를 처분할 때 옴니암니 따지지 않고 그냥 시원스럽게 눅거리로 처분해주더군요" 장우씨의 말을 들어보면 장사가 잘 안된다고 매대를 그만두는 조선족업주들은 그냥 눅은 값에 매대를 처분했고 미련없이 떠나더란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버니깐 그랬겠지요" 기자의 말에 장우씨는 빙그레 웃는다.
한달에 순수입이 얼마나 되는가는 물음에 그냥 밥을 먹을만하다고 대답하는 장우씨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이전에 장사가 잘될때에는 매대 하나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한개 가정생활을 넉근히 조직할수 있었지요. 지금은 물론 그때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그만큼 경영범위와 수량이 늘어났으니까 수입도 배로 뛰겠지요뭐" 자기자랑을 늘어놓기 싫어하는 장우씨가 시시콜콜 장사비결이나 수입정황을 말해주지 않을것은 불보듯 뻔했다. 맞은켠에서 소식품매대를 경영하는 조선족업주들을 만나 장우씨에 대해서 알아봤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지만 장사만은 참 잘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들이 잘 안된다는 시장매대에 거의 빈손으로 입주해서 5년사이에 진달래광장부근에 18만원짜리 아파트를 장만하고 장가까지 들었단다. 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매대앞에 쭈크리고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열심히 일하는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젊은이란다. "조선족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조선족아줌마의 칭찬이다.
개혁개방이후 연변조선족사회의 구도변화가 아주 큰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해외와 연해대도시진출로 연변의 조선족인구가 급격히 감소되였는데 그로 인한 조선족사회의 변화가 아주 크다. 조선족이 서있어야 할 자리에 한족이 서있는 정황은 매우 심각하다. 농촌의 조선족마을에서 한족이 땅을 도맡아 톡톡한 수입을 올리는가 하면 도시의 조선족 전통 상가나 음식점에서 한족이 금을 캐는 일을 너무나 흔하게 볼수 있다.
더 빨리 벌고 더 많이 벌어 더 잘 사는 지름길을 많은 조선족들은 외국에 가서 찾지만 장우씨와 같은 타민족은 살기 좋고 인심 좋은 연변땅에서 그 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