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상방—봉건사회와 함께 사라져
복건상방의 흥기는 처음부터 봉건왕조의 관변측 조공무역과 해상무역 금지정책과 대립되는것이였다. 이들은 밀무역으로 상업을 시작했고 해상무역이 금지됐을 때는 해적으로 탈바꿈했기때문에 해적과 상인이라는 이중성격을 띠고있었다. 이들은 연해지역주민을 리용해 많은 거점을 두었고 이런 거점을 리용해 밀무역을 진행했다. 명,청 시기 국내외 무역을 결합시켜 각종 형식의 무역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했으며 중국봉건사회 말기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지역상방으로 군림했다.
봉건사회의 멸망과 함께 복건상방은 해외, 대만 등지에서 다시 새로운 사업령역을 개척했다.
광동상인—근현대에 흥성
광동상인의 전성기는 근, 현대이다.
근대에 외국경제세력의 류입과 중국의 근현대로의 발전 등 변화속에 휘상(徽商) 등 상인들이 여전히 전통을 고집하는데 반해 광동상인들은 제품류통을 확대하고 상품경제를 발전시켰으며 해외이민렬과 더불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광동상인은 동남아, 향항 등 지역을 발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세기 70년대 중국남부, 향항 및 동남아지역의 경제발달지역으로 떠올랐다. 근대 광동상인은 옛 광동상인의 모험개척, 독립진취적인 상업정신을 이어받았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국제무역을 진행하며 오픈마인드까지 갖췄다. 근대 광동상인에게서는 전통문화와 근대상업문화의 융합을 찾아볼수 있으며 이런 문화의 발전과 조화가 있었기때문에 기타 상방이 쇠퇴한후에도 광동상방은 발전하고 흥성할수 있었다.
섬서상방—다양한 분야에서
명나라때 산서와 섬서 상방들은 휘상과 기타 상인들에 대응하기 위해 이웃해 있는 지리적리점을 리용해 똘똘 뭉쳤는데 이들을 서상(西商) 혹은 산섬상인(山陕商人)이라 불렀다.
시상은 명나라 초기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는데 이들은 소금무역을 통해 큰 리윤을 얻었다. 그러나 막대한 리득앞에 내부 분열이 생기며 두 지역 상인의 합작은 그만 깨지고말았다. 그후 섬서상방은 사천을 거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섬서상인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초이다. 섬서상인은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인 발전을 해왔는데 소금무역으로 유명할뿐만아니라 직물, 차잎, 피혁 등을 통해 재물을 축적해나갔다.
상업자본의 사용에서 섬서상방은 옛날방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편이여서 수공업투자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고 이는 강남지역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수공업에 뛰여들었던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산동상인—충실하고 착실하게
산동상인은 소박하고 시원시원하며 성실하다. 이러한 성격특성상 기타 지역 상인들에 비해 이들이 걸어온 길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먼 거리를 넘나들며 장사를 하거나 본 지방 장사 등 두가지 경영방식이 주를 이루며 신용과 상도, 규범화된 상업행위를 중시했다.
산동상인의 재부축적방식은 그다지 빼어난데가 없었지만 이들의 경험과 경영방식은 충실하고 착실했다.
녕파상인—실용적인 경영방식
녕파상인은 중국상인가운데서 비교적 늦게 부상한 신예로 혈연관계와 고향사람이라는 뉴대관계로 련결된 상업집단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활약했다.
녕파상인은 타지역, 해외진출력사가 오랜편이다. 아편전쟁이후 녕파상인가운데서 상업자본가가 출현, 상업과 금융을 결합시켜 규모와 영향력을 확대시켰으며 중국의 유명한 상방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였다. 이들은 약재, 의류, 해물, 보험 등 업에서 유명했다. 녕파상인은 전통업종을 기반으로 지주업종경영을 뒤받침으로 신흥업종경영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 실용적인 경영방법으로 동시에 여러가지 업종을 경영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진상(晋商)—시장 종횡무진
중국 력사상 10대 상방중 가장 일찍 떠오른것이 바로 산서성상방이다. 력사에서 산서상인을 진상이라고 불렀다. 진상은 명, 청시대 중국에서 가장 큰 상인집단이였으며 500여년 동안 상업계를 종횡무진하며 중국뿐만아니라 일본, 유럽 등에 무수한 발자취를 남기며 베니스상인이나 유태인상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막강한 실력을 자랑했다.
진상의 력사를 거슬러보면 주나라 진당(晋唐)시기에 시작됐으나 명대에 부상했고 청나라때 번성했다. 청나라 중엽, 상업에서 금융업으로 발전했고 함동(咸同,1851—1874)시기 중국의 환(汇兑)업무를 거의 수중에 틀어쥐고있어 유명한 금융상업군단으로 발전했다. 이같은 성공의 요인은 진상의 끈끈한 뉴대관계와 결집력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전통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는데 바로 똑똑한 자식에게 장사를 가르치고 조금 못한 자식에게는 과거공부를 시키는것이다. 이런 전통때문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그만두고 상업에 종사한 사람까지 생겨났다.
진상의 경영방식은 첫손가락에 꼽힐만큼 뛰여났다. 오늘날 주식제, 자본운영 등 현대경영벙식은 일찍 그들에게서도 싹텄던것이다. 이들은 비단 상인일뿐만아니라 학식이 있는 사람들이였고 상업에 있어서도 지혜를 발휘했으며 가정에서도 교육을 중시했다.
휘상(徽商)—뛰여난 경영능력
휘상은 진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방이다. 휘상은 거대한 자본력과 넓은 활동령역을 가지고 다양한 업종에 종사해왔으며 다른 상인들과 비교가 안될만큼 뛰여난 경영능력을 자랑하며 중국상업계에서 수백년간 군림해왔다. 휘주인들은 대부분 장사에 능했으며 경제형세에 대한 분석과 판단력이 뛰여났다. 휘주는 남송 대학자 주희(朱熹)의 고향이였던 관계로 이들의 상도관념에도 짙은 유가사상이 깔려있었다. 이들은 “성실, 신용, 의리”를 상업도덕의 근본으로 생각하고있어 상업계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휘상은 시장의 경제운영규칙을 알고있으며 시장변화에 따르는 능력을 겸비하고있다. 이들 몸에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공존해있으며 사람됨이 첫째, 상업이 둘째라는 기본원칙을 갖고있다. 이들은 지식, 도덕, 모략이 있으며 돈을 벌줄 아는 상인들이다.
룡유상방(龙游商帮)—모험정신과 포용력
휘상과 진상이 상계에서 지위다툼을 벌릴 때 절강 중서남부에서는 룡유상방이 영향력을 확대하며 부상하기 시작했다. 룡유상방의 상인들중에는 룡유현(龙游县)상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장사수완이 뛰여났다. 이리하여 이들집단을 룡유상방이라 부르게 된것이다.
이들은 몸은 편벽한 곳에 있을지라도 열린 마음가짐으로 앞선 사고방식을 갖고있었다. 투자에서 남보다 먼저 경험할줄 아는 모험정신과 넉넉한 포용력을 갖고있었다. 명청시기 많은 상인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토지를 사들이거나 전당포를 경영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얻었다. 그러나 룡유상인들은 수공업생산과 광산업이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일수 있을것이라는 판단으로 제지업과 광산업에 뛰여들었고 직접 제품생산에 참여하기도 해 상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바뀌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또 타지역 상인들의 진입에도 너그러웠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이들을 본지방 상방에 흡수함으로써 룡유상방을 발전시켰다.
룡유상방이 지역에서, 그것도 관청의 후원이나 종족세력의 배경도 없이 수많은 상방가운데서 부상하게 된데는 이들의 개척모험정신과 넓은 포옹력때문이였다.
동정상방(洞庭商帮)—뛰여난 통찰력
룡유상방의 흥기와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상방이 중국의 동정호를 거점으로 흥성하기 시작했다. 동정상방은 시기를 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제때에 기회를 잡을줄 아는 지혜를 가진 상방이였다. 이들은 소금, 전당포경영을 위주로 하는 휘상, 진상과의 시장쟁탈에 나선것이 아니라 동정호의 자연조건을 리용해 량곡과 비단의 운송에 나섰다.
아편전쟁후 이들은 금융중심 상해에서 은행 등 금융업과 비단, 무명실 등 실업을 개척했다. 새로운 력사배경에서 예전과는 다른 상업의 길을 선택했으며 이에 따라 상업자본이 공업자본으로 발전하는 길을 열게 되였다.
동정상인들은 구체적인 경영방법을 중시했는데 이들의 방법은 현대적인 경영법에도 부합되는것들이 많다. 이들은 시장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시세를 예측했으며 시장가격변화와 상품교환의 상황변화에 따라 자신들의 경영전술을 수시로 변화시켰다.
강서상방(江西商帮)—영세경영 많아
강서상인은 가난한 가정환경때문에 부득이 하게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기때문에 사채를 빌려서 자그마한 장사부터 시작한게 이들의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본지방의 특산물을 시작으로 소규모경영을 하는 강서상인의 독특한 배경때문에 자본이 분산되고 영세경영이 많은것이 특징이다. 도자기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규모는 휘상, 진상 등 상인에 비할바가 못된다. 이밖에 강서상인들의 전통관념이나 의식도 이들의 자본흐름에 영향을 주었는바 깊이보다는 넓은 범위를 추구했다. 때문에 강서상인의 수가 아주 많고 업종 또한 광범위하지만 경쟁에서 쉽게 시장을 잃고마는 경향이 있다.
강서상인은 상업도덕을 중히 여기고 신용을 지킬줄 알며 소박하고 성실하게 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