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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 조선족 로병사 손태호, 상감령에서의 대적방송

2020년 10월 30일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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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장에서 그는 적들의 '눈에 가시'였고 평화건설시기에 그는 뢰봉을 따라배우는 본보기였으며 퇴직후 그는 홍색정신의 '전파자'이다. 그에게 취재요청을 했지만 그는 번번히 "희생된 전우에 비해 내가 한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거절했다.

그가 바로 85세의 조선족 항미원조 로병사 손태호이다.

1935년, 손태호는 길림성 해룡현(현재 매하구시) 만룡향에서 태여났다. 1951년 3월, 그는 군에 입대하여 지원군 제67군 199사 597단에 분배돼 번역사업을 하게 되였다.

"조선전장에서 나는 부대를 따라 여러 지역을 돌면서 생사를 넘나들었는데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 상감령전역이다." 지원군의 조선전쟁 대적방송소의 조선어방송원인 그는 상감령전역이 시작되기 전 전우들과 함께 적진과 300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산굴에 들어가 낮에는 머리에 포화를 무릅쓰로 원고를 외우고 밤에는 최진방 진지에 들어가 방송을 진행했다.

손태호는 "방송할 때 진짜 이름을 사용하면 안된다. 나는 길림에서 입대해 심양에서 집단훈련을 받은 후 전선으로 들어가 많은 가정이 단란하게 모이게 하기 위해 전투했다. 나는 자신에게 심길원(沈吉圆)이라는 가명을 지었고 이후 심계원(沈记圆)으로 고쳤다."고 추억했다.

방송원 한명이 적군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니 적군들은 한개 소대를 파견하여 그를 잡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지원군 병사들에 의해 완강하게 격퇴당한 후 적군들이 또 여러차례나 방송소를 폭격하는 바람에 산굴마저 무너졌다. 하지만 '심계원'은 대적방송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1952년 11월의 어느 날 방송소는 또 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몇명의 전우들은 손태호를 보호하기 위해 선후로 희생됐으며 만약 지원병사들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손태호도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나는 눈을 뻔히 뜨고 전우들이 내 앞에서 희생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나를 위해서였다…" 지난 일을 추억하던 로인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업성적이 두드러진 손태호는 3등공을 수여받았다. 그는 이 군공장을 자주 착용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소장해뒀다. 그는 "이는 전우들의 피로 바꾼 것이다."고 말했다.

항미원조전쟁이 끝난 후 손태호는 해방군제1고급보병학교에 입학해 1957년 졸업후 제16군 모 퇀에 배치되였다.

지난 세기 60년대초 뢰봉은 원 심양군구의 선진전형이였다. 1961년 손태호의 부대는 무순에 와서 시공했는데 손태호를 뢰봉 소재 부대에 파견하여 뢰봉을 초청해 병사들을 위해 보고하게 하게 했다.

련속 7일간, 손태호는 뢰봉의 곁을 지키며 그와 함께 먹고 자면서 사상을 교류했다. "그것은 나의 일생에 영향준 7일이였다. 뢰봉에게는 내가 끊임없이 배워야 할 뭔가가 있었다…" 뢰봉과 함께 생활하던 시간을 돌이켜보던 손태호는 감개무량해했다.

뢰봉동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손태호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가 뢰봉처럼 일을 사랑하고 기여했기에 단위는 그에게 '뢰봉 따라배우기 모범병'이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1995년 퇴직후 손태호는 당정기관과 학교에 자주 초청되여 보고를 하게 됐다. 비록 몸이 불편했지만 그는 종래로 거절하지 않고 "홍색유전자는 대대로 전승되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손태호는 제78집단 모 려 3련이 그가 련장을 맡았던 련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올해 년초 손태호는 옛 련대로 찾아가보려던 소망을 이루게 됐다.

"나는 련대영예실 '력대 주관'란에서 자신의 이름을 봤을 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부대는 나를 잊지 않았다." 손태호는 병사들에게 조선전장에서의 전투이야기를 들려주며 련대의 분투사를 소개했다. 현임 련장 장바크주가 '전군애군정무표병(全军爱军精武标兵)'과 전국인대 대표이고 련속 두차례나 1등공을 세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손태호는 "우리 련대에 인재가 넘쳐난다!"면서 기뻐했다. 손태호는 자신이 오래동안 소장했던 항미원조시기의 옛 사진을 련대에 증여하고 '영예지도원' 초빙서를 받았다. 그는 "련대가 필요하다면 나는 로병사의 미약한 힘을 다해 계속하여 부대 건설을 위해 기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http://korean.people.com.cn/65106/65130/70075/15828362.html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