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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촉도의 어려움, 면모가 일신하다(장려한 70년 분투의 새 시대•새중국 파란만장한 세월)

2019년 09월 10일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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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7월 1일, 서남군구 사령원 화룡이 성도기차역 성유철도 개통식에서 붉은 띠를 가위로 자른 것은 ‘촉도의 어려움’의 력사가 그 때로부터 개변됨을 표징했다.

“촉도의 어려움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도다.” 우리 나라는 청나라말부터 시작하여 사천에 철도를 놓으려 계획했고 민국시기에도 여러차례 계획을 했지만 새중국이 창립될 때까지 천유대지에는 한장의 레루도 깔리지 않았다.

1950년, 성도, 중경이 해방된지 얼마 안지나 중앙은 성유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6월 3만여명의 해방군 장병들은 가시지 않은 초연을 지니고 길을 닦는 전투에 뛰여들었다. 그 뒤 철도연선의 농민들도 분분히 길을 닦는 대군에 가입했다.

성유철도는 착공초기 가장큰 난제가 침목이 없는 것이였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수십개 현에서 목재를 바치는 운동을 했다. 성유철도에 필요되는 레루와 부품들은 국영 모 강철공장에서 제조해냈다. 철도못, 전철기와 일부 기기들은 중경의 400여개 사영강철공장에서 맡았다. 10만 로동대군에게 필요한 도구들은 중경의 관련 공장 종업원들이 만들었다. 지난날에는 철도건설에 사용된 것은 미국에서 사온 폭약이였으나 서남의 공장에서 자기절로 만들었다. 완전히 본국의 기자재들로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나라 철도건설사상 처음이였다.

성유철도의 건설은 당지 공농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많은 정지되였거나 반정지되였던 공장들이 생산을 회복했고 실업되였던 사람들이 일터를 찾앗으며 빈고농민들도 목재를 팔고 도로건설에 참가하여 수입을 올렸다. 이는 연도 인민들로 하여금 더욱더 자신들의 철도를 사랑하게 했고 길닦는 민공들도 더욱 정성을 다해 철도를 위해 봉사했다. 민공들은 “보증코 기차가 우리가 만든 로반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하리라”라는 구호를 내놓았다. 연도농민들은 철도보호대를 조직했고 많은 부녀들은 깊은 야밤에도 로선을 따라 순라했다.

성유철도의 개통은 새로운 교통시스템을 형성하여 도농지간의 련계를 밀접하게 했고 공상업 번영을 촉진시켰는바 서남 공업화건설에 길을 닦아놓았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장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