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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강서 평향 새로운 발전리념으로 도시 전환 선도

100년 석탄도시 청춘의 활기 발산(장려한 70년 분투의 새 시대•일선에서 온 조사연구)

본사기자 손초

2019년 05월 06일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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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강서 평향 안원탄광 갱구인 총평갱도에서는 탄광차량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얼마 멀지 않은 안원로탄광 로동자대파업담판소에는 100년전에 심은 녹나무가 아직도 록음이 우거져있다.

로동운동과 추수봉기의 력사 속에서 걸어온 평향은 석탄으로 말미암아 번성했고 또 석탄으로 말미암아 곤경에 빠졌으며 오늘날에는 새로운 발전리념의 선도하에 산업의 새로운 동력에너지를 발굴하고 생태에 의해 낡은 모자를 벗어버려 도시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평향시당위 서기인 리소표는 “평향은 전환발전의 새로운 방향, 새로운 동력을 찾아 발전리념과 사로가 바뀌였고 발전경로, 발전공간도 이 때문에 새로워졌다”고 말했다.

보따리를 벗어버리고 고질병을 씻은듯이 치료하여 이 100년의 력사를 가진 석탄도시가 바야흐로 젊음을 찾고 있다.

산업전환, 혁신의 금열쇠를 단단히 장악

산업단지에는 차량들이 붐비였고 공장구역의 붉은 벽돌로 쌓은 낡은 연통이 아직도 세워져있다. 1958년부터 평향뚱딴지공장에 들어가 20세기 70년대에 공장장을 맡았었고 또 1990에 퇴직한 92세에 난 류량원은 이 100년의 력사를 가진 공장의 전환승격을 직접 겪었다.

류량원은 새중국이 창립된 뒤 당시의 제1임 공장장이 인민페 1억원을 갖고 평향뚱단지공장에 와서 생산복구에 사용하던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1억원은 후날의 1만원에 맞먹었다. 나라가 너무 가난하여 자력갱생에 의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차츰차츰 발전하여 제품이 또 국외에까지 수출되였다.”

류량원은 “그 때의 높은 수준의 제품은 지금에 와서는 언녕 하찮은 것으로 되였다. 현재의 특고압, 신재료에 대하여 나는 알 수조차 없다!”

“국가전력공업수준의 향상은 우리로 하여금 향상하도록 핍박했다.” 류환충은 로계현 상부진 민영뚱딴지공장의 종업원으로서 제일 먼저 ‘대담하게 창업한 사람에 속한다. 그는 “그 때가 1995년이였는데 1만원의 돈도 1주로 계산하여 주식에 가입할 수있었는데 40~50명 주주가 의논하여 평향환우뚱딴지공장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전문보기:http://paper.people.com.cn/rmrb/html/2019-05/06/nw.D110000renmrb_20190506_8-01.htm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