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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해란강반에 꽃피운 청춘

연변광동조선족민속관광봉사유한회사 양려나 총경리

2022년 06월 27일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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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 짜이쨔마(在家吗)?”

“양아재 왔구만, 날래 들어오.”

“네, 아바이, 래일 유람객들이 마을을 찾게 되는데 춤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또 돈 벌 일이 생겼구만. 허허”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 촌민 방순렬 로인이 반갑게 맞아주는 이 분은 연변광동조선족민속관광봉사유한회사 총경리 양려나이다.

“아바이, 이 분들은 지부생활 잡지사에서 오셨습니다.” 양려나는 자신의 집에 온 듯 스스럼없이 가마목에 앉아 손을 엉덩이에 깔며 함께 모여있던 로인들을 취재진에게 소개했다.

“방순렬 로인은 우리 마을 민속공연팀 회장을 맡다가 지난해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이 분은 방순렬 로인의 안해이고 저 분은 김정숙 로인인데 모두 저희 민속공연팀 성원입니다.”

“우린 저 양아재 덕분에 춤을 춰서 해마다 5000여원의 수입을 더 올릴 수 있게 되여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김정숙 로인은 엄지를 척 내밀며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려나의 고향은 장백산기슭의 이도백하진이다. ‘미인송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이도백하진은 특수한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자연자원으로 관광업이 번창하게 발전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양려나는 대학 졸업 후 대도시의 높은 년봉의 유혹을 물리치고 단연히 고향행을 선택했다.

“노력 없는 인생은 완미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고향에 돌아온 후 첫 사업으로 가이드를 선택했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뻐스로 연길기차역에 와서는 유람객들을 마중했고 장백산에 올라 관광가이드를 담당했는데 짬짬이 책을 보며 익혀둔 풍부한 지식과 생동한 해설은 유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노력한 만큼 수입도 높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시종 유감 하나가 남아있었다.

“우리 연변은 조선족 특색마을과 전통음식으로 소문난 고장인데 관광객들에게 보기, 듣기, 맛보기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봉사를 제공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2011년 화룡시에서는 광동촌을 시범지역으로 농촌관광을 발전시킬 계획을 내오고 투자유치 공고를 발포했다. 당시 경제가 락후하고 환경이나 도로개발 등 면에서 뒤떨어졌던 광동촌에 희망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6살이였던 그해 양려나는 과감히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광동촌은 조선족 전통마을 원상태를 보존하고 있어 이곳에서 관광업을 발전시키면 전국각지의 관광객을 흡인해올 수 있습니다. 또 이곳 입쌀은 ‘황실공미’로 이름난 쌀이기에 판로도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회사를 등록해놓고 대상을 개발하려니 자금부터 필요했다. 친척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입이 닳도록 설명해서 돈을 꿔오긴 했지만 누가 봐도 가난하기만 한 광동촌에서 사업을 시도하려고 하는 그를 쉽게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어 촌민들도 그가 내놓은 민속관광, 민속공연, 민박건설 등 건의들을 꿈같은 소리로 여기며 불신의 눈길을 보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반대했지만 양려나는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 “전 매일마다 외부련락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모두 마을에 머물어 관광코스 기초건설을 살폈고 촌민들을 찾아 저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광동촌을 조선족민속문화와 논전문화가 융합된 조선족마을로 부상시킨다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2015년,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의 힘찬 추진과 함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다가왔다. 광동촌은 당과 정부의 관심 하에 신속한 발전을 가져오기 시작했으며 마을은 환경이 아름답고 산업이 흥성해 졌다. 이에 발맞춰 양려나도 촌민위원회와 적극적으로 합작하면서 회사의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양려나의 회사는 선후로 광동촌에 농촌문화관광프로젝트, 조선족특색민박, 민속음식, 논놀이와 관광체험구를 건설하였고 광동해란강어미(光东海兰江御米)브랜드를 만들어 촌민의 쌀을 구입하여 통일 가공과 포장을 거쳐 전국각지에 판매함으로써 촌민들의 수입도 늘여주었다. 그외 전국 각지의 300여개 려행사와 관광협의를 체결했는데 광동촌은 년간 관광객수가 연인수로 30만명을 초과했다. 촌민들의 호주머니는 두터워졌고 그제날 가난하던 마을은 빈곤해탈 난관공략전 성과의 공고, 발전과 함께 향촌진흥의 화려한 턴을 실현하였다. 나날이 변모하는 마을의 모습과 꽃펴나는 살림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된 촌민들은 양려나에 대한 신임의 마음이 날로 커져갔으며 지금은 집집마다 양려나와 합작하여 수입을 늘여가고 있다.

양려나는 자신이 이러한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당과 정부 그리고 촌민위원회와 촌민들의 도움과 지지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촌에서는 자금을 신청해 마을의 남아도는 빈 주택을 특색민박집으로 개조해 저의 회사에 위탁해 전문적으로 운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족 농경특색이 선명한 모내기절 행사도 해마다 조직하여 논관광을 대폭 발전시켜왔습니다.”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 현걸은 “양려나는 설명절이면 언제나 촌민들을 잊지 않고 돈이나 기념품을 보내줍니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우리 촌민들은 민속공연도 하고 집도 임대 해주고 입쌀도 팔아서 수입을 높이기도 합니다.”고 소개했다.

양려나의 끈질긴 노력으로 그의 회사는 선후로 전국 레저농업농촌관광 5성급 시범기업, 길림성 5A급 향촌관광사업단위로 선정되였으며 연변주 ‘민영기업 빈곤퇴치 난관돌파 행동’ 돌출공헌상을 수여받았다.

고향건설의 길에서 사심 없는 노력으로 공동치부를 이루어가는 양려나의 멋진 청춘이 오늘도 해란강반에 소리 없이 꽃피고 있다.

(글: 김동호 사진: 장성화)

래원: 지부생활(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