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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아름다움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2020년 07월 02일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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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왕청현 왕청진 동명촌에 들어서니 산뜻한 포장도로가 마을 끝까지 뻗어있고 량옆에 새집들이 줄지어 선 가운데 담장마다에 그려진 조선족 풍속화폭들이 기분 좋게 시야에 안겨들었다. 집집의 뜨락들이 깨끗하고 정연하며 새로 건설해놓은 문화광장이 품위를 뽐냈으며 아이들이 넓은 문화광장에서 웃고 떠들며 생기를 피워올렸다. 산들바람이 찰랑이는 마을에 대자연의 청신한 숨결이 그득했다.

“예전에는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꿈도 못 꿨다. 좋은 집에 살고 안정된 수입이 있고… 당과 정부에 감사를 드린다.” 촌의 변화를 말하면서 75세의 로당원 모영강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동명촌에서 나서 자란 모영강은 두명의 조카를 데리고 사는데 조카들은 2급 지적 장애를 가져 생활능력과 로동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처지이다. 모영강의 형이 일찍 사망하면서 열몇살 된 두 아이를 그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30여년간 혼자 농사를 지어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두 조카를 돌본 그는 “유일한 친인인 내가 돌보지 않으면 그들은 그저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영강도 나이가 들면서 생활압력에 점점 버거움을 느꼈다. 2017년 동명촌과 부축관계를 맺은 왕청현당위 정법위원회는 방문과정에서 모영강 가정의 정황을 료해한 후 빈곤가정으로 정했다. 이리하여 모영강 일가의 생활에는 보장이 있게 되였다.

모영강의 새집에 들어가 보니 텔레비죤,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구전히 갖추어져있고 집안도 말끔했다. 앞뜨락에는 채소를 심고 뒤울안에는 꽃을 심어 편안하고 운치 있었다. “좋은 때를 만나서 사는 게 점점 즐겁다. 조카들의 병도 안정되여간다.” 모영강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늘고 있다.

모영강 일가의 변화는 동명촌 빈곤해탈 난관공략의 성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축도이다. 빈곤해탈 난관공략 행동에서 왕청현당위 정법위원회 촌주재 공작대는 이 촌의 당지부, 촌민위원회와 함께 당건설의 인솔 강화, 집집의 방문, 실정 료해, 군중의 진심, 진실된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지어 불평과 번민에도 귀를 기울였다. 동명촌 정황을 전면적으로 료해한 후 부축단위에서는 적극적으로 산업견인을 실시하고 방조부축 계획을 효과적으로 실시했으며 방조부축 정책을 정확하게 시달했다.

촌민들을 빈곤에서 해탈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촌민들의 거주환경 개변에 착수했다. 동명촌의 도로들을 개조하고 음용수공사를 다시 하는 등 기초시설 건설을 틀어쥐여 촌민들의 출행난, 음료수난 등 생활생산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촌민들의 행복감을 증강했다.

동명촌의 수도물 도관은 가야하를 거쳐야 해 매년 홍수기에는 파손되기 일쑤였다. 특히 2017년의 수재 때에는 수도물 도관이 몽땅 떠내려가기까지 했다. 해마다 고쳐도 해마다 고장을 피면치 못하던 수도물 도관으로 인해 촌민들은 늘 음용수 어려움을 겪었다. 촌주재 공작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촌간부들과 해결조치를 의논하고 방조부축단위에 제때에 회보를 올렸다. 동명촌 뒤산에 새로운 수원지를 선정한 후 왕청현당위 정법위원회 전체 남성 일군들이 빈곤가정에 내려가 도랑을 파고 도관을 깔았으며 수원지를 정돈하는 일도 억척스레 해냈다.

2018년 이 촌은 30여만원을 투입하여 동명촌 두개 자연툰의 식용수안전공사를 건설했다. 2019년, 원래의 수원지 토대에서 137만 2600원을 투입해 농촌식용수 공고 공정, 저수지 건설, 뽐프실 추가건설, 소독설비 설치를 진행했다. 이때에야 비로소 전체 촌민들의 식용수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였다.

수도꼭지를 틀자 깨끗한 물이 흘러나왔다. 촌민 리수련은 남새를 씻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과거에 우리는 물을 길어마셨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수질도 좋지 않았다. 새로운 수원지를 만든 이후로 집집마다 깨끗한 수도물을 마신다.”

촌민 오천금은 2019년에 D급 위험주택 개조를 진행했다. “옛날에 살았던 집은 구세대가 남긴 진흙집이였는데 년대가 오래되여 위험주택으로 되였다. 다행히도 당과 정부의 좋은 정책이 있어 우리는 새집에 살게 되였다.” 현재까지 동명촌 38가구 빈곤호의 위험주택은 전부 개조를 마쳤고 안전주택 표준에 도달했다.

촌의 면모가 개선되니 촌주재 공작대는 또 촌민의 ‘돈주머니’에 관심을 두었다. 동명촌은 조선족 마을로 조선족 전통음식인 된장을 제작하는 촌민들이 매우 많은데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고 맛이 순수하여 시장의 환영을 받는다. 촌주재 공작대 대장 정설봉은 기자에게 촌의 된장공장은 다년간의 력사를 지니고 있는데 예전에는 규모가 작고 생산량이 제한되였다고 했다.

된장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빈곤호들을 인솔해 공동으로 치부하기 위해 2018년 이 촌은 녕파의 방조부축 자금 59만원을 투입해 왕청현 동명촌 민속식품가공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580평방메터에 달하는 발효실과 찜실(蒸煮间)을 새로 짓고 10여대의 주입기, 전기찜가마 등 선진적인 설비를 구입했다.

동명촌민속식품가공유한회사의 메주를 말리우는 하우스에 들어서니 메주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회사의 총경리 허산옥의 소개에 의하면 된장을 만들 때 모두 품질이 우수한 콩을 사용하는데 찌고 끓인 뒤 주물러서 직경이 10센치메터가 되게 메주덩어리를 뭉치고 다시 하우스에서 말린다고 했다. 발효가 다 되면 다음단계 생산을 진행할 수 있다.

기자는 된장발효실에서 사람의 절반 높이인 50여개 관개통이 가지런히 배렬되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발효를 마친 된장으로 1만 5000여킬로그람에 달하며 가공하여 포장을 마치면 판매할 수 있다. 현재 이 회사는 년간 10만킬로그람의 량질 된장 등 상품을 생산하며 판매액은 100만원에 달한다. 허산옥은 2년 동안 대상발전을 통해 이 촌 빈곤호들의 취업문제를 해결하게 되였을 뿐만 아니라 년간 3만 5400원의 리윤을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빈곤호들을 고용하여 반나절 동안 일하면 50원의 임금을 주고 교대로 휴식하는 제도를 취한다. 일하러 온 빈곤호들은 매달 500여원의 수입을 증가할 수 있다.”

“우리 촌을 발전시키려면 민속식품산업을 구축하여 동명촌의 브랜드를 널리 알려야 한다.” 정설봉이 기자에게 말했다. 오늘날 회사는 점차 정상궤도에 들어섰고 상표등록, SC식품생산허가를 완수했으며 상품 포장설계가 완성되면 대형 상가 슈퍼에 진입하여 전국으로 나아가게 된다.

동명촌의 변화는 산업발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장지재는 이 촌의 서류작성 빈곤호인데 2급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 일반적인 로동을 할 수 없다. 장지재가 하루빨리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촌에서는 그에게 공익성 일터를 배치했다. “병 때문에 나는 일자리를 구하러 나갈 수 없었다. 촌에서는 나에게 환경위생을 지키는 일을 배치했는데 매년 4000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장지재가 기쁨에 넘쳐 말했다.

료해한 데 의하면 동명촌의 서류작성 빈곤인구는 38가구, 47명이다. 빈곤호들이 고정적인 수입이 있도록 하기 위해 촌에서는 빈곤호의 취업능력, 취업념원과 취업요구에 따라 청결원, 호림원 등 빈곤층부축 공익일터를 설립했고 많은 빈곤호들이 자신의 로동으로 나아진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 가아하강변의 작은 마을은 가난했던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 있으며 모든 아름다움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래원: 연변일보(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