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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 수구촌: 로지부서기 '두가지 걱정' 마침내 내려놓아

2020년 06월 15일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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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 월청진 수구촌의 민가(신화사 기자 허창 촬영)
장춘 6월 12일발 신화통신: 올해 여름, 중조변경 부근의 수구촌에서 촌당지부 서기 김광수는 자신을 몇년간 골머리를 앓게 했던 '두가지 걱정'을 마침내 내려놓게 되였다.

김광수가 살고 있는 길림성 도문시 월청진 수구촌은 전형적인 조선족마을로서 산과 물이 가까이에 있고 토지가 비옥하며 300여명의 촌민들 가운데서 98%가 조선족이다. 20세기 90년대부터 촌의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한국으로 일하러 떠났다. 김광수는 1998년부터 촌지부서기를 맡았는데 외지로 일하러 떠난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때에는 전촌 인구의 80%를 차지해 로인과 아이들 밖에 남지 않았다. 주택은 오래동안 보수하는 사람이 없었고 드넓은 밭도 그냥 방치해두거나 외래가구에 도급주었는데 촌민들은 안정적인 생활보장이 줄어들었다. 마을이 '공동화'되고 촌위원회에 후계자가 없는 것이 김광수의 마음을 돌처럼 눌렀다.

2010년 겨울,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안되겠다'고 마음 먹은 김광수는 촌민들과 함께 연변주 첫번째 주식제 합작전문농장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경운기 두대 밖에 없었지만 모두들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수구촌은 벽돌집이 정연하게 줄지어 서있다. 촌에 남은 공지에 가지런히 주차된 대형 농기계는 이 땅의 발전을 증명했다. 전촌 150헥타르의 경작지는 모두 기계화 작업을 실현했다. 촌에는 또 가공직장을 설립하여 벼를 수확한 후 촌에서 가공하고 포장할 수 있다.

최근년래 현지 정부는 농업브랜드를 구축했는데 수구촌의 입쌀은 점점 더 유명해졌다. 상해, 북경 등 지역의 기업이 촌에 찾아와 합작을 토론했고 '수구패' 입쌀은 북경, 상해, 광주까지 팔렸으며 킬로그람당 십여원에 팔렸다. 혜농보조금, 토지임대료와 주식배당수익을 받은 촌민들의 호주머니는 점점 든든해졌고 일인당 년수입이 1만원을 초과했다.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으려고 하는 건 촌이 허름하다고 생각하거나 돌아와서 할 일이 없을가 봐 걱정해서이다." 김광수는 빈곤탈출 난관공략전이 시작된 이래 현지 정부는 정확한 빈곤해탈부축에 진력하여 촌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개선했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나날을 보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외지 사람들도 고향에 돌아오게 만들었다. 현지 정부의 여러가지 정책의 지지하에 1000여만원을 루적 투입하여 수구촌의 주택, 도로을 개조하고 문구장, 농구장을 신축했으며 지하오수관망을 설치하여 모든 가정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했다.

63세의 김금렬은 한국에서 십여년간 일하면서 고향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소식을 듣고 2년전 촌에 돌아와 구이집을 차렸다. 그가 생각치도 못하게 구이집은 장사가 점점 더 잘돼 주말이면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일부 한국에서 일하는 촌민들도 너도나도 김광수에게 알아보군 했다. 몇년 동안 김금렬처럼 촌에 돌아온 사람들은 점차 많아졌다. 구이 외에도 일부 사람들은 양식장을 하기도 했고 일부는 두부집을 차리기도 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촌에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고는 슈퍼를 열 생각도 했다… 촌에 항목이 점점 더 많아지고 또 함께 보조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보게 된 김광수의 마음속의 걱정도 끝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구이집 밖의 마당에서 도문시 부시장 손동승과 김광수는 촌의 발전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손동승은 수구촌의 변화는 빈곤탈출, 난관공략, 향촌진흥과 전구역 관광총괄발전의 생동한 실천으로서 촌이 아름답게 변함에 따라 산업도 증가되고 촌위원회 세대교체도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61세인 김광수는 몇년간 촌에서 '가장 젊은' 당원이였다. 촌위원회 성원들의 나이도 보편적으로 많았는데 아직 젊은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 현재 외출했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손동승이 말을 마치자마자 김광수는 옆에 있던 젊은이의 어깨를 툭 치면서 "최경남이라고 한는데 '85후'이고 3년전 북경에서 촌으로 돌아왔다. 현재 차세대 촌위원회 주임 후보이다"고 말했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키가 큰 최경남은 촌의 정황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수구촌은 도문시와 십여킬로메터 떨어져 있고 기초시설도 도시보다 차하지 않아 향촌 관광잠재력이 크고 입쌀도 브랜드화 길을 걷게 되여 발전전망이 아주 밝다고 말했다.

몇년전 최경남과 김광수는 새로운 항목을 계획하기 시작했는데 비여있는 주택을 민박으로 개조하는 것이였다. 촌의 계획을 알게 된 후 한국에서 일하던 촌민들이 자기들의 주택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주동적으로 밝혔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적극적인 효과를 가져오면서 김광수는 마음속 깊이 기뻐했다.

봄갈이가 지나고 수구촌도 일년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맞이했다. 강물이 촌을 감돌아 흐르고 논밭에는 벼모가 튼튼하게 자라나며 한동안 젊은이들이 없어 곤경에 빠진 촌은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촌서기 마음속의 '두가지 걱정'도 끝내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