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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길림 연변: 세 대학생의 빈곤해탈부축 이야기

2020년 05월 06일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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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모, 소독수 뿌렸나요?”, “세균이 들어가면 절대 안됩니다.” 김성휘는 땅바닥에 앉아 균주머니를 검사했다. ‘북경대학 졸업’, ‘인재유치’—촌민들의 그에 대한 ‘엄친아’라는 수식어는 그가 2017년 로묘촌에 와서 촌에 주재하면서 소탈한 ‘농촌젊은이’로 되는 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김성휘와 함께 변화를 겪은 사람중에는 기타 2명의 대학생도 있었는데 둘 다 ‘90후’ 명문대 졸업생인 정문걸과 김명길이였다. 3명은 모두 공청단연변조선족자치주 주위에서 로묘촌에 파견한 촌주재 간부이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위치해있는 로묘촌은 이 지난날의 극빈빈곤현에서 가장 편벽한 촌 가운데 하나였다. 촌의 청장년 로동력이 대다수 일하러 외지로 나가다보니 남은 로인들은 함께 합작사를 만들기도 힘들었다. “일부 빈곤호들은 몇달 동안 수입이 없었다.” 김성휘는 갓 촌에 왔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촌의 면모를 개선하고 빈곤해탈부축산업을 기획했다… 하지만 세 조선족 젊은이 앞에 놓인 첫번째 난제는 촌에서 통용되는 산동방언을 알아듣는 것이였다. 촌민들은 토박이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졸업한지도 얼마 안되는 그들을 ‘업신여겼는데’ “우리 집 애보다 어린데 촌에 와서 뭘 알겠는가?”라고 했다.

울퉁불퉁한 온돌에서 세 사람은 자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높은 학력으로 대도시에서 ‘잘 나갈 수’ 있었는데 빈곤촌에 와서 벽에 부딪칠 줄을 생각지 못한 것이였다.

“제대로 빈곤해탈부축을 하려면 촌민들의 사상사업을 잘해야 한다.” 대학생 3명은 빈곤호들을 위해 정원을 쓸어주고 장작을 패고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면서 자신들을 촌의 집사로 만들었다. 촌의 빈곤해탈부축산업을 계획하면서 식용군항목을 발전시키기로 확정한 후 김명길은 여러 지역을 뛰여다니면서 농업기술일군을 데려다가 촌민들에게 재배지식을 보급했다.

“이보게, 빈곤호는 어떻게 의료비를 청구받나?”, “이보게, 나와 함께 진에 가서 일을 처리해주게.” 세 사람은 점차 갓 촌에 왔을 때 존재감이 없던 데로부터 ‘친자식보다 더 쓸모있게 됐다.’ 크고작은 일에 부딪칠 때마다 촌민들을 그들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고 놀림받던 김성휘는 절반 ‘토박이말 전문가’가 되였다.

2015년말, 로묘촌의 빈곤발생률은 45.8%였는데 현재 서류카드작성 빈곤인구가 전부 빈곤에서 탈출했다. 정문걸이 촌주재사업을 마친 다음 김성휘, 김명길은 중점 ‘관심’ 대상이 되였다. 올해 4월, 왕청현이 정식으로 모자를 벗은 후 촌민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축행사가 아니라 두 ‘김씨 젊은이’가 시내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였다. 빈곤탈출가구 정학민은 그들을 찾아 “가지 마오. 내가 촌주임을 찾아 호적도 만들어주고 색시도 찾아주겠소.”라고 말했다.

평소에 김성휘는 촌 입구의 다리에 서서 동서 량쪽의 신촌과 로촌을 비교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그들이 분투한 흔적이였다. 로묘촌의 미래에 대해 그는 아직도 많은 계획이 있다고 하면서 식용균항목을 더 크게, 더 우수하게 만들고 고속도로휴게소가 설립된 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였다… 김성휘는 “청춘의 땀방울을 이 땅에 흘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