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 "결정"은 우리 당은 국내외 발전대세를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농민의 혁신정신을 존중하였으며 제일 먼저 농촌에서 개혁을 시작해서 일사천리로 전국에 파급시켰으며 인민을 령도해 개혁발전의 빛나는 서사시를 엮어놓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네개 단계로 나누어 30년 농촌개혁발전의 변화추진경로를 파악할수 있다.
제1단계(1978년-1984년): 중점은 인민공사를 취소하고 농호별생산량도급경영을 기초로 한 통일과 분리가 결부된 이중경영체제를 확립하고 농촌기본경영제도를 내왔다. 1978년,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의 18세대 농민들이 제일 먼저 "도거리책임제"를 실시했다. 1980년, 중앙은 농업분야에서 각종 형식의 생산책임제를 보편적으로 실시할것을 명확히 제기했다. 1983년말, 전국 농촌은 농호별생산량도급경영을 기초로 하고 통일과 분리를 결부한 이중경영체제를 기본적으로 실시했다. 1984년, 중앙은 토지도급기한을 보통 15년이상으로 할것을 제기했다.
제2단계(1985년-1991년): 중점은 농산물 계획수매와 배정수매 제도를 개혁하고 향진기업을 발전시키고 시장화추세의 농촌개혁을 탐색하였다. 1985년, 국가는 알곡, 목화 통일수매를 취소하고 계약수매를 실시했으며 기타 농산물의 가격을 풀어놓아 시장에 의해 수급을 조절했다. 1990년 10월, 정주 밀도매시장이 나오면서 구역성 농산물도매시장과 각종 류형의 농산물무역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는 나중에 주요 농산물계획조달을 대체하는데 물질적토대와 제도적조건을 창조해주었다. 국가의 권장에 힘입어 20세기 80년대 중기, 새로 일떠선 향진기업이 "농사는 하지 않지만 농촌을 떠나지 않는" 농촌로력의 대이전을 일으켰고 농촌산업구조의 대조정을 추진했으며 농촌 경제의 대발전을 추동했다.
제3단계(1992년—2002년): 중점은 농산물류통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농산물과 요소시장체계를 완벽화하며 농촌세금개혁시점을 전개하였다. 립법을 통해 농촌기본경영제도를 안정시키고 토지도급관계를 30년 불변으로 연기해 농민들에게 장기적이면서 보장된 토지도급경영권을 부여해주었다. 20세기 90년대 중기 농촌로력이 대규모로 도시로 이동하고 다지역이전취업이 가능해지면서 국가에서는 중소도시 및 도시호적관리제도를 개혁하는 등 조치를 강구해 농촌로동력이 질서있게 이전취업하도록 했다. 1998년 농업, 농촌경제구조의 전략적조정을 추진하고 이후 세계무역기구 가입시 협의의 요구에 따라 농산물시장진입, 국내지지 및 수출입정책을 개혁했다. 따라서 농업의 대외개방수준이 대폭 향상되였다.
제4단계(2003년부터 지금까지) : 중점은 도시와 농촌의 경제와 사회 발전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새 시기 농업을 강화하고 농업에 혜택주는 정책체계를 조성하고 도시와 농촌 발전제도의 기틀을 통일적으로 계획하는 방면에서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 16차 당대회이래 중앙에서는 "3농"문제를 잘 해결해주는것을 전당사업의 으뜸가는 기본요구로 삼고 도시와 농촌의 경제와 사회 발전의 기본적인 책략을 명확히 해 "두가지 추이"란 기본론단을 제출하고 이를 우리 나라가 총적으로 이미 공업으로 농업을 추진하고 도시로 농촌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기본판단으로 공업이 역으로 농업을 부축해주고 도시가 농촌을 지지해주고 많이 주고 적게 받아들이는 기본방침으로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의 기본과업으로 계획하는것으로 삼았다. 알곡 시장과 가격을 활성화하고 농업세를 전면 취소하고 농민들에게 직접 보조해주는 등 포괄적인 정책조치들이 출범되여 국가기반시설건설과 사회사업 발전중점이 농촌으로 옮겨지고 공중재정의 농촌복사범위를 점차 확대해 농업발전, 농민들 소득증대, 농촌의 번영을 추진했다(신화통신). |